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랠리’의 나비 효과…디지털 통화 도입 앞당기는 중앙은행들
입력 2021-02-24 14:46:48
수정 2021-02-24 14:46:48
중국에 한 발 뒤진 미국도 ‘디지털 달러’ 발행 서둘러…디지털 국제 통화 패권 전쟁 예고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읽기]금융 위기 직후 처음 선보인 비트코인 가격이 마침내 5만 달러(약 5520만원)를 돌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각종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5000달러 밑으로 떨어졌던 작년 3월에 비해 불과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10배 이상 뛰었다. 씨티은행은 올해 안에 31만 달러(약 3억4200만원)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처럼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 ‘완전 비탄력적’인 여건에서는 수요가 조금만 증가하더라도 가격 급등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언택트(비대면),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앞당겨짐에 따라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도 매우 밝은 편이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인식까지 개선됨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은 자사 상품의 결제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고려 중이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사도 비트코인을 자산에 포함하면서 상장지수펀드(ETF) 등 관련된 상품을 출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 화폐인 법화(法貨‧legal tender)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즉 하버드대 케네스 로코프 교수가 주장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디지털 달러 늦어질수록 ‘트레핀 딜레마’ 극복 어려워
각국 중앙은행도 변신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기업·금융사·국민의 화폐 생활이 가상화폐로 전개됨에 따라 중앙은행 차원에서 디지털 통화(CBDC :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각국 중앙은행의 우려와 달리 가장 먼저 도입한 디지털 위안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도 CBDC 도입을 서두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디지털 통화 도입에 가장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종전의 방침을 바꿔 올해 안에 디지털 통화 도입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8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권력이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방침을 취했던 미국 중앙은행(Fed)도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이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더구나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기업이 결제 수단으로 고려함에 따라 ‘디지털 달러’ 도입을 앞당겨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디지털 달러 도입이 늦어질수록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는 벨기에 경제학자인 로버트 트리핀이 주장한 것으로,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신뢰도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Fed의 무제한 양적 완화로 달러 가치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면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더이상 ‘글로벌 시뇨리지(화폐 발행 차익)’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dollar’ trap)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달러 가치를 유기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출구전략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 인상 이후 추진됐던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긴축 발작(taper tantrum) 우려 등으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디지털 달러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Fed는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는 평가다. 디지털 위안화보다 늦은 잃어버린 시간을 채우기 위해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법정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직접 도입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국제 통화 패권 전쟁 대비해야
‘디지털 달러화’가 도입되면 디지털 위안화와 또 다른 형태의 기축통화 전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한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추진해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국의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들이닥칠 디지털 국제 통화 질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구축하면 중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국 금융사의 자금 조달 효율성과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미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을 연간 23억~118억 달러로, 전체 조세 수입의 0.4~1.8%에 달하는 큰 혜택을 누린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된다면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 각국 중앙은행은 전통적 목표인 ‘물가 안정’에만 둘 수는 없다. 아마존 효과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기준 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 정책 수단도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 주체도 공유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주도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 간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위상, 금융 시장의 효율성 지표인 기준 금리와 시장 금리 간 체계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유사 금융 행위도 판치게 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 감독이 새로운 방식, 이를 테면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에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앞으로 화폐 개혁 논쟁에서 국민의 저항이 높은 ‘리디노미네이션’보다 ‘디지털 원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무 부서인 한국은행은 ‘디지털 원화’를 발행할 것인지를 시작으로 중앙은행 목표 수정, 디지털 통화지표 개발,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통화 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 정책 전달 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를 사전해 준비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