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위탁판매원도 퇴직금 받을 수 있나?…2017년 첫 인정 이후에도 판결 엇갈리는 이유 [법조 레이더]

[법조 레이더]
-실질 근로관계 내용에 따라 ‘노동자성’ 상반된 결론…지휘 감독, 공동 이해, 종속 관계 등 판단



[한경비즈니스 =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생산 업체와 판매 대행 계약을 하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위탁 판매하는 매장 관리자들을 해당 생산 업체의 직원(노동자)으로 봐야 할까.

최근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재차 나왔다. 2017년 위탁 판매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유사 소송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엔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판결들이 많아 나오고 있는 모양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여부를 판단할 때는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어떠했는지가 중요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같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성 인정 여부에 대해선 왜 상반된 결론이 나왔는지 살펴본다.

◆“노동자 아니다” 대법 판결 잇달아

먼저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사례들이다. 백화점에서 삼성물산과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의류 제품을 각각 위탁 판매하던 매장 관리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모두 기본급을 받지 않고 회사 제품을 판매한 후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일했다. 이들은 회사를 떠난 이후 사실상 노동자로 일했지만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며 각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물산 사건은 지난 7월 원고 패소로 최종 결론이 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고들은 삼성물산에 일별·주별·월별 매출 현황을 보고해야 했고 매출 실적이 부진했다면 구체적인 부진 사유와 매출 활성화 방안도 보고해야 했다. 또 원고들은 삼성물산이 정한 가격에 따라 상품을 판매해야 했고 삼성물산은 매장에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사용자와 노동 제공자 사이 어느 정도의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는지가 노동자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하지만 법원은 삼성물산 사건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매출 실적이 부진할 경우 매출 활성화 방안 제시 등을 요구하긴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매출 실적이 우수한 이들에게 추가적인 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했다”며 “매출액에 대해선 원고들도 이해관계가 있었고 원고들의 실적이 피고의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상 매출 실적을 높이라고 지시했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지휘·감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상품 가격이나 진열 방식 등을 삼성물산이 정한데 대해서도 ‘브랜드의 통일성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가 원고들의 구체적인 출퇴근 시간을 통제하거나 근태관리를 하지 않았다”며 “원고들은 스스로 고용한 판매 사원에게 매장 업무를 맡기고 개인적인 용무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1·2심과 대법원 모두 같은 판단을 내렸다.

◆코오롱 사건 원고, 승소→패소→패소

8월 초 역시 원고 패소로 확정된 코오롱인더스트리 사건에서의 원고들의 근무 형태는 삼성물산 매장 관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심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매장의 위치와 판매 가격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피고가 이를 모두 결정했다”며 “피고는 원고들에게 달성해야 할 매출액 목표를 제시하고 판매 실적을 3등급으로 나눠 평가하는 등 원고들의 업무 수행과정을 상당한 정도로 지휘하고 감독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매출액 목표 제시 등 부분에 대해선 “목표 달성을 독려한 것은 원고들의 매장이 백화점에서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일정한 매출액과 점유율은 계약이 지속되는 전제이자 피고뿐만 아니라 원고들과도 밀접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만큼 목표 달성을 독려하기 위한 조치를 지휘·감독권 행사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제품 가격 등을 회사가 정해준 데 대해서도 “원고들은 제품의 판매 금액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지급받지만 피고는 재고 발생이나 마진율에 따른 손해를 최종적으로 부담해 피고로서는 마진을 고려하지 않고 판매 금액을 늘리기 위해 저가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방지할 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종속된 관계에서 비롯된 조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도 항소심 판단이 유지됐다. 즉 삼성물산과 코오롱 사건 모두에서 법원은 사측의 조치가 △사측의 최소한의 이익 유지를 위해 필수 불가결했고 △원고들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2017년 노동자성 인정된 이유는?


그렇다면 2017년 대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매장관리자들(A회사와 판매 용역 계약 체결)은 이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A사는 2005년까지 백화점 판매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그러다가 2005년 하순 이들에게서 일괄 사직을 받고 이후 고용 계약이 아닌 판매 용역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백화점 판매원들을 충원해 왔지만 계약 형식이 바뀐 전후로 업무 내용이 달라진 게 없었다.

특히 삼성물산과 코오롱의 원고들은 고정급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명확했지만 A사의 사건에서는 달랐다. 대법원은 당시 “일부 판매원들의 계약서에는 수수료가 아닌 연봉이 기재돼 있는 경우가 있었으며 1년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경우에도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지 않았다”며 “판매 용역 계약 체결 이후에도 피고는 내부 전산망을 통해 출근 시간 등록, 아르바이트 근무 현황표 제출, 재고 실사 관련 공지 등 업무와 관련한 각종 공지를 했다”고 지적했다.

또 A사는 일부 원고들에 대해 회식비 허위 청구 등을 이유로 징계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매장으로 이동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즉 같은 ‘백화점 위탁 판매원’이더라도 사측과의 관계가 삼성물산이나 코오롱의 원고들과 차이가 있어 노동자성을 둘러싼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이다.
[돋보기] 타 직업군도 소송 잇달아…‘노조법상 노동자’는 훨씬 더 폭넓게 인정
백화점 위탁 판매원이 아닌 다른 직업군들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성을 가리는 구체적인 기준은 △노동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지 △노동자가 취업 규칙 또는 복무 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노동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정수기 수리기사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에 대한 상반된 1심 판결들이 나왔다. 수리기사들이 일정 정도의 재량권을 갖고 업무를 할 수 있었는지에 따라 노동자성이 결정됐다. 사측의 매뉴얼에 따라서만 업무를 해야 했던 쪽은 노동자성이 인정됐다. 방과후 교사와 채권추심원에 대해서도 최근 상반된 판례가 나온 바 있다. 학원 강사와 웨딩 플래너 등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한편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보다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노조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과 관련된 법이다. 반면 근로기준법은 개별 사업장에서의 근로 조건을 규정하는 법이다. 가령 택배 운전사 등은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즉 노조를 만들어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퇴직금 청구 등은 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되면 고용보험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에 법원이 보다 깐깐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는 평가다.
twopeopl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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