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치킨이 먼저냐 프리미엄 세단이 먼저냐”…재계는 간판 전쟁 중

[스페셜 리포트Ⅱ]
-‘먼저 출원하는 사람이 주인’…상표권 분쟁의 세계
-현대차·삼성·LG·한국테크놀로지그룹 등 법적 분쟁 중
-상표 선점·마케팅 차질…경영 리스크로 비화되기도
-상표 출원할 때 지정 상품 광범위하게 등록해야 상표권 선점에 유리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EBS 인기 캐릭터 ‘펭수’를 비롯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BTS(방탄소년단)’도 피해 가지 못한 것이 뭘까. 바로 상표권 분쟁이다. 재계에 상표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늘고 있다.

상표 선출원주의에 따라 먼저 상표를 출원한 사람이 등록 상표를 사용할 권리를 독점하게 되기 때문에 대기업이라도 다른 기업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를 출원했을 때 시기가 한 발 늦었다면 해당 상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상표권 침해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기업은 해당 상표를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경영상 커다란 리스크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표법에 따르면 ‘상표(trade mark)’는 상품을 생산·가공·증명·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영위하는 사람이 자신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다른 사람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문자·도형·입체적 형상·색채·홀로그램·동작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최근 사업 다각화에 따라 기업들의 사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종 산업에 있는 기업 간에도 유사하거나 동일한 상표로 인한 법적 갈등이 느는 추세다. 한국에서는 현대차 제네시스-제너시스 BBQ, 한국테크놀로지그룹-한국테크놀로지, 삼성전자-삼성제약, LG전자-삼성디스플레이, 아모레퍼시픽-화윤설화, 신세계-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표권 분쟁 사례가 대표적이다.



◆ 현대차 제네시스 vs 제너시스 BBQ

현대차와 치킨 프랜차이즈 제너시스 BBQ는 ‘GENESIS’ 상표권을 두고 수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와 치킨 업체 제너시스 BBQ의 GENESIS 영어 표기가 ‘GENESIS’로 동일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제네시스는 ‘시작·발생·기원’이라는 뜻으로 구약성서의 첫 권인 ‘창세기’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BBQ는 2004년께부터 ‘제너시스’라는 이름을 사용 중인데 현대차의 ‘제네시스’는 2015년 론칭됐다. 현대차와 BBQ의 소송은 특허법원과 특허심판원 등에 20건 이상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BQ가 보유한 상표권을 취소해 달라고 현대차가 제기한 상표권 취소 관련 청구가 대부분이다.

두 회사가 상표권 등록을 다투는 분야는 매니큐어 세트·페디큐어 세트 소매업, 휴대용 화장품 케이스 소매업, 인조손톱·인조속눈썹·화장용 접착제·화장용 면봉·화장용 탈지면 소매업, 명함 케이스·가방·지갑 소매업, 속옷·스웨터·셔츠 도매업, 식육·육류 가공 도매업, 연예 매니지먼트업, 귀금속제 기념컵·귀금속제 기념패·귀금속제 주화 등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BBQ가 상표 출원 당시 사업 확대를 염두에 두고 미리 다양한 영역의 상표를 확보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특허심판원은 이 중 4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BBQ가 3년 동안 해당 영역에서 제네시스 상표권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록 상표를 정당한 이유 없이 3년 이상 한국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상표 등록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현대차는 자동차 관련 GENESIS의 상표권은 가지고 있지만 고급차 마케팅을 위한 티셔츠·화장품·향수·귀금속 기념주화 등 기념품에는 GENESIS 상표를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BBQ가 확보한 다양한 상표에 대해 불사용 취소 심판을 제기해 하나씩 권리를 획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또 세계적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 미국 무역 업체 제네시스퓨어와도 GENESIS 상표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테크놀로지그룹 vs 한국테크놀로지

한국 타이어업계 1위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은 샤오미 국내 총판사인 중소기업 한국테크놀로지와 유사한 상호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해 3세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2019년 5월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와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앤월드와이드의 사명을 각각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변경했다.

기업 브랜드인 ‘한국’의 정체성을 기술 기반의 혁신 그룹으로 재정의하고 브랜드 가치 제고와 인지도 증대를 통한 주주 가치 제고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다. 사명 변경과 함께 약 28년간 자리 잡았던 서울 역삼동 사옥에서 경기 성남시 판교로 사옥을 이전하기도 했다.

설립 78년 만에 지주회사 사명에서 타이어를 과감하게 떼면서 기존 제조업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 지향적인 테크놀로지 기반의 혁신 기술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기 위해 선택한 사명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었다.

그러던 중 2019년 11월 코스닥 상장사인 한국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자신들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상호 사용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테크놀로지는 2012년부터 사명을 사용해 왔다.

한국테크놀로지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관련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음에도 상호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며 10월 21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최고경영자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과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을 ‘부정경쟁방지법(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소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즉시 항고를 제기함과 동시에 법적 대응을 이어 가면서 변경 예정인 상호를 선점하기 위해 최근 에이치티지(HTG)한국테크놀러지 주식회사, 에이치티지한국 주식회사 등 2개 상호에 대한 가등기도 마쳤다. 법적 대응과 동시에 사명 변경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편다는 계획이다.




◆ 삼성전자 vs 삼성제약

‘삼성’이라는 이름을 두고 5년간 벌어진 삼성제약과 삼성전자의 법적 분쟁은 최근 삼성제약의 최종 승소로 마무리됐다. 삼성제약은 까스명수를 개발한 회사로 삼성그룹과 관련이 없는 회사다.

2015년 3월 삼성제약이 디자인이 다른 ‘삼성제약 SAMSUNG PHARM SINCE 1929’ 2건과 ‘삼성제약헬스케어’ 1건 등 총 3개의 상표를 출원했는데 이에 대해 삼성전자가 특허심판원에 등록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삼성전자는 삼성제약이 등록한 상표가 먼저 등록한 저명 상표인 ‘삼성’, ‘SAMSUNG’ 등과 유사하고 삼성제약 상호의 약칭이 수요자들에게 삼성그룹 계열사인 것으로 오인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제약은 삼성전자의 창업(1938년 삼성상회가 그룹의 모태)보다 앞선 1929년부터 삼성제약 상호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정전자보다 주지성을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특허법원이 삼성제약의 손을 들어주면서 두 회사의 법적 분쟁은 삼성제약의 승소로 끝났다.




◆ LG전자 vs 삼성디스플레이

LG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점찍은 ‘QNED’ 상표권을 두고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QNED는 ‘퀀텀 나노 발광다이오드(Quantum nano-emitting diode)’의 영문 앞 글자를 딴 용어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알려졌다.

LG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특허청 키프리스를 포함해 국내외에서 QNED 상표권을 잇달아 출원하면서 작명 전쟁을 벌이고 있다. LG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제출한 QNED는 나노로드라고 불리는 긴 막대기 모양의 미세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발광 소자로 삼는 방식이다. QNED는 긴 수명과 번인 프리 등 QD 기술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장점을 결합한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9월 23~25일 특허청에 ‘QNED’, ‘NED’, ‘QDNED’ 등 상표권 3종을 출원했다. 같은 달 25일, 28일엔 해외(미국·유럽·호주)에서도 각각 QNED 상표권을 출원했다. LG전자는 삼성보다 2주 정도 앞선 9월 7일 특허청에 ‘QNED’, ‘NQED’, ‘QNLED’ 상표권을 출원하고 해외(미국·유럽·호주)에서도 상표권을 출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2022년 상반기부터 관련 제품 양산 체제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전자도 아직 QNED 관련 기술 개발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그런데도 상표권을 선제적으로 출원한 이유는 LG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에 대한 견제구 차원에서 관련 상표권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다.

다만 특허청이 일반적인 기술 용어를 상표권으로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다. 특허청은 LG전자가 2014년 12월 출원한 ‘QLED(퀀텀닷 발광다이오드)’ 상표권에 대해 “공익상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며 등록을 거부했던 적이 있다.





◆ 아모레퍼시픽 vs 중국 화윤설화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맥주 업체와 상표권 관련 해프닝을 겪었다. 2019년 4월 한국 시장에 들어온 중국 맥주 업체 화윤설화는 아모레퍼시픽이 ‘설화수’뿐만 아니라 ‘설화’라는 상표권까지 등록해 자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설화’ 맥주 대신 ‘슈퍼엑스’ 브랜드 맥주만 한국에서 판매할 수 있다며 아모레퍼시픽이 다년간 시장에서 ‘설화’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내거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 상표권을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모레퍼시픽은 맥주류를 포함한 설화 상표를 2018년 8월 등록했고 상표권 권리 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등록일로부터 3년 주기로 상표 사용 실적을 확인해 상표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해도 설화 상표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럭셔리 브랜드인 ‘설화수’ 상표권을 방어하기 위해 ‘설화’ 상표도 등록했다. 설화 상표를 출원할 때 지정 상품으로 제32류에 해당하는 맥주·탄산수·과실주스 등을 포함했기 때문에 화윤설화가 자사의 설화 맥주를 그대로 들여올 수 없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상표 ‘설화’와 관련해 화윤설화 본사와 각자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원만히 협의하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협의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신세계백화점 vs 빅히트엔터테인먼트

‘BTS’ 관련 상표권을 두고 갈등을 빚어 온 신세계백화점과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올해 1월 신세계가 BTS 관련 상표권을 모두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2년여에 걸친 법적 분쟁을 끝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BTS 데뷔 한 달 전인 2013년 5월 ‘BTS’ 상표권을 최초 출원했지만 당시 신한코퍼레이션의 ‘BTS BACK TO SCHOOL’ 상표권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의류에 대한 상표권 출원 신청이 기각된 바 있다.

2017년 신세계가 자사 편집 숍 ‘분더샵(BOON THE SHOP)’의 약자인 ‘BTS’의 상표권을 출원하기 위해 신한코퍼레이션이 소유한 ‘BTS’ 상표권을 사들여 의류 영역에서 ‘BTS’ 상표권을 확보하면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신세계의 법적 분쟁이 시작됐다.

양 사가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신세계가 “BTS와 관련된 모든 상표권을 포기한다. 신세계는 한류 문화를 대표하는 방탄소년단의 활동을 응원한다”며 BTS 관련 상표권을 모두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더 이상의 법적 공방 없이 갈등이 마무리됐다.




자칫하면 커다란 경영상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상표권 침해나 부정 경쟁 행위 등에 휘말리면 선택지는 해당 상표를 사용하지 않거나 합의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방법이 없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리스크가 크고 더 비용이 많이 드는지에 따라 합의하거나 신규 상표를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합의한다면 상대방에 사용료를 일정 부분 지급하고 상표를 사용하는 것인데 만약 기존 상표권자가 해당 상표를 독점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면 합의는 불가능해진다. 법률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상표권과 관련된 법률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출원할 때 광범위하게 등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상표를 사용하거나 사명을 변경할 때, 신제품을 출시해 상표를 출원할 때 특허청에서도 기존에 등록된 상표들과 대조해 보며 유사 범위까지 판단한다”며 “이 때문에 최대한 넓은 범위까지 상표 등록을 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상표는 처음 등록할 때 당시 사용하고 있지 않더라도 등록이 가능하다. 상표법상 앞으로 상표권을 사용할 의사만 있으면 등록할 수 있다. 만약 당장 식음료 분야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식음료 분야에까지 상표를 등록해 두면 나중에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식음료 사업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분야에 등록해 둔 상표를 일정 기간(3년) 사용하지 않으면 취소 사유가 된다.

[돋보기]

-美 인앤아웃 버거, 3년에 한 번씩 한국에서 팝업 매장 여는 이유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인앤아웃 버거는 쉐이크쉑·파이브가이즈와 함께 미국 3대 수제 버거로 유명하다. 2016년 한국에 들어온 쉐이크쉑과 달리 인앤아웃은 한국에 매장이 없다. 하지만 2012년, 2016년, 2019년에 3년마다 한 번씩 한국에 임시 매장(팝업스토어)을 열고 있다.

한국 법인이 없기 때문에 팝업스토어 개장은 미국 본사가 직접 주관한다. 지난해 5월 인앤아웃은 서울 역삼역의 한 레스토랑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3시간 동안만 버거 메뉴를 선착순 한정 판매했다. 이날 인앤아웃을 맛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로 레스토랑 주변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인앤아웃이 팝업스토어를 열 때마다 한국 시장 진출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법조계에서는 인앤아웃이 한국에도 상표권을 등록한 만큼 상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한다. 상표는 속지주의이기 때문에 특허처럼 국가마다 출원하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한다.

한국 특허법에서는 상표 등록 후 3년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불사용 취소 심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상표권을 지키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팝업스토어를 연다는 분석이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한국에 언젠가 진출할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한국의 다른 업체가 인앤아웃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년마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이라며 “매출액이 미미해도 조금이라도 해당 상표권 사용 실적이 있다면 권리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1호(2020.10.31 ~ 2020.11.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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