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보면 아는 애널리스트의 ‘감’…이제는 AI가 맡는다


[비즈니스 포커스]
- AI리서치 개발한 한국투자증권…애널리스트들이 6개월간 학습 데이터 만들어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하루에 쏟아지는 3만여 개의 뉴스, 투자에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까.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리서치 서비스 ‘에어(AIR : Air Research)’를 통해서다. 에어는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 있는 뉴스를 선별해 제공한다. 또한 뉴스와 계량 분석을 기반으로 요약된 기업 정보를 보여준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R리포트를 통해 하루 종일 시장 상황을 지켜보지 않아도 그날의 핵심 이슈와 주요 종목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며 “애널리스트의 노하우를 담아 뉴스를 분류하고 투자에 도움이 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하면서 투자자뿐만 아니라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이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분석 못하는 ‘스몰캡’ 부문에 집중
한국투자증권 고객들은 7월 2일 출시된 서비스를 매일 오후 5시 30분 ‘AIR 데일리(Daily)’ 메일로 받아볼 수 있다. 핵심 콘텐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투데이 이코노미 뉴스(Today’s Economy News)’다. AI가 뽑은 주가에 영향을 주는 뉴스가 정리돼 있다. 일종의 석간 주식지 역할을 한다. 이어 ‘투데이 AI 리포트(Today’s AI Report)’로 AI가 선정한 종목들이 주가 추이·뉴스 평가·성장성·수익성·밸류에이션·배당 정도 등 6개 지표와 함께 소개된다. 해당 종목을 클릭하면 개별 보고서로 안내한다.


최근 금융사에서 AI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전환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 AI를 활용한 트레이딩 시스템, 챗봇 서비스 등이 대표적으로 시도됐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국내 최초로 애널리스트들의 전문 영역인 시장 분석과 보고서 작성에 AI를 활용했다. 외부 아웃소싱 형태가 아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이 직접 기획하고 설계, 개발한 AI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본격적인 준비 기간은 총 6개월 걸렸다. 기계공학·통계·수학 등을 전공한 퀀트 애널리스트들이 중심이 돼 개발을 이끌었고 리서치센터장을 비롯해 전 애널리스트가 참여해 한 땀 한 땀 원본 데이터(raw data)를 만들었다. AIR는 이슈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딱 보면 아는 애널리스트들의 ‘감’을 기계에 학습시킨 결과다. 이를 위해 애널리스트들이 매일 20~30분씩 시간을 할애해 뉴스를 ‘긍정’, ‘부정’, ‘중립’으로 나눠 분류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가 10만 건 이상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5개의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개발을 주도한 안혁 투자전략부 애널리스트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이자 투자 판단의 시작이 뉴스”라며 “대부분의 뉴스는 주가 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존 방식으로는 모든 뉴스를 분석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상장 기업 2242종목 중 약 1500개는 리서치 보고서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곳들이다. AIR는 특히 중소형주에 강한 특장점이 있다. 이론상으로는 AIR가 상장된 전체 기업을 커버한다. 애널리스트의 분석 대상에서 빠져 있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을 법한 ‘흙 속에 묻힌 진주’를 찾아내 ‘깜깜이 투자’를 방지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기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인공지능 뉴스 분석의 엔진으로 CNN(Convention Neural Network) 알고리즘을 사용했다. 언어를 배울 때 반복 학습이 지속될수록 뇌세포 간의 뉴런 연결이 강해지는 원리다. 축적된 원본 데이터를 머신 러닝 뉴스 엔진으로 학습했고 대량의 뉴스를 빠른 시간에 스스로 분석하게 됐다. 또한 뉴스와 함께 재무 정보와 주가 정보 등 계량 정보를 퀀트 모델을 통해 해당 종목의 펀더멘털과 밸류에이션 매력도를 측정한다. 이렇게 AI가 리포트를 생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다. 리서치센터는 향후 시스템 개선을 통해 10분 이내로 단축할 계획이다.


채널 전략으로는 ‘원 소스 멀티 채널’을 선택했다. AI 리포트는 디지털 환경에 맞게 구현돼 웹 기반으로 배포된다. 모바일과 PC 버전으로 홈트레이딩시스템(HTS)·홈페이지·모바일 웹 등에 적용된다.






AI에 대한 일반적인 두려움은 일자리와 연관된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기획 단계에서 실제 사내에서의 첫 반응은 “AI리서치가 개발되면 애널리스트는 필요 없느냐”는 목소리였다. 애널리스트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담아 뉴스에 점수를 매길 때 “뉴스 분류를 잘하면 잘할수록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피드백이 돌아오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애널리스트와 AI의 ‘협업’”이라고 설득했다. AIR는 리서치센터의 인적 자원을 학습시키고 내재화한 것으로, 애널리스트가 있어야만 개발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오류 등을 수정하며 점차 진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초 자료, 작은 종목을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심층 리포트와 같은 애널리스트의 역량을 발휘하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AI와 애널리스트의 협업으로 시너지
실제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해 말 스몰캡팀을 없애는 과감한 실험을 했다. 기존 스몰캡팀의 역할을 점차 AIR가 담당하는 한편 방대한 기초 자료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다양한 기획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AI를 활용하기에 앞서 먼저 필요한 것은 “직원들의 공감대 형성”이라고 윤 센터장은 강조했다. 서비스 출시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서 내부 직원들도 안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 연구위원은 “처음 설득할 때는 힘들었지만 오픈한 결과 더 좋은 지원을 받으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확인하고 있다”며 “10월부터 해외 기업 리포트 서비스를 시작하면 애널리스트들이 미국 종목을 분석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AI 리서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처음 기획 단계에서부터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했다는 것이다. AI가 ‘중수준(mid-level) 분석’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안 애널리스트는 “AI의 한계를 알아야 전략이 나온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AI와 관련해 다양한 코딩 작업을 해온 안 연구위원은 팀원들과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통해 AI가 “만능은 아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애널리스트는 높은 수준의 분석과 세미나와 같은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한 장점을 갖는 대신 국내 대형주에 국한된 제한된 커버리지를 갖고 고비용을 필요로 한다. AI를 활용한 로보 리서치는 저비용, 넓은 커버리지, 높은 적시성 등의 장점 대신 높은 수준의 분석이 불가하다는 단점을 갖는다. 애널리스트와 로보 리서치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고객 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AIR를 개발했다.


AIR는 10월 1일부터 해외 주식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해외 주식과 관련한 영문 기사를 번역하고 분석해 서비스한다. 또한 한국투자증권이 야심차게 선보이는 ‘미니스톡’과 함께 연동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미니스톡은 1000원부터 금액 단위로 미국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서비스다.


윤 센터장은 이어 “정책이 발표되면 관련 수혜주를 모두 뽑아 분석하거나 뜨는 산업과 같은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스페셜 리포트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charis@hankyung.com



[돋보기]
안혁 투자전략부 연구위원·로보리서치 팀장
“학습 데이터 전처리가 성공 좌우하죠”




AI 리서치 개발 과정에서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가장 공들인 작업은 무엇인가.
“데이터 전처리 과정이다. ‘가비지 인(Garbage-in), 가비지 아웃(garbage-out)’이라는 말처럼 인공지능(AI) 학습에 적절하지 않은 데이터가 들어가면 나오는 결과물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투자 정보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리서치에 모여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이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됐다.”


뉴스의 가치를 긍정·부정·중립으로 나눠 학습시킬 때 애널리스트의 시각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가.
“일반인과 애널리스트가 보는 시각이 다르다면 투자 전문가인 애널리스트의 시각을 따라 정보를 전달하는 방향이 옳다고 봤다. 주가에 미치는 극성(긍부정)은 해당 뉴스가 향후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의 기준으로 판단했고 중요도는 투자 판단 시 꼭 참고해야 하는 뉴스인지 여부를 바탕으로 기준을 정했다. 물론 이 기준 역시 애널리스트의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지 않아야 할 뉴스를 거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AI 엔진은 특정 키워드로 거르는 것이 아니라 패턴과 문맥으로 판단한다. 예를 든다면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미미한 기업의 홍보성 기사 등은 자동으로 걸러진다.”


서비스 출시 후 한 달이 흘렀다. 가시적인 성과는 있나.
“‘AI에 의해 사라질 것인가, AI를 이용해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을 한국투자증권 임직원들이 찾았다는 것이다.”


AI 리서치를 개발해 서비스할 수 있었던 비결을 뭔가.
“첫째,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지원해 주는 조직 문화. 둘째, 업계 최고의 애널리스트. 셋째, AI 경험이 풍부한 퀀트팀이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AI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줄 수 있나.
“기술이 중심이 되면 안 된다. 기술은 업무를 위한 수단이다. AI가 자동화에 효과적인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업무에서 자동화를 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살피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AI 리서치가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자동화(RPA)를 통해 업무를 개선할 수 있는 회사 내부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또한 새로 나오는 기술은 어떤 형태로든 공부하고 경험해 봐야 한다. 이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길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AI의 작동 원리에 대한 10분 분량의 영상이라도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8호(2020.08.01 ~ 2020.08.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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