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꽃’ 연금, 초고령사회로 불안감 커져

-일본, 노후 자금 위해 세금 올리고 복지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연금은 노후의 꽃이다. 적든 많든 연금이야말로 노후 생활의 최소 안전망이다. 충분하면 좋겠지만 연금 구조상 도리가 없다.

안타깝게도 앞으로는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인구 변화로 세대 부조가 약화되며 급속한 연금 고갈은 진즉 예고됐다. 그런데도 개혁 의지는 없다. 더 내고 덜 받는 수뿐인데 정치권은 책임지지 못할 터무니없는 미봉책만 반복한다.

◆“스스로 노후 자금 2000만 엔 마련해야”

일본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훌쩍 뛰어넘었다. 2018년 초고령 인구가 28%를 넘기며 지구상 가장 늙은 사회로 기록됐다.
당연히 연금은 첨예한 관심사다. 관련 논제가 나올 때마다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노인과 청년의 대결은 일상적이다. 고령층은 연금 감액에 신경질적인데 젊은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기름을 부은 것은 이른바 ‘노후 자금 2000만 엔(약 2억2000만원) 보고서’다. 금융심의회가 연금 백년 안심 문제 차원에서 내놓은 2000만 엔 노후 축적의 필요 문건이 그렇다. 파문이 거세지자 정식 보고서로 채택되지 않는 이례적인 결과까지 낳았다. 부총리가 “정부의 정책과 전혀 다르다”고 밝히자 철회 압력까지 일었다. 숨기며 논의를 미뤄 온 연금 문제가 쟁점화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2000만 엔은 단순히 도출된다. 후생성에 따르면 퇴직한 남편과 가정주부 부인(모델 연금)의 월 연금 수령액은 20만9000엔(약 230만원)이다(2017년, 만액 조건 충족 전제). 반면 소비지출은 월 26만4000엔(약 290만원)이다. 차액은 월 5만5000엔(60만원)이다. 연금 소득밖에 없다면 다른 수단을 통해 부족분을 채울 수밖에 없다. 대개는 저축 인출이다. 보고서에선 적자로 표현된다.


문제는 노후 기간이다. 60세 시점에서 둘 중 한 명은 90세 이후까지 생존한다. 4명 중 1명은 95세를 넘기고 10명 중 1명은 100세까지 닿는다. ‘백세 인생’인 셈이다. 즉 연금 수령기인 65세부터 30년을 산다면 그때까지 총 2000만 엔이 필요하다(5만5000엔×12개월×30년=1980만 엔). 야당은 이를 “스스로 2000만 엔을 준비하라니 화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인 반면 총리는 “적자란 말은 오해이고 불안감을 주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정리했다.

2000만 엔을 인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필수 지출에 불과한 용처만 해당돼서다. 백세 인생은 그 돈으론 어림없는 지출 상황이 발생한다. 의료나 간병과 관련한 지출이 발생했을 때다. 노인 복지가 축소되는 와중에 개별적인 준비에 대한 압박은 거세진다.

반면 이를 모아둘 환경은 갈수록 악화된다. 대표적인 게 퇴직금이다. 취로조건종합조사에 따르면 대졸의 퇴직금은 1997년 3203만 엔(3억5207만원)에서 2017년 1997만 엔(약 2억1951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정규직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그마저 기대난이다.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40%인 상황으로 퇴직금이 없거나 있어도 미미하다. 그러니 자산 축적 동기가 커질 수밖에 없다. 주식이나 펀드는 물론 고위험 자산인 외환투자(FX) 등에 고령 인구의 위험 선호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실제 증권사의 최대 고객은 고령 인구다. 주식·펀드의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70대 이상이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에 따르면 전체의 40%(110조 엔)를 보유하며 고령 투자를 견인한다.

◆비정규직은 연금 줄고 퇴직금 적어 더욱 곤란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 또 하나 가세한다. 연금 개혁이다. 공식적으로는 ‘연금 수준의 향후 조정’이지만 실제로는 매년 감액을 의미한다. 그러니 연금 이외의 대안 자산 축적이 필요하다는 보고서의 취지와 들어맞는다. 백년 안심을 위한 구조적 방안 확보의 정부안이 연금 개혁인 셈이다. 인구 감소에 맞춰 연금 감액을 실시해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방침 선회는 뚜렷하다. 급부 중시에서 부담 중시로의 전환이다. 급부 증시는 과거엔 연금액을 정해 두고 필요한 보험료를 정했다. 약점은 연금액을 올릴수록 보험료도 높아져 후속 세대의 반발·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2004년 법률 대개정부터는 먼저 보험료 부담 수준을 확인한 후 해당 범위에서 연금을 주는 식으로 바뀌었다. 보험료·국고부담·적립금 등 모은 돈을 토대로 지급하면 안정성이 높아진다. 정부가 주장하는 백년 안심의 주요 근거다.

다만 백년 안심은 연금 제도일 뿐 수령 금액은 아니다. 연금액은 백년 안심과 무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급자인 고령 인구가 화내는 이유다. 현역 임금의 50%(소득대체율) 이상의 유지 여부는 5년마다 정기 검증 후 결정된다. 지금이 5년 차다. 직전이었다면 벌써 발표했을 것을 2019년엔 뒤늦은 8월 말에 겨우 나왔다. 고려 사항이 많았다는 의미다.

결과는 벗어나지 않았다. 연금 감액이다. 요약하면 30년 후 후생연금(2층) 20%, 국민연금(1층) 30%의 감액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순조로운 경제성장과 여성 근로, 고령 근로가 늘어날 것을 상정, 추정했다.

모델 연금은 2047년 24만 엔(인플레 반영)에 그쳐 소득대체율이 51%로 떨어진다. 지금의 62%보다 20%나 줄어드는 결과다. 부부가 국민연금만 받으면 수급액은 13만 엔(약 143만원)에서 12만4000엔(약 136만원)으로 금액까지 축소된다. 소득대체율은 36%에서 26%로 30%나 추락한다. 그나마 40년 만액 조건일 때의 연금액이다.

연금 감액은 현행 수급자부터 적용된다. 65세가 된 은퇴 남편과 주부 부인이 받는 모델 연금은 2019년 현재 22만 엔(약 242만원)대지만 이들이 90세가 되는 2044년엔 19만1000엔(약 210만원)으로 줄어든다.

즉 소득대체율은 62%에서 42%로 떨어진다. 현행 물가수준이 계속된다는 전제하에서다. 국민연금만 받으면 지금의 13만 엔(약 143만원)대에서 90세엔 10만 엔(약 110만원)까지 감소한다. 부자 노인이야 큰 상관이 없지만 대부분에겐 상당한 소득 감소를 뜻한다. 고령 세대 중 연금 소득만으로 살아가는 비율이 절반을 웃돈다. 저연금자에겐 치명적이다. 비정규·파트직은 늘어나고 홀몸노인까지 증가세여서 연금 의존적인 노후 생활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연금·저소득 노후 생활자를 위해 새로운 급부금을 만들 계획이다. 2019년 10월부터 전년 수입(연금 포함)이 78만 엔(약 858만원) 이하일 때 월 최대 5000엔(약 5만5000원)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이다. 78만 엔은 국민연금 만액 금액대로 세대 전원이 주민세 비과세인 약 970만 명이 해당된다. 재원은 10월부터 시작될 소비 증세분이 활용된다.

단 보험료 납부 기간에 비례해 금액이 정해진다. 미납 기간이 길면 금액이 줄어든다. 현역 세대를 위한 대책도 나왔다. 후생연금 미가입자의 가입 기준을 조정하는 조치다. 국민연금은 자영업 등 정년 제도가 없는 만큼 기업 부담도 없어 후생연금보다 연금액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가입자의 40%는 파트직 등 회사에 다닌다. 퇴직금이 없는데 연금마저 적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 규모나 월급 등 가입 조건의 하향화로 후생연금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중소·영세기업의 비용 부담은 정부 지원이 예상된다.

결국 일본의 연금 개혁은 ‘저부담·중복지→중부담·중복지(저부담·저복지)’를 향한다. 재정 검증에 따르면 연금 감액은 충분히 예고됐다. 실제 사회보장 급부는 2016년 117조 엔(약 1287조원)까지 치솟았다. 소비세율 인상도 사회보장비를 벌충하기 위해서다. 방향은 정해졌다. 세금은 올리고 복지는 줄이는 쪽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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