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다음 ‘기생충’ 없다”…피해 가장 큰 영화관, 정부 지원 ‘사각지대’

영화관은 지역 상권 ‘앵커 스토어’ 역할, 영업 중단에 주변 상인도 타격
대기업 분류돼 착한 임대인 세금 혜택도 못 받아

[커버 스토리]

한산한 CGV 용산아이파크점/사진=서범세 기자

“이 상태라면 다음 ‘기생충’은 없을 겁니다.” 영화업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 콘텐츠 수익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영화관이 ‘줄도산’ 직전에 놓이자 영화 콘텐츠 수익 구조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영화관은 영화 산업 생태계의 중심에 있다. 영화 티켓 가격의 50%는 영화관이, 나머지 50%는 배급사에 영화 부금으로 지급한다(수도권은 55 대 45 비율). 배급사가 받은 부금은 투자사와 제작사가 나눠 갖는 구조여서 극장 관객 규모가 영화 산업의 기반이 된다.

영화관 이용객 감소가 곧 매출 감소→새로운 영화 오픈 연기(보류)→ 배급사(제작사) 위기→제작 감소로 연결된다. 업계에서 영화관 매출 하락이 곧 콘텐츠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다.

영화관 매출 81% 추락…CGV 21 곳 영업 중단


지난해 전국 영화관 이용 관객 수는 신천지 대구교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발생 이후 급격히 추락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대비 관객 수는 81.5% 급감했고 매출은 81.1% 고꾸라졌다.

여타 콘텐츠 시설과 비교해도 극장의 피해가 가장 크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차 확산기 시기 영화관의 피해 금액은 약 2181억원으로 노래방·PC방·서점·공연 시설 등 다른 콘텐츠 시설과 비교해 피해 금액이 가장 컸다.

올해도 상황은 막막하다. 영화관 사업자들은 임금 삭감, 휴직, 영업 중단, 관람료 인상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무엇보다 신규 출점 중단, 상영관 감축, 상영관 영업 중단 확대 등 미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CGV는 코로나19 이후 직영점 8개, 위탁점 13곳이 운영난으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이고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는 근속 3년 이상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관 1개에 20명이 넘는 직원이 일했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생을 모두 정리하고 정규직 5~7명 정도만 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정비용을 최소로 줄여 운영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로 새로운 영화 개봉이 연기돼 고객이 영화관을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 운영난으로 영업 중단에 돌입했던 CGV 대구칠곡점 점주의 설명이다.

CGV는 월 170억∼180억원 수준의 고정비가 발생하고 있지만 현행 임대차 보호법에도 연간 보증금 환산 금액이 9억원 이하로 돼 있어 극장 사업자들은 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존 임대인들은 대기업 대상으로는 ‘착한 임대인 세금 감면 혜택’도 전혀 없어 임대료를 감면하기도 꺼리는 상황이다.

영화상영관협회는 이에 대해 “최근 코로나19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낮춰 주는 정책이 공론화되고 있지만 수혜 대상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한정된다”며 “영화관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이 대기업군에 속한다는 이유로 각종 지원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티켓 매출 3% 영화발전기금 내지만 실질적 지원 전무

대출이나 정부 지원도 타 산업에 비해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다. CGV 대구칠곡점 점주는 “서비스업의 테두리에 속한 영화관은 매출에 비해 정부 지원(보증서 발급 등)의 한도가 제조업에 비해 턱없이 적고 은행권은 영화관 업종을 위험 업종으로 분류해 기업 신용 대출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대구 지역 멀티플렉스 3사 영화관은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동안 영업을 중단했다. 이 기간 매출은 99% 줄었고 상권의 ‘앵커스토어’ 역할을 하던 영화관이 문을 닫고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자 주변 상인들 역시 타격이 컸다.

그동안 영화관은 쇼핑센터나 중심 상권에서 다수의 고객을 흡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만큼 임대료와 판관비 등 고정비 지출이 큰 구조였다.

영화관 1곳당 평균 36명(정규직+계약직)에 달하던 고용 역시 대폭 줄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영화관 407곳의 계약직 재직자 수는 2019년보다 70% 감소했다. 2019년 1만1594명에 달하던 계약직 직원은 지난해 10월 3450명으로 급감했다.

정규직 재직자 수도 3912명에서 3291명으로, 621명(15.9%) 감소했다.

영화관업계는 영화관 감염 사례가 없는 만큼 운영 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풀고 다양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관 사업자들은 매년 연간 티켓 매출의 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납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발전기금은 영화관 지원이 아니라 독립영화 제작 지원과 시나리오 공모전 등의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관 사업자들의 매출로 이용되는 기금이지만 영화관에는 손 소독제 지원, 방역 물품 지원, 재개봉 영화 상영 지원 등 간접 지원만 하고 있다.

CGV 대구칠곡점 점주는 “영화관 운영 업체가 매출 비용에서 영화발전기금을 지출하고 있는 만큼 지금처럼 영화관이 존폐 위기에 놓였을 때는 해당 기금으로 대출 보증서 발급, 영화발전기금 환급, 직접 대출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관업계에서 절실하다고 외치는 것 중 하나는 개봉 영화 지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관람객이 감소하면서 개봉 영화가 연기되거나 아예 보류되는 등 새로운 콘텐츠의 부재로 이어지자 영화관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배급사에 개봉 영화에 대한 부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기존 티켓 판매 비용의 50% 정도를 배급사에 냈지만 관람객 1명당 500∼1000원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영화 제작비용 회수와 이익 실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업계에서는 해당 지원으로는 새로운 콘텐츠 개봉이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영화관 사업자들이 정부에 새 영화 개봉에 대한 예산 편성을 요청하는 이유다.

앞서 말했듯이 고정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임대료 지원 역시 영화관업계의 요구 사항이다. 직영점도 허리가 휘고 있지만 대기업의 브랜드 사용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위탁점 개인 사업자들의 고민은 더 크다.

지방의 한 극장주는 “정부 지원을 받고 싶어도 소상공인이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고만 한다”며 “영화관 특성상 영업이익은 적지만 매출은 많아 지원받지 못하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어 “대기업 브랜드에도 착한 임대인 세제 혜택과 임대료 지원 정책을 도입하고 운영 시간 제약 보완 등 전반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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