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태풍이 할퀴고 간 패션업계, ‘온라인 전환’이 자리 갈랐다


[비즈니스 포커스]
- 패션업계 5대 기업 중 2곳 수장 교체
- 만 2년 이상 자리 지킨 CEO는 LF가 유일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패션업계에 대대적인 인사 바람이 불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LF·코오롱인더스트리FnC·한섬·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이른바 패션업계 5대 기업 중 2곳이 수장을 새로 교체했다.

2019년 말 취임한 1년 차 대표이사를 둔 기업이 두 곳이니 만 2년 이상 대표 자리를 수성 중인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 삼성물산패션·코오롱FnC 수장 교체


패션 대기업의 연말 임원 인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임원 인사의 핵심은 ‘온라인 전환’의 성공 여부였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패션 기업의 주요 오프라인 유통 채널인 백화점 매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온라인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가 대표 연임 등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2020년 대규모 영업 손실을 기록한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코오롱인더스트리FnC는 신임 부문장을 각각 선임하며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2020년 3분기까지 누적 집계된 두 회사의 영업 손실은 각각 447억원, 275억원에 달한다.

우선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박철규 패션부문장이 취임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부문장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뒤를 이어 첫 전문 경영인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당초 이 이사장을 비롯해 기업 내부에서는 박 부문장에게 수년간 정체된 실적을 반등시켜 주길 기대했었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박 부문장은 부임 첫해인 2019년 매출 1조7320억원, 영업이익 32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18년 대비 1.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8% 끌어올리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라는 암초를 극복하지 못했다.

새로운 수장에는 이준서 패션부문 상하이법인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부문장으로 내정됐다. 이 신임 부문장은 박 부문장이 임기 말 단행하던 오프라인 점포 구조 조정의 바통을 넘겨받게 됐다. 회사는 2021년 2월까지 빈폴스포츠 오프라인 점포를 전부 정리한다.

영업 손실의 원인으로 지목된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매장 구조 조정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대신 온라인몰 SSF샵 운영에 힘을 준다. 최근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온·오프라인 영업 조직을 영업본부로 통합하고 영업 전략을 주도할 영업 전략담당을 신설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도 수장을 교체했다. 2년째 이끌던 이웅열 코오롱그룹 전 회장의 장남 이규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코오롱글로벌로 옮기게 됐고 유석진 코오롱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 부사장의 승계 과정으로 분석하는 한편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패션 부분에서 손을 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부사장이 코오롱인더스트리FnC를 맡은 2년 동안 실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 패션업계의 ‘빅3’로 불리던 명성은 사라졌고 2019년에는 매출 ‘1조원’ 달성마저 실패했다.

그 결과 이랜드·삼성물산 패션부문·한섬·LF·신세계인터내셔날 등 패션 대기업으로 구분되는 업계 5위권은 고사하고 중견그룹 등에도 밀리는 처지가 됐다.

업계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의 추락을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보고 있다. 시장이 점점 커지는 온라인 시장에 대한 대응 실패, 주축 사업인 아웃도어 불황을 극복할 신사업 사업 부재가 결정적이란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 신임 코오롱인더스트리FnC 사장의 대응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강하다. 그룹의 후계자가 직접 사업을 이끌다가 손을 뗀 것도 모자라 패션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석진 사장은 이웅열 회장이 퇴진할 당시 이규호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조력자로 낙점될 만큼 그룹 내 입지가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 패션 회사들이 오프라인 방문객 급감 등 영업 부진으로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어 경영상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현재 패션 부문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전체 매출의 약 20% 안팎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 3분기 패션부문 매출은 1772억원으로 전체 매출 중 18.5%의 비율을 차지한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2020년 3분기 실적을 보면 △산업 자재(182억원) △화학(208억원) △필름 전자 재료(94억원) △기타 의류 소재(2억원)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패션부문만 19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 신세계인터·한섬 연임, LF는 3연임 유력


온라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한섬의 대표는 자리를 지켰다. 2019년 말 인사에서 차정호 현 신세계 사장과 자리를 맞바꾼 장재영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장은 신세계 백화점부문 전체 임원 20%가 짐을 싸는 인사 칼바람 속에서도 유임됐다.

장 사장은 고급화 전략으로 성과를 낸 점을 인정받았다. 특히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자체 온라인몰인 에스아이빌리지에 명품 브랜드를 공식 입점시키며 병행 수입 제품을 판매하는 다른 채널과 차별화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라이브 커머스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스튜디오를 차리기도 했다. 라이브 방송에서도 명품 브랜드를 주로 판매하며 럭셔리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19년 말 이뤄진 정기 인사에서 수장에 오른 김민덕 한섬 사장도 ‘온라인 퍼스트’ 전략 성과를 거두며 연임에 성공했다. 한섬은 오프라인 VIP 고객들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끌어오기 위해 매출 최상위 100명에게 부여하는 ‘더 스타’ 등급을 2020년 신설했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한섬의 프리미엄 온라인몰 더한섬닷컴에서 VIP 매출(2020년 9월 집계 기준)은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8% 증가했다. 같은 기간 VIP 회원 수도 112% 늘었고 이는 전년보다 67% 증가한 12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섬은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짓고 웹 드라마를 만드는 등 온라인 경쟁력과 콘텐츠 생산 역량을 지속 강화할 방침이다.

패션업계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주목받는 오규식 LF 부회장은 ‘3연임’을 앞두고 있다. 구본걸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오 부회장은 2012년 구 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직에 오른 뒤 사업 다각화 등에 힘쓰며 LF의 지속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한때 수익성 위기에 놓였지만 뚝심 있는 경영 행보로 최근에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F에 따르면 오 부회장에 대한 연임 여부는 2021년 주총에서 결정되지만 3연임이 유력시되고 있다. 오 부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면 10년 이상 LF를 이끌게 되는 셈이다. 오너 경영을 제외하고 패션업계에서 오랜 기간 CEO 자리를 지키는 건 드문 일이다. 오 부회장의 장수 비결로는 빠르게 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발 빠른 미래 성장 도모가 주효했다.

LF는 2020년 3분기까지 누적 기준 영업이익 445억원을 내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35% 감소했다. 하지만 LF의 2020년 3분기 말 기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1813억원으로 2019년 3분기보다 275억원 증가했다. 누적 잉여 현금 흐름(FCF)은 470억원으로 전년 3분기보다 30.1% 늘었다. 사업 다각화와 체질 개선의 영향이다.

오 부회장은 2019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를 과감히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대신 오 부회장은 비대면 시대를 맞아 오프라인 매장을 바꾸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오 부회장은 LF의 전국 오프라인몰을 2021년까지 모두 오프라인 유통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O4O(온라인을 위한 오프라인) 개념의 ‘LF몰 스토어’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LF는 이미 전국의 오프라인 매장 20곳을 LF몰 스토어로 전환했는데 2020년 11월까지 매출 규모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0% 정도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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