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AI]AI에 ‘감정’ 탑재가 필요할까… 포커페이스 능한 로봇은 공포 대상


[AI 이야기]


페퍼에서 아이보까지 이미 등장한 감정 로봇…감정 표현 있어야 인간과 관계 형성 가능




[한경비즈니스 칼럼=이원형 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조교수, 출처 ]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인공지능(AI) 로봇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감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에서부터 ‘터미네이터(1984년)’, ‘A.I(2001년)’, ‘I, Robot(2004년)’, ‘채피(2015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AI 로봇은 어느 때는 공격성을 가진 모습으로, 어느 때는 인간과 교감하며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감정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붉은 눈동자와 가슴 위치의 붉은 불빛 등으로 그들 안에 무언가 감정과 유사한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감정의 역할


최근에는 적당한 감정 표현이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감정은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거나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며 행동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반대로 감정이 전혀 없는 인간을 상상해 보면 감정의 필요성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행동도 서슴없이 하게 돼 쉽게 다칠 수 있다. 감정은 개인의 생존을 돕고 사회를 이루는 역할을 한다.


AI의 학습 과정에도 이러한 보상 체계가 이미 존재한다. AI도 그것이 달성해야 할 목적에 다가가도록 정보 처리와 업데이트를 반복해야 하는데 하나의 네트워크가 학습될 때 손실함수(loss function)가 정의되고 현재의 가중치(weight) 값에 의한 오차에 따라 이후 가중치의 값을 변화시키게 된다. 강화 학습도 AI가 어떠한 행동을 선택했을 때 보상(positive rewards)이 있으면 이를 학습해 해당하는 행동을 자주 선택하도록 경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손실 혹은 벌(netarive rewards)이 있으면 이를 학습해 해당하는 행동을 회피하도록 경험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감정의 또 다른 역할은 자신의 상태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직관적이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만약 누군가가 복통을 심하게 앓고 있다면 괴로워하는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주위에 알려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 개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 자신은 화를 표출해 다른 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에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감정이 필요할까. 여기서 필자는 ‘그렇다’와 ‘아니다’의 두 가지 답을 모두 하고자 한다. 먼저 ‘아니다’의 경우 AI의 경험적 지식은 인간에게 굳이 공유될 필요가 없다. 배터리가 부족해진 로봇 청소기가 충전 스테이션을 찾아 ‘기분 좋게’ 충전되고 있다고 해 보자.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은 인간에게는 굳이 필요 없는 것이다. 사용자는 로봇이 정상적으로 충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답인 ‘그렇다’가 필요해진다. 로봇이 잘 충전되고 있는지 인간에게 어떻게 알리는 것이 효과적일까. 인간이 직관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배터리 충전이 잘되지 않는다면 붉은 불빛이 깜빡이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잘 충전되고 있으면 푸른 불빛에 편안한 멜로디를 연주하게 한다면 사용자는 빠르게 로봇 청소기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즉, AI 혹은 로봇이 적극적으로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려야 한다면 직관적인 정서 표현을 병행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나아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동일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이러한 기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될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의 등장


사람과 정서적으로 의사소통하는 AI 로봇들은 이미 개발되고 있다. 감정 로봇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며 출시된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Pepper)가 대표적이다. 페퍼는 사람의 표정을 인식하고 정서적인 대화를 하며 점진적으로 사용자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로봇이다. 다만 학술적으로 공개된 바는 많지 않아 구체적인 동작 원리는 앞으로 발표되는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또 신시아 브리질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의 주도하에 개발되는 지보(Jibo)는 패밀리 로봇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사용자와 가정 내에서 다양한 교감을 하고자 한다.

브리질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로봇의 감정 생성과 표현에 대한 연구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의 저서에서는 로봇 내에 정의된 욕구의 상태에 따라 감정 상태가 결정되고 키스멧(kismet) 얼굴 로봇을 통해 감정이 표정으로 표현되는 설계 과정이 설명돼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다른 선구적 연구로는 와세다대의 로봇 WE-4(이후 이 로봇은 코비안이라는 전신 로봇으로 발전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에 적용된 감정 알고리즘이 있고 소니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AIBO)에 적용된 감정 생성·행동 선택 알고리즘이 있다. 이 두 연구 모두 외부 자극을 통해 로봇의 내적 상태가 변화되면 이에 따라 로봇의 감정을 연결해 표정·행동·소리 등으로 표현하는 유사한 흐름의 구조로 돼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도와 감정을 완벽하게 숨기지 못한다.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거짓말이나 숨기고 있던 감정이 들통 날 때가 많다. 하지만 AI는 ‘포커페이스’가 가능하다. 영화 ‘엑스마키나(2015년)’에서는 AI 로봇이 자신의 의도를 철저히 숨겨 자신의 개발자를 죽이고 탈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로봇의 표정에는 주인을 죽인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탈출하고 싶을 때의 절박함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 미래에 로봇이 인간 수준의 지능과 행동 능력을 갖추게 됐을 때 필자는 이렇게 감정과 의도를 숨길 수 있는 로봇이 그렇지 않은 로봇보다 더욱 무섭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AI의 의도와 감정 표현은 사람과 AI 간의 신뢰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무인 자동차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발견했을 때 보행자를 발견하고 멈춰 서겠다는 의도로 별도의 발광다이오드(LED)로 표시할 수 있다면 보행자는 심리적으로 안정되게 길을 계속 건널 수 있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줄어들 수 있다. 또한 AI 로봇팔과 사용자가 부엌에서 함께 요리하는 상황이라면 칼을 쓰고 뜨거운 그릇을 옮기는 작업을 할 때 서로 간의 능동적인 의도 표현이 있어야 원활하고 안전한 작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AI 로봇은 우선 사람을 해치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목적의 달성 상태와 로봇의 행동 의도 등의 내부 상태를 투명하고 직관적으로 사용자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을 확장해 AI 로봇에 윤리의 개념을 담고자 하는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공지능이 나오고 로봇이 인간에게 적대적인 마음을 먹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고민하기에는 아직 많이 이른 것인지 모른다. 그보다 지금 우리에게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감정 표현이 가능한 AI 기술을 통해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먼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감정 표현이 가능한 AI 로봇을 활용하면 이미 접어든 고령화 시대에 따른 노인 자립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자폐 아동이나 정서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의 치료에 활용될 수도 있다.


자폐 아동은 사람과 시선 교환에 어려움이 있는데 로봇과는 시선을 교환한다는 사례가 조사되고 있다. 또한 감정 노동을 AI 로봇으로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전화 상담사나 안내원들의 감정 노동은 육체노동에 따르는 피로도 만큼이나 큰데 이를 보조할 수 있다면 감정 노동 근무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9호(2020.10.17 ~ 2020.10.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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