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윤석열, 반기문·고건 징크스 깨는 ‘블랙 스완’ 될까
입력 2020-11-16 13:30:54
수정 2020-11-16 13:30:54
“정치권 밖 대선 후보 성공 못해
지지율 상승, 언더독 효과 때문 … 총장 그만두면 지지율 빠질 것”
VS “밴드웨건 효과 발휘해 상승 흐름 더 견고해질 것”
정치 리더십, 지역적·이념적 기반, 경제, 외교·안보 지식 등 갖추는 게 관건
[홍영식 대기자] 차기 대통령 선거 지지율에서 정치권 밖의 윤석열 검찰총장이 치고 올라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뢰를 잃은 정치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징표다. 각 여론 조사 결과 업체별 편차는 있지만 지난 9월까지만 해도 10% 안팎이던 윤 총장의 지지율이 최근 20%대를 넘나들고 있다. 여권 유력 후보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에 비해 한참 아래였다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됐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11월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총장은 지지율 24.7%로 1위에 오르면서 정치권을 달궜다(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는 22.2%, 이 지사는 18.4%를 기록했다. 윤 총장이 1위에 오른 것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이후 처음이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힌 것과 대조적이다.
이 지점에서 여야의 딜레마가 있다. 국민의힘 내에선 윤 총장이 자기 당 유력 주자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사건건 여권과 충돌하는 윤 총장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함부로 낙마 쪽으로 거세게 몰아붙이기에도 고심일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윤석열 딜레마, 윤석열 덫’에 걸린 형국이다.
국민의힘의 내부 반응은 두 갈래다. 뚜렷한 대선 후보가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윤 총장은 단비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 있다. 대선 주자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은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윤 총장의 지지율 상승은 다른 내부 대선 주자들을 자극, 경쟁을 촉발해 대선 레이스 흥행을 가져올 수 있다. 일종의 ‘메기’와 같은 역할이다. 장제원 의원은 “확실한 여왕벌이 나타난 것”이라며 “이제 윤석열이라는 인물은 국민의힘을 비롯한 범야권에 강력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메기 역할” vs “두 전직 대통령 구속시켜”
조해진 의원도 “메기가 들어와 휘젓고 다니면 다른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자극을 주고 대선판을 활기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을 끌어온다면 중도층까지 지지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윤 총장에 대한 중도층 지지세가 뚜렷하다.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윤 총장이 대선에 나선다면 민주당에 실망한 중도표와 이 대표와 이 지사 지지표를 일정 부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다. 두 가지 이유다. 우선 당내 주자들의 경쟁력이 커지지 않은 상태에서 윤 총장에게 힘이 확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국민의힘 대안으로 급부상함에 따라 여론을 선점하면서 당내 다른 주자들을 '잠식' 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지도부의 의견은 이렇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냐”며 “어떻게 윤 총장을 야권의 대선 후보라고 그러느냐. 아직 현직에 있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실례”라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와 만나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개개인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윤 총장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이 정권에 핍박받는 반사 효과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정치도 경륜과 경험이 필요한 전문 영역”이라며 “정치를 해 보지 않고 곰삭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에 와 자꾸 실패한다. 정치인을 인기 투표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부정 평가했다. 권영세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윤 총장에게 몰려가면서 국민의힘 다른 후보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갑갑함을 드러냈다.
윤 총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최순실 특검에서 4팀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엔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 의혹으로 구속됐다. 보수 진영의 두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중심에 선 것이다.
국민의힘의 고위 당직자는 “윤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며 “그가 이에 대해 사과 등 아무런 의견 표명 없이 국민의힘의 옷을 입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문 대통령 주구(走狗) 노릇 하면서 우리를 악랄하게 수사했던 사람을 데리고 오지 못해 안달하는 정당이 야당의 새로운 길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 정권 말 검찰발 레임덕 터질라…총력 방어 나서
윤 총장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는 민주당도 고민스럽긴 마찬가지다. 공격하면 할수록 그의 몸값만 올려놓기 때문이다. ‘식물 총장’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이 살려냈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그렇다고 윤 총장을 그냥 놓아 두자니 문재인 정권 임기 말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여권의 분위기다. 현재 검찰 수사로 넘어간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울산시장 선거 하명 의혹,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 정권을 흔들 사건들이 널려 있다. 여권 관계자는 “신라젠·우리들병원 의혹도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고 했다. 여권이 윤 총장 사퇴까지 거론하며 총력 공격에 나선 것도 정권 방어 차원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까지 윤 총장에 대해 “무모한 폭주를 멈추라”며 공격에 가담했다.
하지만 여권은 추 장관과 의원 개개인이 아닌 당 차원에서 윤 총장 사퇴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다. 그가 핍박받는 모습을 연출해 지지율을 더 높이고 대선 등판 구실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여당의 전략은 국민들에게 그를 ‘나쁜 놈’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다. 사퇴 명분을 하나하나 쌓아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날리는 일종의 ‘살라미 전술(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이다. 적절한 시기에 정세균 총리가 총대를 메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윤 총장 경질을 건의하는 방식으로 물러나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총장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넘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정치권 바깥의 제3의 후보가 대선 주자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초 정치권에 뿌리를 두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경험을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지냈다.
정치권 근처에도 오지 않은 윤 총장은 대선 주자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조건인 정치 리더십, 지역적·이념적 기반 확보, 경제, 외교 안보 지식 등 하나도 검증된 게 없다. 김종인 위원장은 차기 대선 주자의 자격 조건으로 경제와 교육 지식, 외교 마인드, 조정 능력 등을 꼽았다. 윤 총장이 이런 조건을 갖췄는지는 미지수다. 내년 7월까지 임기를 채운다면 대선은 8개월밖에 남지 않는다. 조직력을 갖추려면 물리적으로 촉박하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맞서 싸워 피해를 보는데 따른 ‘언더독 이펙트(약자라고 생각될 때 동정하는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윤 총장이 검찰총장 직을 그만두는 순간 ‘언더독 이펙트’가 사라지면서 지지율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이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주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혹독하게 검증받는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분석도 있다.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4·15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은 “여론 조사는 ‘밴드왜건 효과(강한 쪽에 지지가 쏠리는 현상)’를 갖는다”며 “(윤 총장 지지율 상승) 여론 조사 흐름은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지지율이 올라가면 조직과 세력은 자연스럽게 붙기 마련”이라고 했다. 윤 총장이 ‘고건 반기문 징크스’를 깨는 대선판에서 ‘블랙 스완(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주요 발언△ “댓글 수사 과정, 외압 있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2013년 10월 국정감사)△ “저는 정치에 소질없다. 정치할 생각 없다”(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정무 감각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2019년 10월 국정감사)△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하고 한번 생각해보겠다. 정치, 바뀌는 게 없구나. 편하게 살 걸 참 부질없다”(2020년 10월 국정감사)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
지지율 상승, 언더독 효과 때문 … 총장 그만두면 지지율 빠질 것”
VS “밴드웨건 효과 발휘해 상승 흐름 더 견고해질 것”
정치 리더십, 지역적·이념적 기반, 경제, 외교·안보 지식 등 갖추는 게 관건
[홍영식 대기자] 차기 대통령 선거 지지율에서 정치권 밖의 윤석열 검찰총장이 치고 올라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뢰를 잃은 정치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징표다. 각 여론 조사 결과 업체별 편차는 있지만 지난 9월까지만 해도 10% 안팎이던 윤 총장의 지지율이 최근 20%대를 넘나들고 있다. 여권 유력 후보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에 비해 한참 아래였다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됐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11월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총장은 지지율 24.7%로 1위에 오르면서 정치권을 달궜다(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는 22.2%, 이 지사는 18.4%를 기록했다. 윤 총장이 1위에 오른 것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이후 처음이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힌 것과 대조적이다.
이 지점에서 여야의 딜레마가 있다. 국민의힘 내에선 윤 총장이 자기 당 유력 주자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사건건 여권과 충돌하는 윤 총장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함부로 낙마 쪽으로 거세게 몰아붙이기에도 고심일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윤석열 딜레마, 윤석열 덫’에 걸린 형국이다.
국민의힘의 내부 반응은 두 갈래다. 뚜렷한 대선 후보가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윤 총장은 단비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 있다. 대선 주자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은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윤 총장의 지지율 상승은 다른 내부 대선 주자들을 자극, 경쟁을 촉발해 대선 레이스 흥행을 가져올 수 있다. 일종의 ‘메기’와 같은 역할이다. 장제원 의원은 “확실한 여왕벌이 나타난 것”이라며 “이제 윤석열이라는 인물은 국민의힘을 비롯한 범야권에 강력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메기 역할” vs “두 전직 대통령 구속시켜”
조해진 의원도 “메기가 들어와 휘젓고 다니면 다른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자극을 주고 대선판을 활기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을 끌어온다면 중도층까지 지지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윤 총장에 대한 중도층 지지세가 뚜렷하다.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윤 총장이 대선에 나선다면 민주당에 실망한 중도표와 이 대표와 이 지사 지지표를 일정 부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다. 두 가지 이유다. 우선 당내 주자들의 경쟁력이 커지지 않은 상태에서 윤 총장에게 힘이 확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국민의힘 대안으로 급부상함에 따라 여론을 선점하면서 당내 다른 주자들을 '잠식' 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지도부의 의견은 이렇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냐”며 “어떻게 윤 총장을 야권의 대선 후보라고 그러느냐. 아직 현직에 있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실례”라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와 만나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개개인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윤 총장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이 정권에 핍박받는 반사 효과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정치도 경륜과 경험이 필요한 전문 영역”이라며 “정치를 해 보지 않고 곰삭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에 와 자꾸 실패한다. 정치인을 인기 투표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부정 평가했다. 권영세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윤 총장에게 몰려가면서 국민의힘 다른 후보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갑갑함을 드러냈다.
윤 총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최순실 특검에서 4팀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엔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 의혹으로 구속됐다. 보수 진영의 두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중심에 선 것이다.
국민의힘의 고위 당직자는 “윤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며 “그가 이에 대해 사과 등 아무런 의견 표명 없이 국민의힘의 옷을 입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문 대통령 주구(走狗) 노릇 하면서 우리를 악랄하게 수사했던 사람을 데리고 오지 못해 안달하는 정당이 야당의 새로운 길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 정권 말 검찰발 레임덕 터질라…총력 방어 나서
윤 총장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는 민주당도 고민스럽긴 마찬가지다. 공격하면 할수록 그의 몸값만 올려놓기 때문이다. ‘식물 총장’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이 살려냈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그렇다고 윤 총장을 그냥 놓아 두자니 문재인 정권 임기 말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여권의 분위기다. 현재 검찰 수사로 넘어간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울산시장 선거 하명 의혹,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 정권을 흔들 사건들이 널려 있다. 여권 관계자는 “신라젠·우리들병원 의혹도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고 했다. 여권이 윤 총장 사퇴까지 거론하며 총력 공격에 나선 것도 정권 방어 차원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까지 윤 총장에 대해 “무모한 폭주를 멈추라”며 공격에 가담했다.
하지만 여권은 추 장관과 의원 개개인이 아닌 당 차원에서 윤 총장 사퇴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다. 그가 핍박받는 모습을 연출해 지지율을 더 높이고 대선 등판 구실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여당의 전략은 국민들에게 그를 ‘나쁜 놈’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다. 사퇴 명분을 하나하나 쌓아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날리는 일종의 ‘살라미 전술(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이다. 적절한 시기에 정세균 총리가 총대를 메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윤 총장 경질을 건의하는 방식으로 물러나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총장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넘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정치권 바깥의 제3의 후보가 대선 주자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초 정치권에 뿌리를 두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경험을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지냈다.
정치권 근처에도 오지 않은 윤 총장은 대선 주자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조건인 정치 리더십, 지역적·이념적 기반 확보, 경제, 외교 안보 지식 등 하나도 검증된 게 없다. 김종인 위원장은 차기 대선 주자의 자격 조건으로 경제와 교육 지식, 외교 마인드, 조정 능력 등을 꼽았다. 윤 총장이 이런 조건을 갖췄는지는 미지수다. 내년 7월까지 임기를 채운다면 대선은 8개월밖에 남지 않는다. 조직력을 갖추려면 물리적으로 촉박하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맞서 싸워 피해를 보는데 따른 ‘언더독 이펙트(약자라고 생각될 때 동정하는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윤 총장이 검찰총장 직을 그만두는 순간 ‘언더독 이펙트’가 사라지면서 지지율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이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주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혹독하게 검증받는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분석도 있다.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4·15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은 “여론 조사는 ‘밴드왜건 효과(강한 쪽에 지지가 쏠리는 현상)’를 갖는다”며 “(윤 총장 지지율 상승) 여론 조사 흐름은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지지율이 올라가면 조직과 세력은 자연스럽게 붙기 마련”이라고 했다. 윤 총장이 ‘고건 반기문 징크스’를 깨는 대선판에서 ‘블랙 스완(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주요 발언△ “댓글 수사 과정, 외압 있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2013년 10월 국정감사)△ “저는 정치에 소질없다. 정치할 생각 없다”(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정무 감각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2019년 10월 국정감사)△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하고 한번 생각해보겠다. 정치, 바뀌는 게 없구나. 편하게 살 걸 참 부질없다”(2020년 10월 국정감사)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