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끌어온 EU·중국 투자협정 타결… 들썩이는 유럽


[글로벌 현장]


EU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접근성 확보…독일이 성급하게 주도했다는 비판도




[한경비즈니스 칼럼=베를린(독일) 이은서 유럽 통신원] 7년 동안 힘겨루기를 벌였던 유럽연합(EU)과 중국 간 투자 협정이 최종적으로 2020년 12월 30일 타결됐다. 양측의 투자 협정은 2014년 1월 최초 협상이 개시된 후 현재까지 7년에 걸쳐 총 31차례 진행됐고 인권·교역·지속 가능한 발전 분야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해 왔다. EU는 유럽 기업의 투자 보호를 통한 중국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했고 중국은 EU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자 유럽 지역 기업 인수를 통해 EU 시장 진출 확대를 꾀하던 차였다.


양측은 투자 분야만 한정해 협상하는 것이 아닌 교역·기후변화·인권 등 통상의 자유무역협정보다 포괄적인 방향으로 협상을 전개해 왔다. 특히 EU는 교역과 기후 변화와 인권 등의 지속 가능한 발전 분야에서 중국과 합의가 선행되지 않는 이상 투자 협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이에 2020년 12월 30일 유럽 측에서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상임위원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참여하고 중국 측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가졌고 최종적으로 ‘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CAI)’의 원칙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EU 측은 제조업·금융·통신 등 여러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시장 접근을 확보했고 지속 가능한 개발의 가치 등을 협정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상대 시장에 대한 EU와 중국 기업 접근이 더욱더 자유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EU-중국 간 주요 협상 내용은


EU의 발표에 따르면 EU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 시 본 협정에서는 중국이 현 투자 자유화 수준을 후퇴시키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요 분야별로 구체적인 시장 개방 내용을 규정했다. 현재 EU의 대중국 해외 직접 투자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제조업 분야에서는 일부 생산 과잉 부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를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EU의 대중국 투자 개방과 유사한 수준이다.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과의 합작 법인 설립 요건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기로 했고 신에너지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금융업 분야에서는 금융·증권·보험·자산관리에서 합작 법인 설립 요건과 외국인 소유 지분에 대한 제한을 폐지하고 의료 분야에서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의 주요 도시 내 민간 병원 투자 관련 합작 법인 요건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 밖에 통신·클라우드 서비스 분야에서 현재까지 고수해 왔던 투자 금지를 철폐하고 50% 소유 지분 취득을 상한선으로 인정받게 된다. 국제 해운 분야에서는 지상 조업 활동의 경우 하역·컨테이너 터미널 등에 제한 없이 투자가 가능하게 됐다. 이와 동일하게 항공 서비스 분야에서도 컴퓨터 예약 시스템, 지상 조업 등을 개방한다. 또한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에서 부동산·임대·광고·시장조사·번역 등에서 합작 법인의 설립 요건 폐지했고 환경 서비스 분야에서 오수·소음 경감·배기가스 정화·자연보호와 관련한 사업에서 합작 법인 설립 요건을 폐지했다. 고용 분야에서는 EU국 회사의 관리자와 전문가는 여타의 증명이나 쿼터 제한 없이 중국 자회사에 최대 3년까지 근무할 수 있고 EU 투자자의 대리인은 투자를 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중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 밖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이 국영기업 운영에서 상업적 고려에 따라 결정할 의무가 있고 구매·판매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차별하지 않는 의무 규정을 마련했다. 보조금 지급에서는 투명성을 보장할 것을 규정했고 EU의 투자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보조금 지급은 EU 측과 협의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또한 중국이 외국 기업으로부터의 기술 허가에서 국가적 개입을 금지하고 강제 기술 이전을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 국가 기관이 획득한 영업 기밀 정보는 허가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합의했고 EU가 중국의 표준 설정 기관에 대해 동등하게 접근하고 투자 인허가에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규제·행정조치 등에서 투명성 규정을 명시했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영역에서 강제 노동 관련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하도록 노력하며 환경과 관련해 파리기후협약의 효율적 이행을 약속했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고 이에 바탕을 둔 영업을 장려할 것을 규정했다. 특히 투자 유치를 위해 노동·환경 관련 기준을 하향 조정하지 않을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EU 측에서 지금까지 요구했던 분야들이 대부분 반영됐다.


한편 중국의 EU 시장 접근에 관해서는 합의문에 별도로 서술돼 있지 않고 다만 공공 서비스, 주요 인프라, 기술 등 EU의 민감 산업 분야는 이번 투자 협정에서도 개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처럼 이번 합의는 실질적으로 EU 기업들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전례 없이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EU 측은 이번 투자 협정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럽의 대중국 시장 접근에서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다. 특히 국영 기업, 기술 이전, 보조금 등과 관련해 공정 경쟁 환경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중국이 타국과 맺어 온 다른 투자 협정들과 비교해서도 포괄적 수준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EU에 경제적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투자 협정을 통해 현재 EU와 중국 간 해외 직접 투자의 불균형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이번 투자 협정은 중국이 강제 노동, ILO 핵심 협약 비준 등과 관련해 높은 수준의 지속 가능 개발 조항에 동의한 첫 협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이 협정의 성공적인 채택과 비준에는 중국 측의 노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의 약속 이행에만 의존하는 것은 완전한 신뢰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위험성을 수반하고 있고 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 직전에 체결돼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도전하는 패권 다툼에 이용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유럽 의회가 반대하고 폴란드와 이탈리아가 불안감을 표명했지만 독일이 추진하고 프랑스가 지지해 체결된 이 협정이 EU의 비준을 성공적으로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일 베를린 소재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미코 후오타리 소장도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기고에서 이번 협정이 실제 이행 가능성보다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높고 특히 독일의 성급한 주도로 인해 EU가 홍콩을 비롯해 위구르족 탄압과 관련한 인권 문제를 눈감아 주는 형국이 됐다며 비판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1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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