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무죄→유죄’ 계속 뒤집힌 ‘새우젓 뇌물 사건’ [법알못 판례 읽기]
입력 2020-10-20 15:23:44
수정 2020-10-20 15:23:44
[법알못 판례 읽기]
공무원 명의로 새우젓 선물 보낸 어촌계장…‘홍보 목적’ 주장했지만 대법 뇌물로 판단
[한경비즈니스=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A가 본인이 아니라 B(공무원)의 이름으로 329명에게 총 380만원 상당의 새우젓을 선물로 보냈다. B가 이를 먼저 요구하지 않았지만 B는 A가 자신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별다른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A가 B에게 380만원의 뇌물을 줬다고 볼 수 있을까.
1심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뇌물이 맞다”며 원심을 재차 뒤집었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금품을 직접 줘야만 뇌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어촌 마을에서 발생한 ‘새우젓 뇌물 소동’을 통해 뇌물죄의 구성 요건을 따져본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선물 보내
김포 어촌계장이던 A 씨는 2013년 11월 경기도 수산과장이던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선물할 사람이 있으면 새우젓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B 씨는 선물을 보내고자 하는 329명의 명단을 A 씨에게 넘겼고 A씨는 어촌계의 계비로 개당 7700원짜리 새우젓을 구입해 B의 이름으로 선물을 발송했다. 택배비까지 포함해 총 380여만원이 들었다.
A 씨는 평소 B 씨에게 김포·강화 지역 어민의 젓새우 조업 구역과 조업 방법에 대한 분쟁에서 B 씨가 김포 어민들의 편을 들어줄 것을 부탁하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보조금 관련 사업과 어로 행위 단속 업무 시 B 씨가 자신들의 편의를 봐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A 씨와 B 씨 모두 뇌물 혐의를 부인했다. A 씨는 “김포 어촌계에서 새우젓 조업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는 과정에서 B 씨의 이름으로 보내면 홍보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홍보 목적이지 B 씨에 대한 뇌물 공여 목적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B 씨는 “A 씨가 자신의 명의로 새우젓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새우젓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뇌물을 받아가면서까지 선물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사람들이고 명단은 B 씨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수산과의 각 팀이 협의해 정했다”고 주장했다.
뇌물 혐의 유죄로 인정한 1심
하지만 1심은 뇌물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 판결문에는 뇌물죄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 두 가지가 제시됐다. 먼저 “공무원이 그 이익을 수수하는 것으로 인해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의 여부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법리가 제시됐다. “수수된 금품의 뇌물성을 인정하는데 특별한 청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금품이 직무에 관해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 행위와 대가적 관계가 있을 필요는 없다”는 구절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1심은 ‘A 씨와 B 씨의 관계 등을 볼 때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홍보 목적’이었다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새우젓 선물에 홍보용 전단지 등이 동봉된 사실이 없고 김포어촌계 명의가 들어가지도 않았다”며 “선물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B 씨의 지인들이고 경기도 수산과를 감사하는 해양수산부 공무원과 경기도 의원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또 B 씨도 정황상 A 씨가 자신의 명의로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B 씨는 새우젓을 받은 한 해양수산부 과장으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 새우젓이 발송된 사실을 알았다”며 “그런데도 A 씨나 김포 어촌계에 특별히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국 B 씨에겐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사기와 위조 사문서 행사 등 다른 범죄와 함께 기소된 A 씨는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엇갈린 항소심, 대법원 판결
하지만 2심은 새우젓 선물을 받은 329명과 B 씨의 관계에 주목해 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뇌물 혐의가 성립하려면) 사회 통념상 그 329명이 새우젓을 받은 것을 B 씨가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가 증명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B 씨가 2013년 이전에도 개인적인 부담으로 그 329명(또는 그중 일부)에게 선물 등을 보내 왔다거나 2013~2014년 무렵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선물을 보낼 것이 예정돼 있었는데 이를 A 씨에게 보내도록 함으로써 B 씨가 부담을 면하게 된 사정 등이 증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항소심의 판단이었다. 2심은 △새우젓을 보낼 명단을 수산과 각 팀에서 작성해 취합한 점 △명단에 기재된 사람들은 주로 퇴직한 공무원들인 점 등도 무죄의 이유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B 씨가 A 씨로부터 직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받은 특별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2심에서 B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A 씨는 징역 8개월에 집행 유예 2년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새우젓을 받은 사람들은 새우젓을 보낸 사람을 A 씨가 아닌 B 씨로 인식했다”며 “A 씨와 B 씨 사이에 새우젓 제공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존재하고 제공 방법에 관해 B 씨가 양해했다고 보인다”고 했다. B 씨는 명단을 혼자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2014년 A 씨에게 명단을 보낼 때 직접 자신의 지인들을 따로 추가하기도 한 점도 유죄 근거로 제시됐다.
돋보기
뇌물죄 사건에서 직무관련성·대가성 입증 여부가 핵심
“뇌물이 아니라 호의였다.” 뇌물 사건 피의자들이 으레 하는 해명이다. 큰돈이 오갔더라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유죄로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동안의 판례다.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정주 NXC 대표 사이 ‘공짜 주식 수수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2017년 무죄로 판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진 전 검사장은 2005년 ‘20년 지기’ 관계이던 김 대표로부터 4억여원을 무상으로 빌려 넥슨 주식 1만 주를 샀다. 진 전 검사장은 이를 바탕을 120억원대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등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용 뇌물’이 아니라 ‘호의’였다는 두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금융위원회 국장 재직 시절 금융 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500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유 전 부시장 측도 ‘사적 친분 관계’를 내세우며 뇌물이 아니라 호의였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금융위 간부와 금융 업체 관계자 등 관계를 따져볼 때 법원은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 전 부시장은 지난 5월 1심에서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직무 관련성’에서 ‘직무’는 공무원이 명시적으로 법령상 관장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나 관례상 혹은 사실상 직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행위도 포함한다.
명시적인 부정 청탁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금품을 받은 공무원이 증뢰자에게 특정 이익 행위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도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 공무원이 그 이익을 수수하는 것으로 인해 직무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여부도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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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9호(2020.10.17 ~ 2020.10.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