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CEO들’…한국 기업, 조직 건강도 ‘적신호’

[경영전략]-국내 기업 77%, 글로벌 기업 대비 건강도 저조...CEO와 함께 임원도 함께 리더십 발휘해야



[김광진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요즘 주위의 모든 것들의 변화가 참 빠르다. 흐름의 방향성과 속도는 각각 느끼기 나름이겠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지거나 망할 것이라는 범용적인 예측에는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디지털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대세부터 구조적인 사회적 변화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하나하나가 다 묵직하다. 그리고 그 강도가 거세고 복잡하다 보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처방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다.

한때 바람처럼 유행했던 시나리오 경영도 요즘엔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불확실성이라는 성질이 강해지고 있어 기업들의 경영 회의에서 ‘최악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이 많이 분주하다.


긴장도도 높다. ‘L자형’ 경기 침체라고 불리는 녹록하지 않은 경영 환경이 길어지면서 기업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하나하나 더 도드라지고 심해지고 있다. 교육과 컨설팅 의뢰를 받아 기업을 방문해 보면 모든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을 중심으로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변화가 남다르기에 전략과 솔루션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잠 못 자는 CEO’라는 말이 유난히 공감되는 작금의 현실이다.

특히 안타까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도 고전적인 답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 전략만 봐도 그렇다. 한국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전략 키워드의 하나로 그간 기업의 역사를 늘어놓고 볼 때 과거에는 꽤나 먹혔던 방법이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이제는 그 고전 진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다. 자연히 과거에 비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과 CEO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해답을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국내 수많은 기업들이 아파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략은 변해도 그 중심은 ‘사람’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2018년 실시한 ‘기업의 조직 건강도 조사’를 보면 국내 기업의 무려 77%의 조직 건강도가 글로벌 평균 대비 많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비즈니스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조직의 건강 수준이 이런 상태라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선제적으로 대책을 세워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조직 건강도와 관련된 조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상과 이슈의 관점에서 몇 가지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중심이 돼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기업의 임원과 리더들이 ‘총대’를 메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고 조직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당 조사가 실시된 2018년보다 현재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기업의 임원과 리더들은 더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만나는 모든 기업의 리더들마다 공통적으로 ‘아프고 어렵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물론 기업을 이끄는 리더로서 마땅히 감당해 나가야 할 ‘성장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조금 색깔이 다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얘기하는 공통적인 3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역할을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리더들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어떻게 역할을 전환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의 방향성 그 자체여야 하는 임원들과 현장의 CEO라고도 불리는 팀장들의 아픔은 그 임계치를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임원이나 리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교육과 컨설팅이 많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이를 통해 조직과 비즈니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업 CEO나 임원들의 역할 전환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관리의 대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기업과 조직의 성장 포인트는 CEO 관점의 관리였다. 그간 대부분의 기업들은 CEO가 임원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이들은 여기에 발맞춰 주어진 업무를 진행해 왔다.



이제는 경영 환경이 과거와 크게 변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생각지도 못한 툴과 솔루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기술들의 발달을 CEO 혼자서만 따라가고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CEO뿐만 아니라 임원들도 책상에만 앉아있기보다 세상의 변화를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비즈니스 리더 역할을 반드시 해줘야만 한다.

문제는 이런 사업가적 마인드와 역량을 갖춘 임원들이 참 없다는 것이다. 요즘 만나는 CEO들 역시 “이런 부분이 아쉽다”며 “비즈니스의 건강을 책임지는 임원들의 역할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둘째, CEO나 임원들이 처한 조직의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직에 끼어 있는 존재가 되는 이들도 많고 그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해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대 간의 다양성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다. 우리의 리더들이 이 갈등의 정점에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단순히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을 넘어 복잡한 사람과 사람의 갈등을 다 풀어내야 하는 막중한 책무까지 부여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런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리더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

많은 기업들은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교육기관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다양한 강의를 마련하고 있다.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소통하는 법’, ‘그들을 이해하는 법’ 등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최근에는 핫한 ‘Z세대’까지 기업에 가세하고 있어 이런 유형의 강의가 더욱 잦아지고 범위도 넓어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잠시 멀리 떨어져 강의 내용들을 바라보면 개인적으로 의구심이 든다. 왜 리더들이 변해야만 한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 것일까. 세대라는 특성은 상대적이고 상호존중과 의존적인 것이 당연한 것일 텐데 말이다.

어느 한 세대를 위한 솔루션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솔루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리더만 변해야 한다는 강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점차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내부에서 소주 한잔으로도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향후 그 기회조차 시도하기 어렵게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최근 만난 한 기업 팀장의 푸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죽어라 고생하며 최선을 다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제 좀 더 큰 역할을, 성장을 위한 역할을 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관리자로서 조금 편해지려고 하니 다시 ‘김대리’가 된 것 같아요.”

한 기업의 임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현재 조직 내부에서 자신이 3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현재 회사에서 공식 직함은 사장인데 어떤 때는 상무가 해야 할 일도 하고 있고 때로는 대리 역할까지 맡을 때가 있습니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셋째, 단어 그 자체의 의미대로 물리적인 건강도가 낮아지고 있는 점이다. 최근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어려워지면서 조직을 개편하는 기업들이 많다. 구조조정이나 신성장 동력 창출, 선택과 집중 등 조직 개편의 목적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리더들의 권한이 줄어들고 책임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일선 팀장들은 이제 그 힘들다는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조직의 관리자나 리더들이 정신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아파 병원을 찾는 사례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에서도 오죽하면 ‘명상’과 같은 ‘마음 관리’ 프로그램이나 강의들을 준비하고 듣고 있겠는가. 이쯤 되니 마음 관리라는 단어가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필자만의 유치한 감성일까.


최전방에서 조직을 진두지휘해 획기적인 성장과 기업의 명운을 만들어 나가는 ‘야전사령관’도 잠깐이나마 쉴 시간이 필요하다. 관리 받을 필요가 있다.

결론을 정리해 보자. 급변하는 현시대에서 성장하려면 전략을 중심으로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여기서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람이 답이고 미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요즘 유난히 아파하는 리더들이 있다. 이 리더들의 건강을 챙겨야 할 때다. 건강한 임원과 건강한 리더들이 있어야 승산이 있다. 물론 건강한 CEO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5호(2019.10.07 ~ 2019.10.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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