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주범에서 해결사로…‘바이오플라스틱’ 개발 나선 화학업계

[스페셜 리포트]
-‘탈플라스틱 시대’…잘 썩는 친환경 소재 ‘바이오플라스틱’ 주목
-세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 연평균 19% 성장
-SK·LG·롯데·한화, 생분해 포장재 공급하고 용기용 재생 소재 개발·상용화 돌입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5349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했다. 특히 플라스틱류는 848톤으로 15.6%나 증가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시행하면서 정부가 식당·카페 등에서의 컵·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다량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배출하는 택배·배달·포장이 급증한 영향이다.

플라스틱은 열이나 압력을 가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가공하기 쉬운 재료 특성 때문에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추앙돼 왔다. 하지만 장점으로 작용했던 재료의 내구성 때문에 쉽게 썩지 않아 이제 인류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의 플라스틱 소비 형태를 유지한다면 2050년에는 연간 11억 톤의 플라스틱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해 인류 생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튼튼하고 편리하면서 잘 분해되는 ‘바이오플라스틱’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 6개월~1년 사이 썩고 퇴비화까지

바이오플라스틱(bioplastics)은 기존 화석 연료로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보완재 또는 대체재인 친환경 플라스틱 원료와 제품을 말한다. 유래와 생분해성에 따라 생분해성 플라스틱(biodegradable plastics)과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bio based plastics)으로 구분된다.

한국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은 사용 후 폐기했을 때 일정한 조건에서 미생물 등의 작용으로 6개월~1년 사이 물과 이산화탄소로 메탄 또는 기타 바이오매스로 완전히 분해되는 플라스틱이다. 일반 플라스틱이 썩기까지 500년 이상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해 친환경적이다.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은 사탕수수·옥수수·나무·볏짚 등 식물 유래 원료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한 성분을 일정량 이상 포함시키면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으로 볼 수 있다.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은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다르게 분해되지는 않지만 바이오 유래 자원을 상당 부분 사용했기 때문에 기존의 석유계 플라스틱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환경 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 제품과 마찬가지로 사용될 수 있고 사용 후에는 폐기물을 일정 조건을 갖춘 시설에서 퇴비화할 수 있다. 연소시키더라도 발생 열량이 낮아 다이옥신 등의 유해 물질이 방출되지 않는 친환경 플라스틱이다.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은 높은 생분해성 특성으로 석유계 난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이 사용되는 비닐봉지·컵·포장재·식품 용기와 같은 생활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하고 자동차·전자기기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생분해성 소재 복합화를 통해 해양과 토양 환경에서 분해가 가능한 생분해성 어구·어망 등의 제품에도 사용할 수 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많은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 기존 석유계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각광 받으며 관련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은 2017년 기준 170억 달러 규모로 파악되며 2017년 이후 연평균 19.2% 성장했다. 2022년 409억 달러의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소재의 등장과 각국의 사용 촉진제도 도입 효과를 고려하면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주요국에서 기존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를 강화하면서 바이오플라스틱 상용화는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바이오플라스틱의 최대 생산국은 미국, 최대 소비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특히 EU 등 선진국은 환경 보호를 이유로 관련 규제 강화와 함께 정부가 적극적으로 바이오 화학 산업을 키우는 추세다.

EU는 해양 오염의 85%를 차지하는 플라스틱 제품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킬 방침이다. 2021년부터 빨대·컵·포크·나이프·접시 등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2030년까지 유럽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 중 절반 이상을 재활용한다. 프랑스는 2017년부터 과일과 채소 봉지뿐만 아니라 일부 유형의 포장재에 퇴비화할 수 있는 바이오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는 에너지 전환과 녹색 성장에 대한 법률을 채택했다.

한국에는 1990년대 이후 바이오플라스틱 개발이 본격화했지만 정부 규제, 가격, 원료 수급, 사업성 문제로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투자 확대 등 관련 시장이 활성화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해 소재 시장의 메가트렌드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해양으로 매년 유출되는 플라스틱은 연간 800만 톤에 달한다. 미세 플라스틱을 해양 생물이 섭취함으로써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인간에게까지 그 고통이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1주일에 1인당 직접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약 5g으로 신용카드 한 장 분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북태평양의 플라스틱 섬이 만들어지고 해양 생물이 해안가로 떠내려 온 플라스틱을 먹고 떼죽음을 당하자 기업들도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온 화학 기업들이 바이오플라스틱 관련 연구에 앞장섰다.

생분해 가능한 바이오플라스틱 소재 중에서 전분과 폴리젖산(PLA)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정부가 바이오플라스틱을 5대 유망 녹색 산업으로 선정하면서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생산 능력을 갖춘 SK케미칼·SKC·롯데케미칼·LG화학·한화솔루션·삼양이노켐·BGF에코바이오 등 화학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 SK·LG·롯데…재생 플라스틱으로 승부

가장 적극적인 곳은 SK그룹이다. SK그룹은 신소재 개발뿐만 아니라 EMC홀딩스 인수를 통해 폐기물 처리 사업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SKC는 2009년 세계 최초로 생분해 PLA 필름을 상용화한 이후 친환경 소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PLA 등 생분해 소재를 더해 만든 포장재(아이스팩 포장재, 의류용 포장 비닐)를 신세계TV쇼핑에도 공급하고 있다.

SKC의 생분해 PLA 필름은 기존 종이 재질보다 물에 강하고 내구성이 우수하면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스타벅스코리아의 바나나 포장재로도 쓰인다. SKC 생분해 PLA 필름은 옥수수 추출 성분으로 만들어 땅에 묻으면 단기간에 생분해되고 유해 성분이 남지 않는다. 투명성과 강도가 뛰어나고 인쇄하기도 좋아 활용 범위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과자나 빵 등 신선식품의 포장재 외에도 종이쇼핑백·종이상자·음료병 라벨·코팅지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SK케미칼은 고투명 소재인 코폴리에스터와 리사이클 페트(PCR-PET)를 혼합해 화장품 용기용 소재인 에코트리아(ECOTRIA)를 출시하며 자원 순환을 위한 신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EU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뿐만 아니라 재활용 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화장품 용기를 포함해 모든 플라스틱 포장재를 재활용해 사용할 방침이다.

일반적으로 페트로 만든 용기들은 색깔이 없고 투명해 내용물이 깨끗하게 보여야 하지만 리사이클 페트를 사용하게 되면 투명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SK케미칼은 에코트리아에 고투명 소재인 코폴리에스터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식품 접촉 기준을 충족하는 리사이클 페트를 혼합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에코트리아는 두껍게 만들어도 밝은색을 유지할 수 있어 두께가 두꺼운 화장품 용기에 최적이다. 김응수 SK케미칼 코폴리에스터 사업부장은 “리사이클 원료를 사용한 소재들은 일반 소재에 비해 대체로 품질이 다소 떨어지지만 에코트리아는 새로 생산된 소재와 견줄 수 있는 소재”라며 “SK케미칼은 앞으로도 리사이클 가능 소재, 리사이클 원료를 함유한 소재를 계속 선보여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도 친환경 소재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2012년 한국 최초로 사탕수수 등 식물 자원에서 추출한 원료로 바이오 페트(PET)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2018년 식물 자원 원료의 PLA 컴파운드를 선보였다. 최근 롯데케미칼은 국내 최초로 화장품과 식품 용기에 적용할 수 있는 재생 폴리프로필렌(PCR-PP) 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는 소비자가 사용한 화장품 용기를 수거한 후 재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리사이클 원료로 만들고 FDA 안전 기준에 적합한 가공 공정을 거쳐 PCR-PP로 재탄생하게 된다.

PCR-PP는 고객사 요청에 따라 플라스틱 리사이클 원료를 30%, 50% 함유한 등급으로 개발됐다. 화장품·식품 용기 등의 사용을 위한 FDA 인증도 한국 최초로 완료했다. 국내외 화장품업계는 2025년까지 포장재를 최대 100%까지 재활용하거나 플라스틱 재활용 원료로 만든 제품을 50%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포장 용기 개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화장품 용기의 PCR-PP 사용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화학은 친환경 PCR 플라스틱과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 등 폐플라스틱 자원의 선순환을 위한 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PCR PC(소비자 사용 후 재활용한 폴리카보네이트) 원료 함량이 60%인 고품질·고함량의 친환경 플라스틱을 개발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향후 PCR PC 원료 함량을 최대 85%까지 높이고 제품군도 ABS와 폴리올레핀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2024년까지 생분해성 고분자인 PBAT와 옥수수 성분의 PLA를 상업화한다.


◆ R&D에 공격 투자…상용화 채비 분주

BGF그룹의 자회사인 BGF에코바이오는 친환경 용기 전문 브랜드 리버트(Revert)를 론칭하고 에코·바이오산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유일하게 PLA 발포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KBF를 자회사로 인수한 바 있다. 글로벌 플라스틱 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포장재 중에서도 강점을 가진 발포 PLA로 구현이 용이한 식품용 용기, 기구·포장재를 생산한다.

BGF에코바이오는 리버트를 기반으로 효율성·경제성·기능성이 모두 뛰어난 제품을 지속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5종의 상품이 상용화됐고 정부 국책 과제를 통해 15종의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발포 PLA를 상용화하고 생분해되는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8월 론칭한 리버트 용기는 편의점 CU에서 판매하는 BGF푸드의 샌드위치와 김밥 용기로 사용하고 있다.

BGF에코바이오는 착공을 앞둔 인천 청라지구 공장을 기반으로 제품 생산 능력을 높일 계획이다. 청라 공장에는 혁신적 연구·개발(R&D)센터를 포함해 1만5623㎡ 규모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BGF에코바이오는 친환경 소재 개발부터 제품 생산, 사용 후 회수되거나 혹은 폐기돼 자연으로 되돌아가기까지의 전 단계가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선순환 솔루션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삼양그룹은 최근 공장 증설을 추진하며 바이오플라스틱 원료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바이오플라스틱 원료 물질인 이소소르비드(ISB)는 식물 자원에서 추출한 전분을 화학적으로 가공해 만드는 바이오 소재로 플라스틱·도료·접착제 등의 다양한 용도에 기존 화학 물질을 대체해 사용할 수 있다.

ISB는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ISB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은 ‘썩는(생분해 혹은 산화생분해) 플라스틱’이 아니다. 바이오플라스틱 중 ‘바이오 베이스 플라스틱’으로 분류되며 분해성에 초점을 두지 않고 탄소 중립형 바이오매스를 적용해 이산화탄소 저감을 통한 지구 온난화 방지 측면에서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ISB로 만든 플라스틱은 내구성·내열성·투과성 등이 향상돼 모바일 기기와 TV 등 전자 제품의 외장재, 스마트폰의 액정필름, 자동차 내장재, 식품 용기, 친환경 건축 자재 등의 소재로 각광 받는다. 현재 ISB를 플라스틱 원료로 가공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 삼양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삼양그룹은 상용화 이후 울산 삼양사 공장에서 파일럿 생산 설비를 운영하며 우레탄·접착제 등 ISB를 이용한 제품 개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7월에는 본격적 생산을 위해 전라북도·군산시와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삼양그룹의 화학 사업 계열사인 삼양이노켐은 710억원을 투자해 군산자유무역지역 내의 2만9000㎡ 부지에 2021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연산 약 1만 톤 규모의 ISB 생산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이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열분해한 뒤 석유 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로 재활용하는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을 위한 R&D를 진행 중이다. 기존 플라스틱 생산 방식을 바꾸고 미생물을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점차 줄여 나갈 방침이다.

HDC현대EP는 종이가 51% 이상 포함된 종이 플라스틱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종이 플라스틱은 화장품이나 식품 포장 용기, 자동차 소재 등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다. CJ제일제당과 대상도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메타볼릭스의 PHA 관련 자산 인수를 통해 미국 보스턴에 있는 연구 시설 및 고급 연구 인력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상용화 연구를 하고 있다. 대상은 전분계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R&D를 진행하고 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7호(2020.09.26 ~ 2020.10.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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