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꾼 美 피트니스 지형...운동도 집에서 ‘홈트 열풍’
입력 2020-11-13 08:28:20
수정 2020-11-13 08:28:20
[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홈 피트니스]
시장 규모 전년 대비 10.1% 감소…‘홈트’ 열풍에 팰로톤 매출 172% 증가
[한경비즈니스 칼럼=최중혁 칼럼니스트] “2500달러짜리 트레드밀을 구매해서 매달 40달러를 내고 운동하는 비즈니스가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바꿨다.”
세계적인 기업 가치 평가의 대가로 유명한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애스워드 다모다란 교수는 작년 9월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 홈 트레이닝 업체 팰로톤 인터랙티브(이하 팰로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회사의 상장 당시 다모다란 교수는 CNBC에 출연한 한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이웃들이 모두 팰로톤을 이용한다고 공유하자 “몇 블록 떨어진 다른 지역에 가봐야 한다”며 이런 값비싼 서비스를 확장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에 대한 매력 또한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모다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이 회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편하게 피트니스에 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재택근무가 늘어나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한몫했다. 미국에서 홈 트레이닝 수요가 늘면서 지금 팰로톤의 제품은 날개 돋친 듯이 판매되고 있다.
미국인들은 지금 홈 피트니스 중
시장 조사 기업 스테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미국 피트니스 시장 규모는 약 379억 달러에 달했지만 2020년엔 341억 달러로 전년 대비 10.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팬데믹로 미국 전역에 봉쇄령이 시행된 뒤 수많은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닫은 것을 감안하면 매출 감소 폭이 생각보다 적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피트니스 체인 업체가 운영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피트니스 시장은 크게 위축됐고 줄어든 매출 중 일부는 홈 트레이닝 매출로 대체돼 감소 폭이 상쇄된 것이다. 미국 피트니스 지형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전역에 445개의 클럽을 보유한 대형 피트니스 체인인 24아워 피트니스 월드와이드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지난 6월 130개 지점을 완전 폐쇄하고 파산 절차(챕터11)를 밟았다. 마찬가지로 뉴욕스포츠클럽의 모회사 타운스포츠인터네셔널도 지난 9월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뉴욕시에만 50개의 피트니스 클럽을 운영했다.
그나마 한 달에 최저 10달러면 이용할 수 있는 저가형 피트니스클럽인 플래닛 피트니스는 미국 각 주들이 단계별로 피트니스 운영 제한을 풀자 코로나19 사태를 버티지 못한 피트니스 업체들의 공백을 채우며 조금씩 회복 중이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 기준으로 플로리다 주에 있는 플래닛 피트니스의 매장 방문자 수가 전년 같은 기간의 71% 수준까지 회복됐다. 이 회사는 미국 상장사 중 가장 큰 피트니스 업체다. 플래닛 피트니스는 이번 2분기(2020년 4~6월)에 매출 4023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8% 감소했고 2015년 8월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기준 영업손실(2272만 달러)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미국의 홈 피트니스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투자은행 트루이스트가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 15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운동한다는 응답자 1169명 중 54%가 올해 가정 내 피트니스 장비나 서비스 관련 구매를 했다고 응답했다. 이 응답자 중 40%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엔 구매 계획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내년에 운동 기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23%는 1000달러 이상을 지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트니스 장비 업체는 호황
가장 수혜를 본 업체는 바로 팰로톤이다. 2012년 설립된 이 업체는 실내용 자전거와 트레드밀을 판매한 뒤 온라인 클래스 구독 서비스를 하는 업체다. 2019년 6월 말 51만 명이었던 팰로톤의 구독 서비스 이용자는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인 올 3월 말에 88만 명까지 늘어나더니 6월 말 기준 109만 명까지 급증했다. 오프라인 피트니스에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자전거나 트레드밀을 구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팰로톤 창업자인 존 폴리 최고경영자(CEO)는 10년 내에 전 세계에 피트니스를 이용하는 2억 명 중 1억 명 이상을 팰로톤 유저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덕분에 팰로톤은 회계연도 기준 2020년 4분기(2020년 4~6월)에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72% 증가한 6억7100만 달러를 나타냈다. 게다가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분기 기준 영업이익(9110만 달러)을 기록했다.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 소비자들에게 배송까지 10주 넘게 걸리자 마케팅 비용을 삭감한 덕에 수익성이 좋아진 것이다. 올 초에 팰로톤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던 시기가 2023년이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려 3년이나 앞당겨졌다.
팰로톤 외에도 홈 피트니스 흐름에 수혜를 본 업체들이 많다. 피트니스 장비 업체들도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필자도 팬데믹 이후 주기적으로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 있는 피트니스를 갈 수 없게 되자 개인적으로 덤벨을 구매하기 위해 한창 알아봤던 적이 있다. 하지만 재고를 구할 수 없었고 재고를 찾았더라도 가격도 과거와 비교해 2~3배가 오른 뒤였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피트니스 장비 브랜드 중 하나인 보우플렉스의 덤벨은 인기가 너무 높아 중고조차 가격이 새 제품 정가의 2배가 넘었다. 그 덕분에 보우플렉스를 보유한 피트니스 장비 업체 노틸러스는 올해 6개월 동안 매출(3억 7379만 달러)이 지난 해 연간 매출(3억929억 달러)을 넘었다. 노틸러스는 작년에 2854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봤지만 올 상반기엔 1638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노틸러스 경영진은 팬데믹이 정상으로 돌아오더라도 피트니스 이용자의 12~25%는 더 이상 피트니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팰로톤 경영진도 비슷한 의견이다. 약 2년 전만 하더라도 팰로톤 이용자 중 60%가 피트니스 회원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 비율이 4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팰로톤의 질 우드워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앞으로 이 비율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캐나다의 고급 요가 의류 브랜드 룰루레몬이 5억 달러에 인수한 미국의 디지털 피트니스 스타트업 미러(Mirror)도 홈 피트니스 시장 확대에 기여 중이다. 미러는 40인치 디지털 거울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트레이너로부터 온라인 홈 트레이닝 클래스를 제공한다. 미러의 가격은 1495달러부터 시작하며 월간 구독료는 39달러로 팰로톤과 비슷한 가격과 서비스로 경쟁 중이다.
룰루레몬은 2023년까지 미러로 60만 명의 가입자를 달성해 회사 전체 매출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한다. 미러의 주요 전략은 팰로톤과 동일하게 소비자들에게 비싼 장비를 판매한 뒤 매달 구독료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코로나19가 언제 수그러들지 알기 어렵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때도 많은 소비자들이 홈 피트니스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각국 정부의 강도 높은 제재와 지속되는 재택근무로 모두 지쳐 가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에도 건강을 챙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동안 미국 홈 피트니스 시장은 점차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ericjunghyuk.choi@gmail.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