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ABC]
[한경비즈니스 칼럼=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1666년 9월 2일 새벽 2시께 토머스 패리너의 빵 공장에서 시작된 불이 런던 시내를 잿더미로 만든 사고가 발생했다. 약 5일간 1만3000여 채의 건물을 태우면서 런던 대화재는 시내 가옥의 약 80%를 없애 수많은 이재민이 생겼다. 영국 국왕은 불타버린 런던 시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대화재가 일어날 것을 염려해 목조 건축에 제한을 두게 됐고 이후 런던은 석조와 벽돌 건축물을 위주로 재건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런던 대화재가 막대한 피해를 낸 데는 당시 영국의 도시화 현상이 한몫했다. 17세기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였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이주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살고 있던 도시 전체가 불타 없어져 버린 당시 런던 시민들의 충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이전 수십 년 동안 계속됐던 내란과 역병으로 가뜩이나 흉흉해져 있던 런던 시민들에게 대화재는 그들의 앞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불안 속에 런던 시민들은 앞으로 혹시 또 다가올지 모르는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 보상 제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런던 대화재 이후 1680년 니콜라스 바본이 국왕의 명을 받아 영국 최초의 화재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화재가 발생해도 그 피해를 보상해 준다는 제안은 한창 도시 재건 공사에 열을 올리던 런던 시민들에겐 그야말로 굿 뉴스였다. 니콜라스의 회사는 런던에서만 5000건이 넘는 보험을 판매했고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화재보험 회사들이 속속 생겨났다.
위대한 발명품 화재보험 등장의 이면에는 대재앙이 있었다
1906년 4월 18일 새벽 5시 12분 대지진이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 해안을 강타했고 지진의 여파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며칠 동안 화재가 지속됐다. 최소 3000여 명이 희생됐고 샌프란시스코의 80%가 파괴됐으며 3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집을 잃었다. 피해액은 4억 달러(2005년 가치로 50억 달러)로 추산됐다. 잇따른 보험금 지급 청구에 따라 보험사들은 무려 2억5000만여 달러를 지급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보험사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20개 회사가 파산했다. 특기할 점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에 따른 손실은 대부분의 보험 약관에서 보상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로이즈 오브 런던은 5000만 달러 이상이 되는 청구를 100% 가까이 지급했고 하트포드 화재보험이 1100만 달러, 애트나보험이 3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후 재보험사들의 주도하에 화재보험 약관에서 지진 피해 보상을 배제하는 이슈에 대한 세계적 논의가 이뤄졌다. 1910년까지 유럽에서는 모든 보험 약관에 지진 위험에 대한 보상 배제를 따랐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다르게 논의됐다. 1909년 8월 캘리포니아 상원은 캘리포니아 화재보험 표준 약관을 법제화하면서 지진 조항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지진에 동반한 화재가 발생하면 보험사가 보상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인데 이후 지진으로 위협을 받는 다른 여러 나라들도 캘리포니아의 사례를 따랐다.
두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류는 대형 재난을 겪으면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재난 극복의 지혜를 강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화재보험이라고 하는 위대한 발명품이 등장하고 크게 발전했다. 2020년 한 해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팬데믹(세계적 유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병 재난을 겪으면서 리스크 관리와 보험의 순기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속 가능 성장을 추구하는 여하한 조직과 비즈니스에서 견실한 리스크 관리 기능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핵심 전략이 된다. 보험 비즈니스의 사회적 책임 또한 부각되는데 경영 위기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는 보험업계가 향후 사회적 책임에 보다 힘쓰고 사회의 리스크 관리 향상에 더욱 노력할 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9호(2020.12.28 ~ 2021.0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