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카드·통신 등 영업비 절감으로 이익 늘어…현재보다 미래가 걱정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역대 최악의 실적을 받아들 것이란 예측과 달리 흑자 전환에 성공하거나 영업이익이 늘어난 기업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업종이 항공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여객 수요가 뚝 끊겼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에 집중하는 ‘역발상’을 통해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또 코로나19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역설적으로 좋은 실적을 낸 곳도 있다.
이를 ‘불황형 흑자’에 비교할 수 있다. 불황형 흑자는 경기가 불황에 돌입해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수치상 무역 수지가 흑자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무역 수지를 분석할 때 쓰이던 개념이지만 현재 한국 기업들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기업에 ‘치명타’ 날린 코로나19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 여행·항공 산업이 멈춰 섰음에도 불구하고 2분기 대형 항공사(FSC)들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대한항공은 올해 2분기 기준 영업이익 1485억원, 당기순이익 162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1조6909억원으로 전년 대비 44% 감소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영업이익은 2221억원, 당기순이익 1739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흑자 전환했다.
양대 국적사가 흑자 전환에 성공했던 것은 화물 수송과 영업비용 절감 덕분이었다. 대한항공은 화물기 가동률을 전년 대비 22% 늘렸고 그 결과 화물 수송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7.3%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도 2분기 화물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5% 증가했고 영업비용은 56% 감소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화물부문은 여객기 운항 감소로 늘어난 화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스케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화물기 전세편을 적극적으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양 사는 여객기 화물칸을 활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벨리 카고(belly cargo)’ 영업을 전략적으로 늘렸다. 특히 화물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주·유럽 노선과 같은 장거리 노선에서 전년 동기 두 배 이상의 매출이 증가하며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실적 방어에 성공한 또 다른 업종은 카드업계다. 올 상반기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약 1조643억원으로 전년 대비 21.2% 증가했다.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인 곳은 하나카드로 상반기 당기순이익 65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99.3% 급증했다. 롯데카드의 당기순이익은 643억원으로 전년 대비 37.6% 증가했고 현대카드도 1662억원으로 36.4% 증가했다.
카드업계의 상반기 당기 순이익 증가는 고객들의 외부 활동이 줄면서 여행 업종, 면세점, 놀이공원, 영화와 관련한 마케팅 비용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로 여기고 있다. 또 2분기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 약 9조6000억원이 개별 신용·체크카드를 통해 지급되면서 카드 이용 실적이 급등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언택트주로 꼽히는 통신업계도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KT·SK텔레콤·LG유플러스의 연결 기준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6%, 11.4%. 59.2%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디지털 전환과 언택트 산업 확대에 따른 것이다.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면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인터넷데이터센터(IDC)와 클라우드 등 기업 간 거래(B2B)가 증폭됐다. 또 온라인 커머스와 미디어 등이 통신 3사의 신규 수익원으로 자리 잡으며 실적이 늘어났다.
◆“내수에만 기댄다면 한계에 부닥칠 것”
개별 산업군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전체 경기 흐름에도 불황형 흑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난 6월 경상수지는 68억800만 달러 흑자로 8개월 만에 최대 흑자 폭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인 56억7000만 달러보다 12억1000만 달러 증가했다. 수출과 수입은 4개월 연속 감소했는데 서비스 수지의 적자 규모가 해외여행 급감에 따른 여행 수지 개선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라고 해석한다. 지금의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 증가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수출 증가율 둔화와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감소해 빚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2분기에는 1분기 급증했던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주춤했고 이에 따라 야외 활동이 늘어나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소비가 촉진되는 긍정적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수도권으로 재확산되는 시점에서 하반기 기업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신과 같은 언택트 업종들은 코로나19의 수혜를 본 것”이라며 “반도체 수출도 좋았지만 이는 ‘언택트 효과’에 기반한 것이라 만약 그 수요가 줄어드는 3분기 이후에는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내선 수요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 항공업계, 소비 위축과 하반기 연체율 상승이 우려되는 카드업계의 전망은 다소 어둡다. 김 교수는 “감염병의 확산이 지속된다면 향후 3분기는 내수 의존도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의 실적 향상도 한계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와 채용 등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깊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2분기 기업들의 불황형 흑자는 결국 ‘허리띠를 졸라 맨’ 결과이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8월 7일 ‘2020년 국내외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연간 성장률이 마이너스 1%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고용 부문에서는 “올해와 내년 평균 1% 미만의 저성장이 예상되고 장기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선뜻 고용 확대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흐름이 자리 잡으면서 자동화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면 일자리가 더더욱 감소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투자 또한 선뜻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은 “반도체는 2018년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 뒤 공급 과잉에 따른 단가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항공·자동차 업종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산업으로서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장기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서비스 업종에서도 당초 통신 관련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내수 부진 여파로 5세대 이동통신(5G) 관련 수요가 확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업들이 투자나 마케팅을 줄이고 단기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더라도 전반적인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역대 최악의 실적을 받아들 것이란 예측과 달리 흑자 전환에 성공하거나 영업이익이 늘어난 기업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업종이 항공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여객 수요가 뚝 끊겼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에 집중하는 ‘역발상’을 통해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또 코로나19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역설적으로 좋은 실적을 낸 곳도 있다.
이를 ‘불황형 흑자’에 비교할 수 있다. 불황형 흑자는 경기가 불황에 돌입해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수치상 무역 수지가 흑자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무역 수지를 분석할 때 쓰이던 개념이지만 현재 한국 기업들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기업에 ‘치명타’ 날린 코로나19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 여행·항공 산업이 멈춰 섰음에도 불구하고 2분기 대형 항공사(FSC)들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대한항공은 올해 2분기 기준 영업이익 1485억원, 당기순이익 162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1조6909억원으로 전년 대비 44% 감소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영업이익은 2221억원, 당기순이익 1739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흑자 전환했다.
양대 국적사가 흑자 전환에 성공했던 것은 화물 수송과 영업비용 절감 덕분이었다. 대한항공은 화물기 가동률을 전년 대비 22% 늘렸고 그 결과 화물 수송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7.3%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도 2분기 화물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5% 증가했고 영업비용은 56% 감소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화물부문은 여객기 운항 감소로 늘어난 화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스케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화물기 전세편을 적극적으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양 사는 여객기 화물칸을 활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벨리 카고(belly cargo)’ 영업을 전략적으로 늘렸다. 특히 화물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주·유럽 노선과 같은 장거리 노선에서 전년 동기 두 배 이상의 매출이 증가하며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실적 방어에 성공한 또 다른 업종은 카드업계다. 올 상반기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약 1조643억원으로 전년 대비 21.2% 증가했다.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인 곳은 하나카드로 상반기 당기순이익 65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99.3% 급증했다. 롯데카드의 당기순이익은 643억원으로 전년 대비 37.6% 증가했고 현대카드도 1662억원으로 36.4% 증가했다.
카드업계의 상반기 당기 순이익 증가는 고객들의 외부 활동이 줄면서 여행 업종, 면세점, 놀이공원, 영화와 관련한 마케팅 비용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로 여기고 있다. 또 2분기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 약 9조6000억원이 개별 신용·체크카드를 통해 지급되면서 카드 이용 실적이 급등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언택트주로 꼽히는 통신업계도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KT·SK텔레콤·LG유플러스의 연결 기준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6%, 11.4%. 59.2%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디지털 전환과 언택트 산업 확대에 따른 것이다.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면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인터넷데이터센터(IDC)와 클라우드 등 기업 간 거래(B2B)가 증폭됐다. 또 온라인 커머스와 미디어 등이 통신 3사의 신규 수익원으로 자리 잡으며 실적이 늘어났다.
◆“내수에만 기댄다면 한계에 부닥칠 것”
개별 산업군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전체 경기 흐름에도 불황형 흑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난 6월 경상수지는 68억800만 달러 흑자로 8개월 만에 최대 흑자 폭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인 56억7000만 달러보다 12억1000만 달러 증가했다. 수출과 수입은 4개월 연속 감소했는데 서비스 수지의 적자 규모가 해외여행 급감에 따른 여행 수지 개선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라고 해석한다. 지금의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 증가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수출 증가율 둔화와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감소해 빚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2분기에는 1분기 급증했던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주춤했고 이에 따라 야외 활동이 늘어나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소비가 촉진되는 긍정적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수도권으로 재확산되는 시점에서 하반기 기업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신과 같은 언택트 업종들은 코로나19의 수혜를 본 것”이라며 “반도체 수출도 좋았지만 이는 ‘언택트 효과’에 기반한 것이라 만약 그 수요가 줄어드는 3분기 이후에는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내선 수요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 항공업계, 소비 위축과 하반기 연체율 상승이 우려되는 카드업계의 전망은 다소 어둡다. 김 교수는 “감염병의 확산이 지속된다면 향후 3분기는 내수 의존도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의 실적 향상도 한계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와 채용 등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깊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2분기 기업들의 불황형 흑자는 결국 ‘허리띠를 졸라 맨’ 결과이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8월 7일 ‘2020년 국내외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연간 성장률이 마이너스 1%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고용 부문에서는 “올해와 내년 평균 1% 미만의 저성장이 예상되고 장기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선뜻 고용 확대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흐름이 자리 잡으면서 자동화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면 일자리가 더더욱 감소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투자 또한 선뜻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은 “반도체는 2018년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 뒤 공급 과잉에 따른 단가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항공·자동차 업종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산업으로서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장기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서비스 업종에서도 당초 통신 관련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내수 부진 여파로 5세대 이동통신(5G) 관련 수요가 확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업들이 투자나 마케팅을 줄이고 단기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더라도 전반적인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