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집값이 부른 與 지지율 급락…"집권 4년차 덫 걸려"


[홍영식의 정치판]

- 대통령 지지율 40% 붕괴

- 역대 정부선 공직자 ‘복지부동’·與가 靑에 반기

- “레임덕 초입 들어섰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총선 압승 4개월 만에 분위기가 180도 변했다. 여권이 이를 심상치 않게 보는 이유는 정권 후반기 지지율이 한 번 내려가기 시작하면 되돌려 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의 힘이 빠지면 돌아서는 민심을 잡기 위한 동력도 떨어진다. 역대 정권 모두 경험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문재인 정권도 ‘집권 4년 차 증후군’으로 인한 레임덕 초입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 4년 차 증후군’은 집권 4년 차에 각종 악재들이 터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미끄럼틀을 타면서 역대 대통령 모두 ‘레임덕’을 숙명처럼 겪은 데서 생긴 말이다.

최근 여론 조사를 살펴보면 지지율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는 부정이 긍정을 앞질렀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7년 5월 10일 취임 직후 80%를 넘었으나 올해 8월 들어 30%대 후반까지 밀렸다. 한국갤럽의 8월 11~13일 조사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1%포인트, 이하 자세한 여론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문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9%, 부정 평가는 53%로 나타났다.

이는 2017년 취임 직후인 6월 첫째 주(긍정 평가 84%, 부정 평가 7%)와 비교해 긍정 평가는 두 배 이상 줄었고 부정 평가는 7배 이상 늘어났다.여권은 대통령 지지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긴 40% 밑으로 내려갔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

역대 정부 청와대 참모들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지면 공직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차기 유력 대선 주자 측에 줄을 대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당이 청와대에 반기를 드는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다. 검찰과 경찰 등 권력 기관발(發) 정보 누수 현상도 생긴다. 전형적인 레임덕 징후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약 3년 만에 미래통합당이 민주당을 뚫고 올라가는 결과도 나왔다.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8월 10~12일 전국 성인 1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1.7%포인트 내린 33.4%, 통합당은 1.9%포인트 오른 36.5%로 각각 나타났다(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2.5%포인트). 통합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지른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 시작된 2016년 10월 이후 약 4년 만이다.

◆ 중도층뿐만 아니라 진보·호남 등 여당 지지층도 돌아서

여당이 긴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주요 지지 기반에서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8월 11~13일 조사에서 전주에 비해 30대가 17%포인트, 진보가 7%포인트 각각 떨어졌다. 리얼미터의 8월 10~12일 조사에서 권역별로는 전주에 비해 광주·전라도에서 11.5%포인트, 진보층에서도 3.9%포인트 각각 내려갔다. 4월 셋째 주와 비교해선 진보가 17.8%, 30대가 15.5% 각각 하락했다.

특히 중도층이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으로선 뼈아프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중도층 지지도는 전주보다 0.7%포인트 내린 30.8%로 나타났다. 4월 셋째 주에 비해선 12.1% 내려갔다. 통합당은 전주보다 2.2% 오른 39.6%로 집계됐다.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갤럽의 2017년 6월 첫째 주 조사에서 전체 평균보다 3%포인트 높은 87%를 나타냈다. 하지만 지난 8월 둘째 주 조사에선 평균보다 5%포인트 낮은 34%를 기록했다.

중도층 지지율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스윙보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지지층은 쉽사리 등을 돌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도층의 마음을 잡는 것이 선거에서 중요하다. 이들은 정치 상황과 그때그때의 이슈, 자신들이 관심을 갖는 정책 등에 따라 지지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것도,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중도층의 이탈과 지지가 결정적 요인이 됐다.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하락을 부른 것은 지난 4월 총선 이후 연이어 터진 악재들에 대한 여권의 부실한 대응이 꼽힌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직접 고용 문제를 두고 벌어진 불공정 논란, 윤미향 의혹,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부적절한 대처, 이해찬 대표의 ‘××자식’ 발언 파문, 청와대발(發) 다주택 논란 등 여권이 헛발질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집값이 결정타 역할을 했다.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급등을 잡지 못했고 임대차 3법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여권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이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 ‘권력형 의혹’ 수사·경제난…與 코너로 몰 변수 수두룩

지지율 하락이 레임덕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권성동 의원(무소속)은 “명백한 레임덕”이라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당이 완전히 친문 일색으로 변해 위기 상황에서 당 혁신에 나설 ‘세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며 “경고등이 켜졌는데 정청래
(민주당 의원)는 ‘레임덕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게 언론 탓’이라고 한다.

아예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반면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한병도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는 “몇 달 사이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지지율 추이를 근거로 레임덕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은 뒤 “후속 조치가 발표되면서 시장이 안정화되고 국민이 다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 불리한 ‘빅 이슈’들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권 청와대 고위 참모들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울산시장 선거 하명 수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등 권력형 사건 수사 결과는 정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건’에도 여권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결과도 정권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낼 수 있는 사안이다. 권력 의혹 사건들은 역대 정권들을 레임덕으로 몰아간 전형적인 유형이다. 민주당 ‘8·29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한결같이 ‘정권 말 당 우위’를 외치며 청와대와 선을 그으려는 기색이 역력한 것도 레임덕 징후다.

추가 부동산 대책이 나오더라도 집값 안정화 여부와 관계없이 돌아선 민심을 잡는 데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서울 범강남권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은 “집을 가진 사람은 세금 중과로, 무주택자들은 급등한 집값으로 불만이 팽배해진 상황”이라며 “사나워진 민심으로 지역구를 돌기 무섭다”고 했다. 더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가려졌던 경제 실상들이 부각되면 현 정권은 더욱 코너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윤희숙 통합당 의원은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간 이후 경제가 반등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그때부터 정말 위기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권 말로 갈수록 권력의 말발은 힘을 쓰기 어렵다”며 “‘역(逆)밴드왜건(지지율이 고공 행진하다 악재가 이어지면서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됨)’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권 핵심부에선 반성을 외치면서도 정책 변화보다 ‘개혁 정책’ 기조 강화를 통한 위기 돌파 기류가 강하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0호(2020.08.17 ~ 2020.08.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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