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대신 벤모하세요”… 코로나19 이후 급성장하는 테크핀 기업
입력 2021-02-04 08:40:22
수정 2021-02-04 17:22:48
지난해 미국에서 비접촉식 결제 빠르게 확산…페이팔·비자 등 비트코인 서비스 추가
[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20)테크핀“우리는 체크(수표)만 받아요. 신용카드는 수수료가 있습니다.” 20세기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실제 상황이다. 미국에선 수표 사용이 활발하다. 없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 집을 사고 파거나 렌트(월세) 계약을 할 때처럼 부동산과 관련된 계약은 유독 수표를 사용한다.
퓨리서치센터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11%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소득 3만 달러 이하 가구 중에선 19%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안 되는 가정이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낼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고 수표도 선택지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2018년 미국 전체 결제 중 수표가 차지한 비율은 6%다. 2000년 40%가 넘었던 수표 사용 비율이 그간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미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당장 수표가 사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현금 없는 사회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의 710만 가구는 은행 계좌가 없다. 저소득 미국인이 최소 잔액 요건과 은행 수수료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은행 계좌 확보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은행에서 발행하는 수표를 사용할 수 없고 현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례만 보면 미국의 결제 시스템이 뒤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금융 서비스는 한국보다 훨씬 빠르고 소비자 친화적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은 매우 간편하고 빠르다. 간단한 아이디나 지문으로 대부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한국처럼 각종 보안 프로그램에 인증서를 깔 필요도 없다. AI 감시 시스템을 갖춰 수상한 거래가 발생하면 즉각 경고하고 사용 제한을 건다.
1950년대부터 카드 결제 시스템을 갖췄을 만큼 미국엔 비자·마스터카드와 같은 세계적인 카드 네트워크 회사와 아멕스와 같은 글로벌 신용카드 회사들이 있다. 2018년 기준 미국에서 사용되는 신용카드는 11억 개가 넘는다. 미국 인구가 3억282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평균 4장 가까운 신용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결제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인 추세인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된 것이다. 팬데믹 이후 이커머스의 성장에 따라 온라인 결제가 늘어나고 바이러스 전염 우려로 현금 사용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리서치 회사 모펫네이선슨에 따르면 2020년 2분기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현금 인출액은 약 12% 정도 감소했다.
스마트폰 결제를 포함한 비접촉식 결제가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20년 4월 마스터카드 글로벌 거래 데이터와 소비자 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약 3분의 1이 팬데믹 기간 동안 비접촉식 지불을 처음 사용했고 비접촉식 결제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8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카드사들도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체이스은행으로부터 별도의 신청 없이 비접촉식 신용카드로 교체 발송돼 3번의 비접촉식 결제를 이용하면 제휴된 호텔의 포인트를 지불한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가장 큰 수혜를 본 업체는 페이팔과 스퀘어와 같이 디지털 결제만 취급하는 회사들이다. 이 업체들의 서비스는 은행 계좌가 없어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그간 디지털 결제를 이용하지 않은 50대 이상의 이용자들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페이팔은 미국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2분기에 평소 분기당 800만~900만 수준이었던 신규 순활성 계정 수(NNA)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7% 늘어난 2130만 개를 기록했다. 3분기엔 152만 개의 신규 계좌가 개설돼 2분기에 이어 둘째로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댄 슐먼 페이팔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에서 “세계는 디지털 퍼스트 경제로 확실히 속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페이팔의 3분기 매출 증가율은 역대 최고 규모라고 밝혔다. 게다가 페이팔은 2013년 모바일 송금 서비스 벤모(Venmo)를 보유한 브레인트리를 인수해 미국에서 송금해 달라는 말을 “벤모해 달라”는 이야기로 대신할 정도로 실시간 송금의 대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판매 시점 관리(POS)와 결제 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스퀘어도 오프라인 가맹점을 중심으로 운영하다가 팬데믹을 맞아 온라인 업체들로 눈을 돌려 2020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한 63억3861만 달러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가맹점 기반을 바탕으로 2013년 출시한 전자지갑 서비스인 캐시앱(CashApp)을 개인용 모바일 결제 시장으로 확장해 2020년 가입자 수를 3000만 명까지 늘렸다. 페이팔의 활성 이용자 수의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유저당 평균 거래량이 월평균 15회 이상일 정도로 이용이 활발하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맥스 레브친이 설립한 테크핀 업체 어펌은 1월 13일 나스닥 상장 첫날 공모가 2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단리 이자로 할부 결제 기능을 제공하며 조기 상환 수수료와 연체 이자가 없다는 장점을 보유한 어펌은 밀레니얼과 Z세대가 주로 사용한다. 어펌은 펠로톤과 월마트 등 대형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고객을 확장했고 팬데믹 때 더욱 성장했다. 2020 회계연도에 620만 명의 소비자가 6500개가 넘는 고객사의 가맹점에서 1730만 건의 거래를 완료했고 주문금액(GMV)은 46억 달러를 초과했다.
미국 테크핀, 비트코인 거래 지원 확대
미국의 테크핀 업체들은 온라인 결제 비율이 높아지고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이를 활용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페이팔은 지난해 10월 비트코인 매매 기능을 추가했고 내친 김에 올해부터 전 세계 2600만 가맹점에서 이더리움·비트코인캐시·라이트코인 등 4개 가상화폐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고 발표했다. 페이팔은 뉴욕 주 금융 당국으로부터 일반 고객들에게 암호화폐를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았다.
비자도 카드 결제 금액의 1.5%를 비트코인으로 돌려주는 신용카드를 출시하며 스테이블코인 ‘USDC’로 결제할 수 있는 법인용 신용카드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유로 등과 연동돼 비트코인 같은 다른 가상화폐보다 가격 변동성이 낮은 가상화폐다.
스퀘어는 이미 2018년부터 캐시앱을 통해 비트코인 거래도 할 수 있게 허용했다. 중개인으로부터 가상화폐를 사 고객들에게 다시 팔면서 스프레드 수익을 얻어 온 스퀘어는 아예 지난해 10월 기업 총자산의 1%에 해당하는 5000만 달러를 비트코인에 투자해 비트코인 4709개를 확보하기도 했다.
미국의 테크핀이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로 자리 잡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안 한국 금융 산업은 여전히 걸음마 중이다. 공인인증서가 금융인증서란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문제가 생기면 고객 책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는 그대로다. 복잡한 금융 규제도 문제지만 소비자를 위한 시스템도 아쉽다.
칼럼을 쓰는 중에 공교롭게 확인한 국내 굴지의 H은행에서 날아온 이자 납부에 대한 안내 메일엔 실제 금액과 수십만원이나 오차가 있었지만 실제 이자액과 다를 수 있다는 문구를 이유로 책임이 없다는 은행 담당자의 말에 안타까움이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