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매일유업·한국콜마 등…새 접근법 제시해 임직원들에게 ‘인기 폭발’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창업자의 창업 스토리와 기업의 발전 과정을 담은 사사(社史)를 편찬하는 것은 기업에 매우 중요한 업무다. 자사의 경영 이념과 정신을 재확립하는 것은 물론 현재 구성원들에게 기업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냥 신성하게 여겨졌던 사사가 최근엔 딱딱함을 벗어던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촘촘한 글씨와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식 형태를 벗어나 보다 쉽고 재미있게 기업의 역사를 전달하는 웹 콘텐츠로 탈바꿈했다. 또 무조건적인 ‘기업 찬양’보다 외부인의 시선을 빌리거나 산업군을 꿰뚫는 방대한 ‘히스토리’를 담기도 한다.
◆웹툰 사사로 3만3000건 조회 기록
모두가 ‘불금’을 위해 퇴근한 금요일 저녁, 50년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야근하던 SK케미칼 홍보팀 S대리와 K대리는 수기 기록물을 찾기 위해 지하 창고로 향한다. 이들은 창고에서 우연히 만난 유기견 ‘행복이’의 안내를 받아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최종건 SK그룹 창업자의 창업 과정과 SK케미칼의 시세 확장을 지켜보며 기업의 50년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지난해 9월부터 SK케미칼이 연재한 ‘웹툰으로 보는 SK케미칼 50년 테마스토리’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50년의 역사를 5화의 웹툰(20부작)으로 기획했다. 웹툰 사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0주 동안 월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한 편씩 한 주에 두 편씩 연재했다. 2013년 ‘아만자’로 데뷔한 김보통 작가가 웹툰에 참여했고 웹툰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제 직원들을 모티브로 구성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SK케미칼이 사사를 웹툰으로 기획한 것도 역사 위주의 다소 딱딱한 내용으로 이뤄져 그간 흥미를 끌지 못해 온 사사를 만화라는 친숙한 장르에 접목해 ‘읽히는 사사’로 만들기 위해서다.
특히 SK케미칼은 웹툰 사사를 기획할 때 주 타깃 층을 회사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젊은 구성원들로 설정했다. 이성용 SK케미칼 매니저는 “그동안 직원들만 주요 독자층으로 삼았던 다른 기업의 사사와 달리 이해하기 쉬운 웹툰은 외부 구성원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어 SK케미칼 사사의 외연을 넓힐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만화라는 도구를 택했지만 콘텐츠는 그 어떤 사사보다 충실하게 회사의 역사를 담았다. 웹툰 사사를 기획한 커뮤니케이션실 매니저들은 보다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위해 주요 스토리의 실제 인물들인 SK케미칼 선배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팀은 공장 건설 후 설비 안정화에 오랜 기간이 걸렸던 ‘유화공장 스토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꼽았다. 당시 선배들에 따르면 외부 고객들을 초대해 행사를 열던 중 설비 공장의 생산이 멈춰 행사 중 설비를 가동하기 위해 직원들이 모두 뛰쳐나갔다고 한다. 이성용 매니저는 “웹툰과 사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SK케미칼의 장면 하나하나에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웹툰 사사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1969년 선경합섬으로 출범한 SK케미칼은 현재 국내 화학·생명과학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방대한 기업의 역사와 함께 섬유, 석유·화학의 복잡하고 생소한 개념들을 설명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었다. 특히 서사에 다뤄지는 내용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성용 매니저는 “작가에게 짧은 시간 안에 SK케미칼이 생산하는 화학 제품과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당초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그려져 수정한 웹툰 컷들도 상당히 많았다.
◆형식부터 내용까지 변화하는 사사
커뮤니케이션팀의 노력 덕분인지 웹툰 사사는 대외 모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SK케미칼이 주요 독자층으로 점찍었던 젊은 직원들의 호응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이 길고 어려워 읽기 불편한 다른 사사와 달리 출퇴근할 때나 휴식 시간에 짬을 내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쉬워 회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사사 웹페이지로는 드물게 웹툰 개설 등으로 조회 수가 3만3000회를 넘기기도 했다.
‘사사의 진화’는 형식뿐만 아니라 콘텐츠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기업과 창업자에 대한 찬양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를 담은 것이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매일유업의 사사 ‘매일50’은 50년의 역사를 10년씩 엮어 5권의 ‘매일 아카이브북’으로 펴냈다.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한국 낙농사의 발전을 이끌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50 사사총서는 매일유업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낙농의 역사를 함께 정리했다”며 “한국 낙농 산업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매일유업의 역사를 들여보다봄으로써 한국 산업 경제사와 낙농사 속에서 매일유업의 역할과 위치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매일50’은 2000여 편의 기사, 200자 원고지 3800장 분량의 인터뷰, 5800여 가지 사진으로 정리돼 마치 한 시대의 신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매일50’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2020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퍼블리케이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사사 총서의 내용적 가치와 함께 심미적 가치까지 알리면서 기업 사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됐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화장품 제조자 개발 생산(ODM) 기업 한국콜마의 ‘한국콜마, 브랜드를 브랜딩하다’는 기업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얻고 있다. 이는 내부인이 회사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반적 사사의 형식과 달리 작가가 직접 인터뷰 형식으로 30년간의 기업 역사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 박기현 한양대 겸임교수가 한국콜마의 전·현직 임직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고증한 사실들로 한국콜마의 성장사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이번 책을 집필한 박기현 교수는 화장품 산업의 발전을 보며 한국콜마만의 ‘인문 경영’ 등 기업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한국콜마도 30년 역사를 외부인을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니즈가 더해지며 외부인을 통한 사료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7호(2020.07.27 ~ 2020.08.02)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창업자의 창업 스토리와 기업의 발전 과정을 담은 사사(社史)를 편찬하는 것은 기업에 매우 중요한 업무다. 자사의 경영 이념과 정신을 재확립하는 것은 물론 현재 구성원들에게 기업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냥 신성하게 여겨졌던 사사가 최근엔 딱딱함을 벗어던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촘촘한 글씨와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식 형태를 벗어나 보다 쉽고 재미있게 기업의 역사를 전달하는 웹 콘텐츠로 탈바꿈했다. 또 무조건적인 ‘기업 찬양’보다 외부인의 시선을 빌리거나 산업군을 꿰뚫는 방대한 ‘히스토리’를 담기도 한다.
◆웹툰 사사로 3만3000건 조회 기록
모두가 ‘불금’을 위해 퇴근한 금요일 저녁, 50년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야근하던 SK케미칼 홍보팀 S대리와 K대리는 수기 기록물을 찾기 위해 지하 창고로 향한다. 이들은 창고에서 우연히 만난 유기견 ‘행복이’의 안내를 받아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최종건 SK그룹 창업자의 창업 과정과 SK케미칼의 시세 확장을 지켜보며 기업의 50년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지난해 9월부터 SK케미칼이 연재한 ‘웹툰으로 보는 SK케미칼 50년 테마스토리’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50년의 역사를 5화의 웹툰(20부작)으로 기획했다. 웹툰 사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0주 동안 월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한 편씩 한 주에 두 편씩 연재했다. 2013년 ‘아만자’로 데뷔한 김보통 작가가 웹툰에 참여했고 웹툰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제 직원들을 모티브로 구성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SK케미칼이 사사를 웹툰으로 기획한 것도 역사 위주의 다소 딱딱한 내용으로 이뤄져 그간 흥미를 끌지 못해 온 사사를 만화라는 친숙한 장르에 접목해 ‘읽히는 사사’로 만들기 위해서다.
특히 SK케미칼은 웹툰 사사를 기획할 때 주 타깃 층을 회사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젊은 구성원들로 설정했다. 이성용 SK케미칼 매니저는 “그동안 직원들만 주요 독자층으로 삼았던 다른 기업의 사사와 달리 이해하기 쉬운 웹툰은 외부 구성원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어 SK케미칼 사사의 외연을 넓힐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만화라는 도구를 택했지만 콘텐츠는 그 어떤 사사보다 충실하게 회사의 역사를 담았다. 웹툰 사사를 기획한 커뮤니케이션실 매니저들은 보다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위해 주요 스토리의 실제 인물들인 SK케미칼 선배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팀은 공장 건설 후 설비 안정화에 오랜 기간이 걸렸던 ‘유화공장 스토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꼽았다. 당시 선배들에 따르면 외부 고객들을 초대해 행사를 열던 중 설비 공장의 생산이 멈춰 행사 중 설비를 가동하기 위해 직원들이 모두 뛰쳐나갔다고 한다. 이성용 매니저는 “웹툰과 사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SK케미칼의 장면 하나하나에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웹툰 사사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1969년 선경합섬으로 출범한 SK케미칼은 현재 국내 화학·생명과학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방대한 기업의 역사와 함께 섬유, 석유·화학의 복잡하고 생소한 개념들을 설명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었다. 특히 서사에 다뤄지는 내용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성용 매니저는 “작가에게 짧은 시간 안에 SK케미칼이 생산하는 화학 제품과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당초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그려져 수정한 웹툰 컷들도 상당히 많았다.
◆형식부터 내용까지 변화하는 사사
커뮤니케이션팀의 노력 덕분인지 웹툰 사사는 대외 모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SK케미칼이 주요 독자층으로 점찍었던 젊은 직원들의 호응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이 길고 어려워 읽기 불편한 다른 사사와 달리 출퇴근할 때나 휴식 시간에 짬을 내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쉬워 회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사사 웹페이지로는 드물게 웹툰 개설 등으로 조회 수가 3만3000회를 넘기기도 했다.
‘사사의 진화’는 형식뿐만 아니라 콘텐츠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기업과 창업자에 대한 찬양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를 담은 것이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매일유업의 사사 ‘매일50’은 50년의 역사를 10년씩 엮어 5권의 ‘매일 아카이브북’으로 펴냈다.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한국 낙농사의 발전을 이끌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50 사사총서는 매일유업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낙농의 역사를 함께 정리했다”며 “한국 낙농 산업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매일유업의 역사를 들여보다봄으로써 한국 산업 경제사와 낙농사 속에서 매일유업의 역할과 위치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매일50’은 2000여 편의 기사, 200자 원고지 3800장 분량의 인터뷰, 5800여 가지 사진으로 정리돼 마치 한 시대의 신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매일50’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2020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퍼블리케이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사사 총서의 내용적 가치와 함께 심미적 가치까지 알리면서 기업 사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됐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화장품 제조자 개발 생산(ODM) 기업 한국콜마의 ‘한국콜마, 브랜드를 브랜딩하다’는 기업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얻고 있다. 이는 내부인이 회사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반적 사사의 형식과 달리 작가가 직접 인터뷰 형식으로 30년간의 기업 역사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 박기현 한양대 겸임교수가 한국콜마의 전·현직 임직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고증한 사실들로 한국콜마의 성장사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이번 책을 집필한 박기현 교수는 화장품 산업의 발전을 보며 한국콜마만의 ‘인문 경영’ 등 기업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한국콜마도 30년 역사를 외부인을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니즈가 더해지며 외부인을 통한 사료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7호(2020.07.27 ~ 2020.08.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