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셋값 비율 상승, 투자자에게 유리…등록임대사업자제도 폐지로 전세 매물 실종
[한경비즈니스 칼럼=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전세 시장이 강세를 보이면서 주택 시장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2017년 3월 75.7%를 정점으로 하락을 거듭해 온 전국 아파트 전셋값 비율이 지난 8월 68.2%로 바닥을 찍고 9월 68.7%로 반등한 것이다. 전셋값 비율이 전월에 비해 높아진 것은 3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서울 주택 시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6년 6월 75.1%를 찍고 하락을 거듭했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 비율은 올해 8월 53.3%까지 하락하다가 9월 반등해 53.6%를 기록하고 있다. 4년 3개월 만의 반등이다.
전셋값 비율은 전셋값을 매매가로 나눈 비율이다. 어떤 아파트 매매가가 10억원이고 전셋값이 6억원이면 전셋값 비율은 60%라는 의미다. 매매가는 10억원 그대로인데 전셋값이 7억원으로 오른다면 전셋값 비율은 70%로 올라간다. 반대로 전셋값은 6억원 그대로인데 매매가가 8억원으로 떨어져도 전셋값 비율은 75%로 올라간다. 결국 전셋값 비율이 높아지는 경우는 상승장에서 전셋값 상승률이 매매가 상승률보다 높거나 하락장에서 매매가 하락률이 전셋값 하락률보다 높을 때 발생한다.
전셋값 비율 상승, 갭 투자 부르나
그런데 어떤 경우라도 전셋값 비율이 오른다는 것은 투자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투자자는 매매가와 전셋값의 차이인 실투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투자에 유리한 상황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실투자금이 줄어들면 수익률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3억원의 전세를 끼고 5억원짜리 A라는 집을 샀는데 1년 후 집값이 6억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매매가 상승률은 20%(=6억원÷5억원-1)이지만 실투자금은 2억원이므로 수익률은 50%가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4억원의 전세를 끼고 5억원짜리 B라는 집을 샀는데 1년 후 집값이 6억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매매가 상승률은 20%이지만 실투자금은 1억원이므로 수익률은 100%가 된다. 전셋값 비율 60%짜리 A집과 전셋값 비율 80%짜리 B집 모두 상승률은 20%로 같지만 수익률은 두 배나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전셋값 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실투자금이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기대 수익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갭 투자가 다시 성행할 여지가 커진다는 의미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전셋값 강세 현상은 일시적일까. 또 정부의 공언대로 몇 달 후면 안정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흐름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전셋값 강세 현상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의도와 달리 시중의 전세 매물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에서 매매 시장도 안정시키고 전세 시장도 안정시킬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시장을 우선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좋을까. KB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 1월부터 2020년 9월까지 34년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402%에 그친 반면 전셋값 상승률은 그 두 배가 넘는 850%에 달한다.
범위를 좁혀 2006년 1월부터 지금까지 살펴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62.3%인데 같은 기간 동안 전셋값 상승률은 87.0%에 달한다. 기간에 따라 매매가가 전셋값보다 더 오를 때도 있고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더 오를 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셋값 상승률이 매매가 상승률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매매 시장 안정에 전세 매물 사라져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전세 시장 안정보다 매매 시장 안정에 정책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등록임대사업제도의 폐지다. 7·10 조치를 통해 기존의 등록임대사업자의 의무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임대 사업이 자동 말소되도록 하는 한편 새 임대 물건은 등록도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 매매 매물이 나오면 매매 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될 것이지만 그만큼 시장에서 전세 매물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입자가 가장 유리한 것은 등록임대사업자의 임차인이 되는 것이다. 임대인(집주인)이 법적으로 그 집에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2+2년이 아니라 본인이 거주하고 싶은 만큼 거주할 수 있다. 등록 임대 의무 기간이 끝나도 임대 사업을 영위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입자도 이전 계약에서 5%만 올려주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 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혜택을 임대 사업자가 제공하는 대신 정부는 임대 사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 왔던 것이다.
그러면 현 정부는 세입자에게 가장 유리한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왜 없앤 것일까. 임대 시장 안정보다 매매 시장 안정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현 정부 들어 우연히도 전세 시장이 약세를 보이는데 반해 매매 시장은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후 6·17 조치 등 규제를 쏟아냈던 올해 6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마이너스 0.20%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동안 매매가 상승률이 6.45%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로서는 전세 시장보다 매매 시장 안정에 승부수를 띄웠고 그 부작용으로 지금 전세 시장이 달궈지고 있는 것이다.
매매 시장도 안정시키고 전세 시장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방법은 찾기 어렵다. 더구나 매매 시장이 안정될수록 실수요자가 매매 시장을 찾지 않고 전세 시장으로 몰리기 때문에 전세 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매매 시장은 (자금이 어느 정도 있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지만 전세 시장은 (그 자금마저 없어) 집을 살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사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전세 시장의 안정 여부는 서민들에게 중요한 이슈인 것이다.
시중에 늘어나는 유동성과 전세 물량의 축소 그리고 전세 수요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상당 기간 전세 시장은 뜨겁게 달궈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타이밍이 맞지 않는 정책마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온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균형 있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9호(2020.10.17 ~ 2020.10.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