고객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은행이 있다면? [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 A to Z]
-블록체인 활용한 크립토 뱅크 ‘컴파운드’…스마트 콘트랙트로 실시간 변동 이자율 운영



[한경비즈니스 칼럼 =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자산을 예치하거나 대출해 가는 고객들에게 주식을 나눠 주는 은행이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우선주가 아니라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를 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은행의 의사 결정 지배력은 고객들에게 넘어갈 것이고 고객들의 목소리가 은행의 경영에 반영될 것이다. 고객 중심 경영을 할 수 있고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마케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너무 급진적인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더리움 디파이 생태계에는 암호화폐 예금·담보 대출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일종의 크립토 뱅크인 컴파운드라는 서비스가 있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 콘트랙트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기능이 구현돼 있어 예금·대출 기록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이자율 결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운영 프로세스가 자동화돼 있다.

이 컴파운드에서 2020년 6월 14일 컴파운드의 네트워크 토큰인 COMP(콤프)의 사용자 분배를 결정한 것이다. 콤프는 블록체인상에서 발행되는 토큰 형태이지만 네트워크의 가치를 저장하고 그 가치의 분배 결정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주식회사의 주식과 거의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컴파운드의 사업 모델을 매우 단순하다. 컴파운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암호 자산을 취급하는데 암호 자산별로 수요 공급에 따라 스마트 콘트랙트가 실시간 변동 이자율을 자동으로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공급 이자율과 대출 이자율에 따라 자산을 예치한 사람은 이자를 받고 자산을 대출해 간 사람은 이자를 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산을 예치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기 전에 컴파운드 프로토콜은 약 5~10% 정도의 수수료를 떼어 기금으로 모은다. 이 기금은 네트워크의 재무 안전성이 악화되는 사태에 활용되며 프로토콜 개발자들의 보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결국 콤프 토큰은 이러한 컴파운드의 사업과 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한 토큰인 것이다.

◆코인베이스 상장하며 가격 급등


콤프 토큰의 전체 발행량은 1000만 개다. 그중에서 42.3%가 프로토콜 사용자들에게 매일 약 2880개씩 4년간 분배된다. 콤프 토큰이 분배되기 시작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컴파운드의 사용자들과 디파이의 생태계 참여자들은 열광했다. 디파이의 성장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컴파운드의 주주(토큰 보유자)가 되기 위해 자산을 더 많이 예치하거나 대출받기 시작했다. 분배되기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미국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콤프 상장이 발표되면서 콤프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70달러 정도에 거래되던 콤프 토큰은 현재 약 3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매일 분배되는 토큰의 수량은 일정한데 그 가격이 오르니 분배되는 토큰의 가치도 폭증했다. 많은 자산들에 대해 예치 이자와 토큰 보상을 합치면 수익률이 연 100%를 넘게 됐다. 결과적으로 컴파운드 프로토콜은 엄청난 입소문을 타게 되고 프로토콜이 담고 있는 자산의 총가치(TVL)가 2020년 6월 15일 약 1억 달러에서 1주일 만에 6억 달러로 폭등했다.

결과적으로 컴파운드는 원래도 디파이 내에서 인기 있는 서비스 중 하나였지만 토큰 발행과 분배를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그 토큰 시총은 유통량 기준으로 이더리움 생태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메이커(Maker)를 훌쩍 뛰어넘어 7억6000만 달러에 달하며 전체 발행량 기준으로는 약 30억 달러로 바이낸스코인(BNB)·이오스(EOS)·라이트코인(Litecoin) 등 쟁쟁한 프로젝트들을 제치고 전체 암호 자산 중 7위권에 자리한다. 하지만 컴파운드의 이러한 단기적인 성과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임직원들의 사기를 장려하기 위해 분배되는 주식의 스톡옵션 등은 보통 장기근속과 같은 행사 조건이 걸려 있다. 스톡옵션을 받은 임직원이 이를 행사하고 주식을 받아 바로 팔아버리면 장기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파운드의 콤프 토큰은 바로 판매할 수 있는 형태로 고객들에게 부여되고 있고 실제로 받자마자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투기적 수요만 창출하게 된다. 그리고 시장에 자연스럽게 토큰의 매도 압력이 형성되므로 토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있고 토큰 보상의 가치가 줄어들면 급격하게 사용자가 이탈할 위험도 있다. 실제로 사용자들에게 주식을 나눠 주는 콘셉트로 빠르게 성장했던 채굴형 거래소들이 그만큼 빠르게 사라졌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많은 디파이 생태계 인플루언서들이 이러한 투기적인 동향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콤프 토큰의 이른바 ‘채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자율 결정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들도 속속 발생하고 있다. 콤프 토큰 보상은 수령하거나 지불한 이자에 비례해 주어지는 것을 이용해 특정 자산군의 수요 공급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이자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이자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본래의 목적으로 대출을 받던 사람들의 효용은 떨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상 사용자는 줄어들고 채굴자와 투기꾼만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컴파운드의 창업자들과 투자자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어 이자에서 수취하는 수수료의 비율을 높여 이러한 왜곡된 채굴 행위를 막으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효과가 미진하다.



◆‘프로토콜 이코노미’의 성장 잠재력


컴파운드 창업자와 임직원은 콤프 토큰 전체 발행량의 22.25%를 나눠 분배 받는다. 그리고 투자자들과 주주들은 전체 발행량의 24%를 분배 받는다. 이는 각각 현재의 가격으로 환산하면 7억1800만 달러, 6억6700만 달러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창업자와 임직원 물량에는 4년의 의무 종사 기간이 적용된다. 임직원들이 이 기간을 채워 나가야 토큰의 전체 수량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러한 분할 분배 기간이 존재하는지가 불명확하다. 스타트업은 회사가 인수·합병(M&A)되거나 기업공개(IPO)될 때까지 임직원과 투자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돼 노력한다. 하지만 그 중간 과정에서 너무나 큰 금전적 보상이 주어진다면 동기 부여가 되기보다 오히려 의욕을 잃을 수도 있다.

컴파운드에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까봐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해된다. 창업자와 투자자에 대한 토큰 분배를 미뤄 놓고 법인에서 보유분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단순히 기간을 기준으로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미리 정한 재무적·사업적 성과들을 달성했을 때 차차 분배하는 것으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의 지배 구조에 대한 우려도 있다. 현재 토큰의 의결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안건들을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자들은 의무 종사와 분할 분배 때문인지 충분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A16z는 34만4984표를 행사하고 있지만 컴파운드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행사하고 있는 투표권을 합쳐도 현재 20만8498개밖에 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투자자들이 자본 논리에 따라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는 상황이고 이는 아직 2~3년밖에 되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의 경영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콤프 토큰의 가격에는 투기적 환상이 많이 포함돼 있고 급격한 가격 조정의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큰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채굴형 거래소처럼 완전히 망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컴파운드는 토큰 모델을 도입하기 전에도 이미 수천억원의 고객 자본을 잘 유통하고 있었고 이러한 내재적인 수요가 뒷받침된다면 토큰 가격 변동에도 비교적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또 어쨌든 투자자들과 창업자들이 좋은 의지를 가지고 사업을 해 나간다면 아직은 미진해 보이는 프로토콜도 계속 개선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어쨌든 충분한 사업 자금을 확보한 상황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이고 토큰을 활용해 네트워크에 이로운 행동을 장려하는 이른바 ‘프로토콜 이코노미’가 제대로 정착하기만 한다면 조 단위의 사업 규모로 단숨에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올해 들어 몇 차례 일어난 디파이 해킹 사건은 업계에 굉장히 큰 충격을 안겨줬다. 디파이의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디파이 회의론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컴파운드는 이런 때 오히려 공격적인 행보로 디파이 시장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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