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 아닌 ‘진짜 협상’을 하는 ‘네고왕’ [김한솔의 경영전략]


[경영전략]


‘정보’를 적극 활용하며 성공적 결과 이끌어 내…상대의 ‘욕구’ 파악도 돋보여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치킨·피자·아이스크림 브랜드는 물론 미용실 체인과 의류 브랜드 그리고 이제는 편의점까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기업 본사를 찾아가 ‘왕(CEO) 만나러 왔다’며 뻔뻔하게 외치는 연예인이 나타났다. 유튜브 채널 ‘네고왕’에 대한 얘기다. 첫 회를 보기 전까지는 연예인이라는 ‘후광’을 업고 막무가내로 떼쓰거나 혹은 이미 사전에 짜인 각본대로 끼워 맞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가 지날수록 다음엔 어떤 협상법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됐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꽉 닫힌 지갑을 30% 이상 낮아진 금액 덕분에 ‘즐거워’하며 돈을 쓰게 만든다. 이게 협상의 힘이다. 네고왕에서 발견한 협상법을 소개한다.


학생들은 가격대가 비싸 쉽게 구매할 수 없다는 의류 브랜드를 찾아간 네고왕. 이 브랜드의 대표를 만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바람대로 80% 할인이라는 엄청난 제안을 한다. 이에 30% 할인으로 맞서는 브랜드 대표. 몇 번의 승강이 끝에 50% 할인으로 절충점을 찾는다. 여기에서 끝났다면 이 협상은 서로 원하는 숫자만 주장하다가 끝나는 ‘흥정’에 불과하다.


정보가 모이지 않는다면 직접 수집하자

합의하는 듯했던 협상에 네고왕이 다른 제안을 한다. “1%만 더, 51% 할인을 하시죠”라고 대표에게 말한다. 직원들은 이미 50% 할인을 받고 있지 않느냐며 이런 제안을 건넨 것이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기분 좋게 구매하게 하려면 이미 제공되는 혜택보다 조금이라도 더 할인해야 한다는 논리를 덧붙였다. 결국 이 협상은 51% 할인으로 타결됐다.


이 장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협상에서 ‘정보’가 가진 힘이다. 네고왕이 50%가 아닌 1% 할인을 더 받아낼 수 있었던 데는 ‘직원에게는 50% 할인 혜택이 적용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협상은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느냐의 싸움일 때가 많다. ‘갑’의 자리에 있는 협상가, 대표적으로 대기업에서 ‘구매자’의 자리에 있는 분들이 많이 갖는 착각 중 하나가 자신들이 협상을 잘한다고 믿는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들이 협상장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개개인의 협상 스킬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비즈니스 포지션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정보’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많은 납품 업체들이 대기업에 납품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얻기 위해 납품 업체들은 계속 어필한다. 자사 제품의 경쟁사 대비 장점이 무엇인지, 어떤 기술과 원재료를 써 품질을 높이는지, 가격은 어디까지 맞출 수 있는지 강조한다. 자연스럽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구매자에게 여러 회사의 정보가 모인다. 그러면 구매자는 A사의 정보로 B사를, B사의 노하우로 C사를, C사의 가격 정책으로 A사를 압박하면서 회사에서 원하는 바를 만들어 낸다. 특별한 협상 스킬이 있어서가 아니라 들어온 정보 덕분에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정보가 모이지 않는 자리라면 협상에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보가 모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네고왕이 그렇다. 브랜드에 대한 정보는 네고왕보다 당연히 브랜드 담당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할인은 왜 불가능한지, 그 행사는 왜 어려운지 등에 대한 논리 싸움에선 이길 재간이 없다. 그래서 협상하기 전에 이들은 항상 시민들을 만나 얘기를 듣는다. 그 브랜드가 경쟁사에 비해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조금 더 지갑을 열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의 주장이 아닌 ‘소비자’의 목소리로 제안한다. 이게 핵심이다. 상대에겐 없는 ‘나만의 정보’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협상력을 좌우한다.




질문을 통해 상대의 니즈를 파악해야

네고왕이 할인을 요구하면 브랜드에선 ‘그렇게는 어렵다’는 답변이 자동적으로 나온다.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와의 협상도 그랬다. 현재 진행 중인 ‘2+1’ 제공 행사를 ‘2+2’ 행사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브랜드는 ‘전례가 없었다’며 거부한다. 앞서 말한 ‘정보’로 맞선 브랜드에 네고왕이 이렇게 ‘카운터 오퍼’를 던진다. 지금처럼 ‘2+1’ 행사를 하되 ‘미니 컵’을 추가로 증정해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다음이 핵심이었다. 바로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시’라는 제한 조건을 붙였다. 반색하는 상대를 보며 던진 네고왕의 한마디에서 협상 비법을 찾을 수 있다. “왕(CEO)들은 자사 앱을 너무 좋아해.”


‘증정품을 추가해 달라’고 주장만 해 봐야 달라질 게 없다. 그 대신 ‘자사 앱 활용’을 통해 상대방이 밝히지 않았지만 중요시하는 ‘고객 데이터베이스 확보’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새로운 제안을 해 협상의 판을 바꿨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 준 덕분이다. 이를 협상에선 ‘욕구(니즈)’라고 말한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상대가 드러낸 ‘요구’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납품 협상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구매자는 좀 더 빠른 납기를 원한다. 하지만 판매자는 일정 조정은 어렵다고 맞선다. ‘납기 일정 앞당겨 달라’와 ‘일정 조정은 안 된다’와 같이 협상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요구다. 이 두 조건 사이의 접점은 없다. 이럴 때 구매자가 ‘왜’ 일정 조정을 원하는지, 반대로 일정 조정이 어려운 판매자의 ‘이유’가 바로 욕구다. 구매자는 ‘신제품 생산’을 위해 일부 품목만이라도 빠른 공급이 필요해 납기 일정 조정을 요청했을 수 있다.


판매자가 ‘배송 차량’에 문제가 있어 납기일 조정이 어렵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제 협상 판은 달라진다. 판매자가 ‘일부’ 제품에 대해서만이라도 납기를 당겨 주면 문제가 풀린다. 혹은 구매자가 배송 차량을 지원해 준다면 협상이 타결될 수도 있다. 그래서 프로 협상가들은 항상 상대의 니즈에 집중한다.


그러면 상대의 니즈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질문하는 것이다. 자신이 요구한 조건을 ‘왜’ 받아들일 수 없는지 확인하는 게 첫 단계다. 여기에서 상대가 만족스러운 답을 해 주지 않는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자신이 제안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다시 질문하자.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들어준 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 내는 게 필요하다. 여기서도 답을 얻지 못했다면 질문의 상대를 넓혀야 한다. 상대와 연관된, 혹은 상대를 잘 알고 있는 다른 이해관계인을 찾아 ‘상대방이 뭘 중요시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가격 조건일 수도 있고 품질이 중요할 수도 있다. 혹은 공급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네고왕이 ‘고객 정보 획득’을 중요시했던 다른 브랜드 대표와의 협상 경험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흔히 협상에 대해 ‘조건’만 오가는 차갑고 냉정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고왕의 협상은 재밌다. 이유가 무엇일까. 납득할 만한 ‘근거’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또 누구 하나만 이긴다면 한 명은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판매 가격의 절반 가까이 할인해 주는 조건을 받아들이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럴 듯한 ‘이유’로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가치’를 얻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상가는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이번 협상에서 ‘무엇을 얻어낼까’가 아니라 자신과 협상한 상대가 ‘무엇을 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9호(2020.10.17 ~ 2020.10.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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