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짜깁기’ 오명 벗은 특수 자석 활용 지갑형 휴대전화 케이스


[법알못 판례 읽기]


커버 젖혀질 때 발생하는 오작동 해결…대법원, ‘진보성’ 부정한 특허법원 판결 뒤집어



[한경비즈니스 칼럼=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시중 휴대전화 케이스들 중 ‘지갑형’ 휴대전화 케이스가 있다. 자석으로 커버를 열고 닫게 디자인돼 있고 한쪽에는 카드와 신분증 등을 꽂아 넣을 수 있는 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휴대전화에는 휴대전화 기기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가 내재돼 있다. 휴대전화를 작동하기 위해 별도의 버튼을 누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러한 지갑형 휴대전화 케이스를 열었을 때 그리고 그 커버가 뒤로 젖혀질 때 발생한다. 지갑형 케이스는 자석이 붙어 있을 때, 즉 커버가 닫혀 있을 때는 센서가 가동되지 않아 휴대전화의 키패드 등이 작동하지 않는다. 자석이 떼어질 때, 즉 커버가 열릴 때는 휴대전화 센서가 작동한다. 그런데 커버를 뒤로 젖힐 때 다시 자석의 자력이 감지돼 휴대전화의 키패드가 작동되지 않는 오작동이 발생하곤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 A사는 원하지 않는 키패드 잠김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지갑형 휴대전화 케이스를 개발했다. A사는 특수 자석을 활용해 자기력에 의한 오작동을 방지하는 기능을 넣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유 기술을 보호받기 위해 2014년 실용신안을 등록받았다. 실용신안은 쉽게 말해 묻히기 쉬운 실용적인 기술인 ‘고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특허와 유사하지만 특허는 특정 물건의 발명과 방법의 발명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반면 실용신안은 반드시 물건의 발명에만 적용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특허법원 “이미 알려진 기술, 선행 고안 결합에 불과”

A사가 고안을 등록받은 지 1년여 뒤인 2015년 4월 국내 전자 기기 제조업체인 B사는 A사를 상대로 고안 등록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그리고 2016년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에서 모두 A사의 고안을 무효로 하는 판단을 내렸다. A사가 특별한 물건을 발명했다기보다 기존의 고안을 ‘짜깁기’하는 수준의 물건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였다.


특허법원은 “기존 휴대전화 케이스들과 원고(중소기업 A사)의 휴대전화 케이스들의 차이점은 특수 자석을 이용해 자석의 자력과 크기를 조절하고 오작동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특수한 자석을 통해 필요한 방향으로 자력을 증가시키거나 자력을 약화시켜 기능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기술은 휴대전화를 비롯한 일반 전자 제품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선 고안들을 보면 휴대전화 케이스가 열림 또는 닫힘에 따라 휴대전화 센서 주변의 자기장을 변경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미 이 사건 고안이 출원되기 전에 ‘자기력이 필요한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다른 방향에서 작용하면 전자 제품의 기능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었고 특수 자석을 매개로 한 기술도 공지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검토 결과 “이 사건 고안은 선행 고안들을 결합해 극히 쉽게 고안할 수 있었으므로 그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밝혔다.


특허법원은 또한 “이 사건 고안은 휴대전화 케이스의 전면부를 후면부 뒤로 젖히는 구성으로 한정된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가 주장하는 오작동이 방지되는 특유한 효과는 이 사건 고안의 구성으로 발생하는 효과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휴대전화 케이스의 다양한 형상과 구조 등을 고려할 때 오작동 방지를 위해 자력 방향과 크기를 적절히 제어되도록 하는 것은 이 사건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기술자가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일반적인 기술 설계 사항”이라며 “오작동 방지 효과는 극히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반적인 효과”라고 강조했다.


특허법원은 이 사건 기술이 상업적으로 성공해 다른 회사에 납품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령 원고가 사건 고안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고안의 진보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가 독점적으로 납품하고 있는 자석 기술 역시 선행된 고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므로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적용하기 어려워”

하지만 지난 10월 대법원은 정반대의 판결을 내놓으며 해당 사건을 특허법원에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고안의 진보성이 부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선행 기술의 범위와 내용, 진보성 판단의 대상이 된 고안과 선행 기술의 차이와 그 고안이 속하는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의 기술 수준 등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며 “진보성 판단의 대상이 된 고안의 기술을 알고 있었음을 전제로 사후적으로 통상의 기술자가 그 고안을 극히 쉽게 고안할 수 있는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선행 고안과 이 사건 고안은 자력 차폐 기능이 있는 자석을 사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며 “선행 고안에는 폰 케이스 전면부가 뒤로 젖혀질 경우 자석 사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대법원은 “선행 고안들의 구성이나 내용에는 이들을 결합할 동기나 암시가 나타나 있지 않다”며 “통상의 기술자가 특수 자석 등을 휴대전화 케이스에 극히 쉽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고안의 진보성은 부정되지 않는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고 판시했다.



돋보기


2심제로 진행되는 ‘특허 소송’


특허 소송은 특허법원과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2심제’로 운영된다. 특허법원에 오기 전 먼저 특허심판원의 판단을 구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것은 두 번이다. 특허심판원의 심결은 일종의 행정심판이다.


특허 소송은 특허 등의 침해를 당한 기업을 신속히 구제해 줄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2심제로 운영된다. 특허 소송뿐만 아니라 공정 거래 사건 등도 2심제로 진행된다.


물론 특허심판이 2심제가 아닌 3심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헌법상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하거나 당사자의 권리 구제,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2018 국정감사 정책자료’에 따르면 “특허심판원이 1심 재판 절차를 대체할 정도로 공정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허법 제186조는 ‘특허 취소 결정 또는 심결에 대한 소 및 특허취소신청서·심판청구서·재심청구서의 각하 결정에 대한 소는 특허법원의 전속 관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선 특허청 산하의 특허심판원에서 특허 등록 거절 등에 대해 적법성 판단을 받은 뒤 불복할 경우 고등법원급인 특허법원의 판단을 구하라는 취지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이끈 원유석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실용신안은 진보성을 인정받기 위한 기준이 특허보다 엄격하지 않다는 점, 선행 고안들을 단순 결합하는 경우 각각 고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대법원 판결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실용신안의 진보성 판단 기준을 이끌어 내고 중소기업의 실용신안 기술을 보호할 수 있게 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6호(2020.12.07 ~ 2020.12.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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