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지키는 소비가 대세…기업을 바꾸는 ‘그린슈머’

[커버스토리 = 팬데믹에서 기후 위기까지...그린 스완 시대 ESG 투자법]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배송·포장 대세로…페트병에서 원사 뽑고 비건 가죽도 인기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는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소비자들은 서비스와 상품의 가격 또는 품질 등을 고려해 지갑을 열었지만 이제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자신의 소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해 구매를 결정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자 이들을 일컬어 ‘그린슈머’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기업들 역시 ‘필(必)환경’을 중요시하는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해 다양한 전략을 앞세워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입김이 바꾼 배송 트렌드


환경을 중요시하는 그린슈머는 단순한 소비자의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큰 ‘입김’을 낸다. 한 기업의 서비스나 상품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면 이를 개선해 달라고 해당 업체에 제안하기도 한다.

기업들도 이런 요구들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만약 이런 요구들을 무시하면 기업의 평판이 나빠지고 자칫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유통업계에서 이런 현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마케팅은 기업의 평판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고 계속해 환경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통 업체들이 단순히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환경을 생각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유통 기업들의 행보에서도 나타난다. ‘배송 서비스’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소비자들의 빗발치는 요구가 업계의 배송 관행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경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쇼핑은 이제 생필품을 구매하는 주요 채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상품을 배송 받을 때마다 스티로폼과 비닐 등 수많은 일회용품 쓰레기가 배출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수많은 소비자들이 여기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이 목소리를 들은 온라인 유통 업체들은 여러 지적들을 적극 반영해 결국 친환경 배송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온라인 유통 업체들이 이제는 신선식품을 집 앞에 전달할 때 재활용할 수 없는 비닐 아이스 팩 대신 종이 팩에 물을 채워 얼린 ‘친환경 아이스팩’을 사용한다.

종이 박스를 대신해 반영구적으로 반복 사용할 수 있는 보랭 백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기본적인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보랭 백 사용을 원하지 않는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종이 박스로 상품을 배달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도 최대한 친환경을 고려한 흔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박스 포장에 재활용할 수 있는 비닐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고 이전보다 비닐 사용량 역시 크게 줄여 상품을 전달하고 있다. 한 온라인 쇼핑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이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된 만큼 소비자들의 지적을 반영해 일회용품 사용을 크게 줄였다”고 말했다.

식품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재활용하기 쉬운 소재로 제품의 포장을 전면 교체하며 소비자들의 거세지는 친환경 요구에 부응하고 나섰다. 롯데칠성음료가 대표적이다.

회사의 상징과도 같은 녹색 페트병에 담긴 칠성사이다 제품을 지난해 말부터 재활용하기 쉬운 무색 페트병으로 자발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를 위해 약 1년에 걸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무색 페트병으로 교체해도 맛과 향, 탄산 강도, 음료 색 등 품질 안정성에 대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칠성사이다를 재활용하기 쉬운 단일 재질의 무색 페트병으로 재탄생시켰다.

CJ제일제당도 햇반과 양념장 등 자사 제품에 사용되는 리드 필름과 용기 두께를 줄였다. 그 결과 지난해 약 551톤에 달하는 플라스틱과 722톤의 폐기물을 절감했다.

라면 시장의 선두 주자인 농심도 ‘육개장’, ‘새우탕’ 등의 사발면의 폴리스티렌 용기를 특수 재질의 종이로 전격 교체했다. 재활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인 장점을 부각시킨 것은 물론 기존 폴리스티렌 용기보다 열전도율까지 높아 사발면이 빨리 식는 단점까지 보완했다는 설명이다.

◆친환경 활동하면 ‘백화점 VIP’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 역시 다양한 친환경 전략과 마케팅 등을 앞세워 그린슈머의 발길을 그러모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마트는 최근 일부 매장에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선보였다. 빈 세탁 세제 용기를 갖고 오는 고객에게 세제 내용물만 다시 채워 판매하는 일종의 ‘세제 리필 매장’이다.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이를 도입했고 다른 점포들로 이를 확산해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친환경 편의점인 ‘그린 스토어’를 지난해 말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시설과 집기, 인테리어, 운영 방식까지 점포의 모든 요소들을 친환경을 고려해 문을 열었다. 고객들이 상품을 담기 위해 제공되는 비닐도 쉽게 분해되는 친환경 비닐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 점포를 개설하는 것보다 많은 돈이 투입됐지만 친환경 트렌드를 감안해 이를 운영하게 됐다.

현대백화점의 행보도 눈에 띈다. 보통 백화점에서 많은 돈을 쓴 소비자들에게만 부여되는 VIP 혜택을 친환경 소비자들에게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백화점이 내부에서 선정한 ‘8대 친환경 활동’ 중 5개 이상 참여한 고객에게 엔트리 VIP 등급인 ‘그린’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안 쓰는 플라스틱 용기 가져 오기, 수명 다한 프라이팬 가져 오기, 재판매 가능한 의류·잡화 가져 오기 등 누구나 쉽게 이행할 수 있는 활동들로 구성했다. 그린 등급을 받은 고객은 11월부터 2개월간 일부 상품에 대한 할인과 무료 주차, 이벤트 초청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최근에는 패션업계에서도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옷을 만드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페트병에서 원사를 뽑아내 옷을 제작하는가 하면 패딩에 들어가는 충전재 역시 친환경 인공 충전재를 활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일과 채소 등을 활용해 가죽 느낌을 구현해 내는 이른바 ‘비건(vegan) 가죽’ 제품들도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고 환경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같은 기업들의 친환경 상품 제작이나 마케팅은 현재로선 수익성 증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가 일부 기업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친환경을 강조한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배경에 대해 한 유통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분석이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들이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이들은 미래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이들이 더 큰 소비 여력을 갖게 되는 훗날 그간의 친환경 노력들이 결실을 보며 높은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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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9호(2020.10.17 ~ 2020.10.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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