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매출 신기록...한국 식품기업 해외 고성장 비결

CJ제일제당·농심·대상·오리온 해외 실적 최대 전망
풀무원은 미국·중국에서 첫 흑자

[커버스토리] 해외서 훨훨 나는 한국 식품기업

한국 식품 기업들이 세계에서 맹활약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급증하고 있는 가공식품의 수요를 끌어안는데 성공하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가 이어지는 추세다.

글로벌 식품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거둔 성과여서 더욱 값지다. 오랜 기간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공들였던 시간과 노력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CJ제일제당·농심·대상·오리온·풀무원의 해외 시장 성공 비결을 들여다봤다.



CJ제일제당을 비롯해 농심·대상·오리온 등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풀무원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미국과 중국 등 해외 주력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흑자 전환을 이뤄 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급증하는 글로벌 가공식품 수요를 한국의 식품 기업들이 끌어안은 것이 해외에서 호실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성공적인 방역 성과를 거두며 ‘안전한 국가’라는 인식이 퍼진 것, 케이팝을 통해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커진 부분 등이 최근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식품 수요를 끌어안을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김 교수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각 기업들이 그동안 오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이른바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는 일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CJ제일제당·농심·대상·오리온·풀무원 등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 내겠다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오랜 기간 해외 영토 확대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런 노력들이 비로소 코로나19 상황에서 빛을 발한 셈이다.

M&A로 시장 강자 등극한 CJ제일제당·풀무원

CJ제일제당과 풀무원은 인수·합병(M&A)을 앞세워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2000년 초부터 ‘한식의 세계화’라는 목표를 내걸고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타깃은 미국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는 세계의 중심인 미국 시장에서 가장 먼저 인정받은 뒤 다른 국가들로 점차 영향력을 키워 나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미국 유통 시장 공략은 녹록하지 않았다. 제품 하나만 갖고 현지 유통 시장을 뚫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현지 유통 업체를 M&A해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었다.

2005년 상온 식품 생산 업체 애니천 인수를 시작으로 옴니푸드(2006년)·TMI(2013년)·카히키(2018년) 등을 품에 안으며 미국 시장에서의 외연을 넓혀 갔다.

2019년에는 2조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미국 유명 냉동식품 업체인 슈완스컴퍼니(이하 슈완스)까지 손에 넣었다. 현재 CJ제일제당은 미국에서 생산공장·물류·영업망을 고루 갖춘 대형 식품 기업으로 거듭났다.

자사 브랜드인 ‘비비고’의 매출이 늘어나는 시너지도 나타나고 있다. 품에 안은 현지 기업들이 기존에 확보해놓은 현지 유통 판로를 자연히 흡수하며 대형마트에 한정됐던 비비고 판매를 중소형 점포들로까지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CJ제일제당은 지난해 3분기까지 미국에서만 2조5000억원의 가공식품 매출을 올렸다. 미국 시장을 앞세워 해외 가공식품 매출 4조원 달성이 유력해 보인다.

풀무원도 비슷하다. M&A를 통해 미국 시장을 공략해 왔다. 2004년 미국의 콩 가공식품 회사 와일드우드, 2009년 냉장 식품 회사 몬터레이 고메이푸드 등을 인수해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하지만 매출은 지지부진했고 실적은 늘 적자였다. 결국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16년 미국 최대 규모의 두부 브랜드 ‘나소야(Nasoya)’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소야는 현지 두부 판매량 1위를 기록할 만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었다. 또 미국 내 2만여 개 영업 유통망을 보유한 상황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미국 두부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베팅했다.

두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 풀무원은 2019년 기준 미국 두부 시장점유율을 75%까지 끌어올리며 시장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다. 지난해에는 마침내 1990년 초 미국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 법인이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철저한 현지화로 소비자 공략한 오리온

아시아를 대표하는 제과 기업으로 성장한 오리온은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돋보였다. 중국 제과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맛도 맛이지만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쳤기에 가능했다.

이를테면 오리온의 대표 상품인 초코파이는 좋은 친구라는 의미를 담은 ‘하오리요우(好麗友)’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이런 이름을 정한 것이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초코파이의 출시 직후부터 중국 내에서 빠르게 팔려 나갔다.

지금도 인기는 여전하다. 계속해 중국 파이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초코파이는 중국에서만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또 오리온은 베트남과 러시아 등에서도 현지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신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현지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 같은 노력을 기울여 온 오리온은 해외 매출 비율이 내수를 압도한 지 오래다. 현재 총매출 가운데 70% 정도가 해외에서 나온다.

역발상 ‘프리미엄 전략’ 성공시킨 농심

농심은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역발상 마케팅 전략이 돋보였다. 농심은 해외 주요국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며 성장해 왔다.

해외에서 판매 중인 신라면은 최대 경쟁사인 일본 라면들보다 훨씬 비싸게 판매 중이다. 일본 라면은 대부분 3~4개들이 한 팩에 1달러 수준인 반면 신라면의 가격은 개당 1달러 안팎이다.

라면이 싸구려 식품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 같은 가격을 정했다. 물론 값이 비싼 만큼 경쟁사 대비 보다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 라면을 비롯한 대부분의 업체들은 면과 스프를 현지에 있는 전문 생산 업체들에서 공급받아 저가에 판매하고 있다. 신라면은 직접 설립한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 면과 스프만 사용하고 있어 질적인 측면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전략은 결국 신라면의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라면은 현재 미국·중국·동남아 등지에서 경쟁사 브랜드보다 훨씬 뛰어난 고급 라면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구축한 프리미엄 이미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효과를 나타냈다. 건강이 화두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라면 한 끼를 먹더라도 질 좋은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이는 곧바로 신라면 브랜드의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신라면의 해외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늘어난 4400억원으로 예상된다.

한류 효과 톡톡히 입은 대상

김치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상은 케이팝을 필두로 한 한류 열풍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표 음식인 김치와 고추장 등의 판매량이 세계 시장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상의 종가집 김치 수출액에서도 나타난다. 2016년 약 2900만 달러에서 2019년 4300만 달러로 48%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 거둔 김치의 해외 매출은 이미 전년도를 뛰어넘은 상황이다.

대상의 종가집 김치는 현재 미주·유럽·대만·홍콩 등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 진출해 있다.

그간 일본·홍콩·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이 주력 시장이었는데 수년 전부터 한류 열풍에 힘입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에서도 김치를 찾는 현지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자연히 종가집 김치의 해외 매출도 껑충 뛰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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