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보스’에 열광하는 유저들…게임업계 판도 바꾼 AI

-[스페셜리포트 ①] 기획부터 조작까지 ‘AI 혁신’ 이룬 3N(엔씨·넥슨·넷마블)…게임 넘어 신성장 동력 찾는다



#인공지능(AI) 조수가 애니메이터를 도와 캐릭터를 그린다. 게임 채팅창에서는 AI가 욕설과 광고를 걸러낸다. AI가 적용된 괴물 보스는 게임 내 전쟁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며 유저들을 괴롭힌다. 단지 음성만으로 게임을 시작하거나 조작할 수도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AI 기술은 우리 삶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실생활은 물론 모든 산업에 걸쳐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업계는 AI 관련 기술을 게임에 접목해 새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게임업계의 AI는 활용 범위가 남다르다. 게임 기획부터 개발, 미술 작업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게임 안 유저들의 재미를 높이고 동시에 개발자들의 역량 역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넥슨·넷마블 등 이른바 한국 ‘3N’의 AI 연구·개발(R&D)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AI를 접목하며 신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전략이다.

◆엔씨, AI 향한 윤송이의 10년 의지

엔씨소프트는 AI가 생소했던 2011년 태스크포스(TF) 형태로 AI 연구 조직을 꾸렸다. 지금은 게임업계의 AI 투자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국내 게임업계 중 가장 앞선 결정이었다. 이 TF는 현재 게임·스피치·비전 AI를 연구하는 ‘AI센터’와 언어·지식 AI를 연구하는 ‘자연어처리(NLP)센터’로 확대됐다. 현재 AI 전문 개발 인력만 150명에 이른다.

배경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사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2011년 윤 사장은 일찍부터 AI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AI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윤 사장은 현재 엔씨소프트의 북미 진출을 위해 현지에 머무르며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데이터와 원천 기술 확보에 전념해 오던 엔씨소프트는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술 성과를 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과 연관된 AI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지향점은 조직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엔씨소프트의 AI 조직은 AI센터와 NLP센터 등 두 개를 축으로 하위에 게임AI랩·스피치랩·비전AI랩·언어AI랩·지식AI랩 등 5개의 랩(Lab)을 운영하고 있다.

5개의 랩 가운데 게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서는 ‘게임AI랩’ 단 하나다.

게임AI랩에서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사람을 돕는 AI 조수를 연구하고 있다. 게임 개발에 필요한 무수한 시행착오와 소요 시간, 비용 단축 등 AI를 통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보이스 투 애니메이션(Voice to animation)’이라고 불리는 AI 기술은 음성에 맞춰 캐릭터의 표정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생성한다. 수작업으로 하면 1분짜리 대화에 필요한 표정을 그리는 데만 하루가 족히 걸리지만 ‘보이스 투 애니메이션’ 기술을 활용하면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기계 학습 기반의 그래픽스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게임 그래픽스의 품질을 높이는 한편 애니메이터(Animator)의 수작업을 줄이기 위한 AI 기술들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백 명의 캐릭터가 하나의 게임 화면 안에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딥러닝 기반 역운동학’ 기술도 개발했다.

게임 내에도 AI 기술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M’의 보스 몬스터에 AI 기술을 적용했다. 지금까지 게임에서 등장한 보스들은 게이머들에게 아이템을 주기 위한 자원일 뿐이었다면 AI가 적용된 보스는 게이머들의 전쟁 상황을 조율하는 조율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리니지2M의 여왕개미 보스는 자신의 굴에 들어온 사람들 중 어떤 혈맹이 우세하고 위기인지 파악한다. 그에 따라 최대한 많은 시체를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 밖에 약자를 도와주는 보스, 캐릭터 전체에 페로몬을 뿌려 게이머들의 상태를 일거에 바꾸는 보스도 등장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 적용을 목표로 음성 게임 조작 기술인 ‘보이스 커맨드’를 개발하고 있다. ‘입구로 이동, 지원 요청’ 등 간단한 명령부터 가능하도록 적용할 계획이다.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AI가 대결에서 프로게이머를 이긴적도 있다. 엔씨소프트는 2018년 e스포츠 대회 '블소 토너먼트 2018 월드 챔피언십' 결선 현장에서 게임하는 AI를 선보였다. 이날 대회에서는 공격형·방어형·공수 균형 AI가 한국·중국·유럽 프로 게이머들을 상대로 접전을 벌였다.

AI의 활약은 게임에만 그치지 않는다.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답게 야구를 활용한 AI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AI 기자’도 개발했다. 머신 러닝 기반의 AI 기술로 작성되는 기사는 국내 최초다. AI 기자는 일기예보 데이터와 한국환경공단의 미세먼지 자료를 파악한 뒤 스스로 기사를 작성한다. 매일 새벽·아침·오후에 하루 3번 작성한다.

◆넥슨, AI 조직 300명 규모로 키운다

넥슨은 2017년 인텔리전스랩스(전 분석본부)를 설립하며 AI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텔리전스랩스는 게임의 룰·시나리오·그래픽 등 게임을 구성하는 콘텐츠 외에도 게임 접속부터 종료까지 유저 경험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넥슨은 인텔리전스랩스를 설립한 이후 현재까지 200여 명 수준의 인력을 확보했다. 올해도 지속적으로 인력을 채용해 인텔리전스랩스를 300여 명 규모의 조직으로 키울 계획이다.

인텔리전스랩스에서는 자체 분석 플랫폼인 넥슨 애널리틱스(NEXON Analytcis)를 개발해 다양한 게임에 적용하고 있다. 넥슨 애널리틱스는 사용자들이 게임에 남기는 여러 데이터를 분석한다. AI가 게임 내 이상 현상이나 불법 프로그램 사용을 걸러내기도 한다. 욕설은 물론 광고성 채팅도 분류해 낸다.

실제로 ‘서든어택’에서는 1년 만에 수만 개의 욕설 계정을 탐지해 냈다. ‘메이플스토리M(글로벌)’에서는 영문으로 된 광고성 채팅을 매일 1만 개 이상 필터링하고 있다.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유저가 직접 업로드할 수 있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성인물 등을 분리해 낼 수 있다. 이는 일부 게임과 홈페이지에 적용된 상태다. 이와 유사한 기술을 활용해 ‘서든어택’에서는 월핵(벽을 투시하는 종류의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유저의 화면과 정상 유저의 화면을 AI에 학습시켜 이를 차단하고 있다.

AI가 사용자들의 게임 실력뿐만 아니라 게임 성향을 판단해 서로를 매칭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돌격 플레이를 선호하는 유저들끼리 플레이하는 것보다 후방 지원을 선호하는 유저를 함께 섞어 주는 것이 더 완벽한 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면 이를 고려해 팀을 배분한다.



◆AI로 광고 사기·이상탐지 가능

넷마블은 2014년부터 개인 맞춤형 게임 서비스를 위해 AI 기술을 연구해 왔다. 특히 ‘사람과 같이 놀아주는 게임 AI’를 지향점으로 내세웠다. AI 기술을 통해 이용자의 특성을 분석하고 각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는 지능형 게임을 추구했다.

2018년에는 AI 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심도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해 전담 연구 조직인 AI센터를 설립했다. 넷마블 지능형 게임의 핵심은 AI 플레이어가 이용자 패턴을 학습해 지속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한다.

넷마블 AI는 이상 탐지 시스템을 적용해 일반 사용자들과 매우 다른 행동을 하는 이상 유저를 탐지한다.

김동현 넷마블 AI센터장은 “시스템 적용 전후를 비교했을 때 어뷰징(게임의 시스템을 이용해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는 행위) 탐지율이 최대 10배 가까이 높아졌다”며 “현재 이 시스템은 ‘리니지2 레볼루션’과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 ‘마블 퓨처파이트’, ‘A3 : 스틸얼라이브’, ‘마구마구2020 모바일’ 등에 적용됐다”고 말했다.

한편 게임 내 광고 사기를 잡아내는 데도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김동현 센터장은 “전 세계에서 로봇을 활용한 광고 사기율이 약 20%에 육박한다”며 “머신 러닝 기술을 통해 모든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실제 이용자들과 허수들을 구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넷마블 AI센터는 게임에 도입 가능한 음성 AI 기술을 지속 연구 중이다. 이 기술이 도입되면 터치나 입력으로 진행되는 게임 플레이를 음성으로도 가능해진다. 지난 5월 넷마블은 ‘A3 : 스틸얼라이브’에 음성 AI ‘모니카’를 도입했다.

이용자가 게임을 실행해 “모니카, 메인 퀘스트 시작해줘”라고 말하면 메인 퀘스트가 자동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퀘스트 외에도 지역 맵 보고 끄기, 스킬 출력하기, 장비 도감 등 다양한 게임 메뉴를 음성으로 이용할 수 있다.

넷마블은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구글·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AI 기술 구현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넷마블은 2023년 준공 예정인 과천 G-타운 개발 사업에도 참여해 AI R&D 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스마일게이트 역시 최근 AI센터를 설립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음성 인식, 이미지 인식, 기계 번역, 자연어 검색 등 주로 정확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설계된 기존 AI 기술들과 달리 감성을 AI로 풀어내거나 공감·소통·적응·기억 등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기계적인 응답에서 벗어나 인간처럼 상호 작용하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전략이다.

한우진 스마일게이트 AI센터장은 “앞으로 게임과 영화 등 스마일게이트의 핵심 사업 분야는 물론 다양한 이종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1호(2020.08.22 ~ 2020.08.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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