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보다 어려운 ‘코로나 백신’ 확보 전쟁...미국 등 선구매 공세, 한국은 ‘공동구매’ 연합체 참여


[커버스토리=다가오는 2차 팬데믹의 공포…속도 내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 유례없는 팬데믹 잠재울 ‘최후의 병기’… 한국은 해외 도입·자체 개발 ‘투 트랙’ 전략으로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맹위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세계 경기는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이 비상사태를 잠재울 최후의 병기는 ‘백신’으로 통한다. 치료제가 환자를 대상으로 증상을 없앤다면 백신은 집단 면역을 통해 대유행의 출구 전략을 만든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들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7월 31일 기준 165개의 백신 후보 물질이 개발되고 있고 그중 6개는 임상 3상에 들어갔다. 시험 결과에 따라 이르면 올해 말 백신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벌써부터 백신을 둘러싼 확보전이 뜨겁다. 미국과 영국은 선점 전략에 나섰다. 미국은 8월 5일(현지 시간) 존슨앤드존슨과 백신 1억 회 투여본 공급 계약을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체결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관련 백신 7억 회 분을 그러모으게 됐다. 영국 시장 분석 기관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8월 2일 기준 미국·영국·유럽연합(EU)·일본 등은 코로나19 백신 13억 회 분을 확보했다.





치열한 ‘속도전’…공정한 배분 논란도
1796년 천연두 백신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처럼 전 세계 수많은 제약사가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린 적이 없다. 더욱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유례없는 속도전을 치르는 점에서 이목을 모은다.


백신 개발은 일종의 마라톤과 같다. 최소 5년(에볼라 백신) 이상 걸리고 통상 임상 3상만 4~5년씩 진행하면서 10년 이상을 필요로 한다. 모두 완주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로 2003년 유행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백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19 백신은 그 기간을 12~18개월로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예방’을 목적으로 접종하는 백신은 ‘안전성’과 ‘효능’이 필수 요건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면서 가격·생산·공급·접종 측면에서 도전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실제 출시 시기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온다. 미국 국립전염병연구소(NIAID)의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지 연말까지 해답이 나올 것”이라면서 연내 백신 생산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반면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 ‘가다실’을 개발한 머크(MSD)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은 “12개월에서 18개월의 백신 개발 목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수백만 명이 접종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백신 개발·보급 프로젝트인 ‘초고속 개발 작전’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선진국이 백신 싹쓸이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자국민 치료와 함께 정치·외교적 입지를 넓히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영국이 현재까지 확보한 백신은 자국 인구수의 두 배 이상이다. 어느 백신이 성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수 기업에 계약금을 넣으며 일종의 분산 투자를 하는 셈이다.


일정량의 백신을 전략 비축분으로 남겨 놓고 나머지는 수출하거나 외교전에 활용하는 것도 고려된다. 물밑에선 벌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필리핀은 중국에 코로나19 백신을 요청하면서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접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독일 정부는 미국이 독일의 백신 전문 기업 큐어백에 대한 인수 시도를 막기 위해 지분 23%를 사들이는 등 자국 제약사를 지원하고 나섰다. 독일·중국·러시아 등은 자체적으로 백신 기업을 육성하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논리가 백신 개발을 가속화하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임상 3상에 돌입한 제약사 가운데 적어도 한 곳 이상이 개발에 성공하면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중순에는 실제 접종이 시작된다. 항체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또 다른 이슈이지만 효능을 다소 낮추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팬데믹(세계적 유행)에 대응하자는 게 제약사들의 전략으로 보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로나19 백신이 50% 정도의 효과만 보여도 승인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일반적인 백신 승인 기준은 약 70%다.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 백신 가격 논란
개발이 완료돼도 백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있을지가 문제다. 세계 인구인 78억 명에게 공급하기에는 백신 생산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 현실에서 강대국 중심으로 백신을 확보하는 가운데 이대로라면 저소득 국가에 대한 공급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한 배분 문제가 국제적 딜레마로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 책정도 논란거리다. 아스트라제네카는 1명당 8달러에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모더나는 32~37달러 사이에서 공급 가격을 책정했다. 이들이 만드는 백신은 2회분을 투여해야 항체가 충분히 생길 가능성이 높아 실제 부담은 2배로 늘어난다. 한국만 해도 감당할 수 있지만 가난한 국가들엔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가격이다. 백신이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는 주장과 경제적 가치의 논리 사이에서 눈치 게임이 일어나고 있다.


각국이 연합체를 만들어 대응하는 노력도 나온다. 백신에 대한 신속하고 평등한 보급을 목표로 하는 코백스(COVAX facility)에 가입하면서다. 코백스는 WHO·감염병예방혁신연합(CEPI)·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이 추진하는 코로나19 백신 공급 협의체다. 참여국들이 백신 개발비를 분담하고 추후 백신이 개발되면 각국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백신을 구매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미국·영국·독일·중국 등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하거나 선구매를 통해 물량을 확보한 곳을 제외하고 100여 개 국가들이 참가 의향을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도 코백스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다.


글로벌 백신 전쟁에서 한국 정부의 전략은 ‘투 트랙’이다. 해외에서 개발되는 백신 가운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속히 들여오는 한편 백신 주권을 확보하는 자체 개발 노력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보된 물량은 없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도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임상 1상에 들어간 제넥신을 제외하고 아직 임상 계획을 세우는 단계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아스트라제네카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일부를 국내에서 위탁 생산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보건복지부·아스트라제네카는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인 ‘AZD1222’의 국내· 글로벌 공급을 위한 3자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3상 임상 시험이 진행 중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 후보 중 유력한 주자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백신 물량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어떤 백신을 선택하고 어떻게 확보할지, 누구에게 먼저 접종할지 등에 대해 논의와 결정을 해야 하는 때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지만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6개월 사이 백신을 둘러싸고 글로벌 이합집산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한정된 재정으로 미국과 유럽을 상대하면서 백신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전 세계의 임상 결과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연구가 끝나기 전에 과감히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묵현상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장은 “코로나19의 방역 면에서는 ‘K방역’의 선진 사례를 보여줬지만 백신 분야에서는 그동안 연구·개발(R&D) 등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 리딩이 불가능해 보인다”며 “지금이라도 백신 플랫폼 개발과 생산 시설 확충 등에 투자하고 적어도 품목 허가를 받을 때까지는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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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9호(2020.08.08 ~ 2020.08.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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