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투자 외면한 워런 버핏의 후회…비트코인으로 재연될까[비트코인 A to Z]
입력 2021-02-26 07:07:01
수정 2021-03-08 17:21:11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시각 바꾸는 투자 대가들…20년전 닷컴 버블 직후 조롱받는 인터넷 섹터와 유사
[비트코인 A to Z]금융 투자업계에서는 거시적인 시장 환경과 미시적인 개별 자산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진다. 시장 사이클이 현재 어느 수준인지, 특정 자산이 고평가·저평가됐는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항상 존재한다. 올바르게 판단한 투자자는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투자자는 돈을 잃거나 돈을 벌 기회를 놓친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있듯이 위험을 많이 감수할수록 투자로 돈을 벌 가능성이 높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존경 받는 투자 대가들은 특정 연도에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낸 사람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일정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돈을 잃지 않고 시장을 꾸준히 이기는 것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은총이다.
흥미로운 점은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적인 투자 자산은 일반적으로 초기에는 금융 투자업계의 외면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당 투자 자산은 완전히 검증되지 않아 미래가 불확실하고 가격 변동성이 커 ‘투자 부적격’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투자 자산의 적정 가격을 평가하는 밸류에이션이 광범위하게 통용되지 않는 점도 금융 투자업계로 하여금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마존 투자 외면한 워런 버핏의 후회
오늘날 가장 핫한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 섹터를 살펴보자. 인터넷 섹터는 20년 전 닷컴 버블이 터진 직후 금융 투자업계의 외면을 받았다. 가치 투자를 신봉하는 금융 투자업계 투자자들은 가치주 대비 말도 안 되게 높은 밸류에이션인 인터넷 섹터 성장주의 몰락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다. 심지어 아마존 같은 회사가 종국에는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 당시 인터넷 섹터의 장기적인 성장에 확신을 가졌던 부류는 월가가 아닌 실리콘밸리였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 섹터에 대한 월가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터넷 섹터는 스마폰의 대중화와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나스닥은 닷컴 버블 당시 전고점을 뚫고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치가 높은 기업들은 2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조롱에 시달리던 인터넷 기업들이다.
오늘날 금융 투자업계에서는 인터넷 섹터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메가 트렌드라는 전망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것은 20년 전 닷컴 버블이 터진 직후 당시와 비교할 때 상전벽해다. 심지어 전통 산업에 보수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조차 인터넷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실수라고 인정하며 뒤늦게 애플과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섹터 주식을 매집했다. 그는 아마존 투자를 일찍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이뤄냈다. 문제는 (과거에) 내가 거기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오늘날 비트코인 현상은 닷컴 버블 이후 인터넷 섹터를 떠올리게 한다. 비트코인에 대해 상당한 가치 상승을 전망하는 낙관론자도 있고 가격이 0에 수렴할 것이라는 비관론자도 있다. 극단적인 견해차와 저마다의 논리로 무장한 갑론을박이 있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단언할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 검증되지 않은 투자 자산, 불명확한 밸류에이션, 높은 가격 변동성 등으로 인해 비트코인이 금융 투자업계에서 ‘투자 부적격’ 취급을 받고 있는 점은 20년 전 인터넷 섹터가 겪은 그것과 비슷하다.
흥미로운 점은 금융 투자업계에서 투자 대가로 인정받는 대가들이 최근 들어 비트코인에 대한 견해를 전향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금융 투자업계의 투가 대가들 사이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 첨예한 대립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주목할 만한 점은 이에 대한 견해를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가 중립적 혹은 긍정적으로 바뀐 사람은 있지만 긍정적이었다가 중립적 혹은 부정적으로 바뀐 사람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견해 바꾼 전문가들…여전히 ‘보수적’인 시각도 존재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의 사례를 보자. 막스 회장이 보낸 메일은 버핏 회장이 항상 챙겨 본다고 할 정도로 그는 시장에서 위대한 투자자로 평가 받는 투자 대가다. 2021년 1월 막스 회장은 ‘가치에 대한 것’이라는 글을 오크트리캐피털 홈페이지에 남기며 낮은 밸류에이션, 재무제표상 나타나는 기업의 펀더멘털 등 과거의 가치 투자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오늘날 어쩌면 구식일지 모른다는 견해를 밝혔다. 해당 게시물에는 비트코인에 대한 언급이 있다. 막스 회장은 2017년 비트코인 광풍 당시 자신이 무척 회의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비트코인 낙관론자인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암호화폐의 경우 나는 아마도 금융 혁신에 대한 나의 인지 패턴과 (보수적인 관점) 투기적인 시장 행위로 인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그동안 오크트리캐피털과 나를 많은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 줬지만 혁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아들 앤드루의 도움으로) 결론 내렸다. 그것은 바로 암호화폐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형성하기에 나는 아직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막스 회장은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잘 모르겠다’는 중립적인 견해로 바꿨다.
비트코인에 대한 견해를 바꾼 또 다른 투자 대가는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최고경영자(CEO)다. ‘원칙’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에도 유명한 달리오 CEO는 2017년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2020년 11월에도 그는 정부가 비트코인을 금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달리오 CEO는 2021년 1월 ‘내가 비트코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는 글을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달리오 CEO와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동료들이 수행한 방대한 양의 비트코인 펀더멘털 분석이 담겨 있다.
달리오 CE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비트코인이 엄청난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에 기반한 새로운 유형의 돈이 지난 10년 동안 작동하고 돈으로서, 부의 저장소로서 급격한 인기를 얻는 것은 놀라운 성취다. (중략) 이것이 비전문가 시각에서 바라본 비트코인이다. 나는 오류를 바로잡길 원하고 더 많이 배우기를 원한다.” 필자가 달리오 CEO의 글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은 투자의 대가 반열에 오른 사람조차 새로운 영역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고 학생처럼 배우기를 열망한다는 점이었다.
비트코인에 대한 견해를 전향적으로 바꾼 투자의 대가들도 있는 반면 여전히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버핏 회장이 대표적이다. 버핏 회장은 비트코인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며 비트코인을 ‘도박’이나 ‘쥐약’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술주 투자로 성공한 유명 펀드매니저 빌 밀러가 버핏 회장의 발언을 비꼬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는 점이다. “워런 버핏이 비트코인을 쥐약이라고 표현한 것은 유명하다. 그가 아마 맞을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쥐약일 수 있고 쥐는 현금일 수 있다.” 참고로 밀러 펀드매니저는 화폐 가치 하락을 우려하며 비트코인 투자에 낙관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이번에도 올바르게 투자 판단한 사람은 돈을 벌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큰 기회비용을 지불할 것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버핏 회장의 벅셔해서웨이가 비트코인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날이 올까.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팀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