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신당’, 미풍 그칠까 돌풍 일으킬까...고민 깊어지는 황교안

[지금 정치판에선]
-친박 내부 “보수 분열은 총선 필패” 인식 강하고 구심력 없어 현재로선 회의적 시각 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자유한국당이 잊힐 듯하던 ‘친박(친박근혜) 신당’으로 다시 한 번 한바탕 소용돌이쳤다. 이번에도 홍문종 의원이 들쑤셔 놓았다. 태극기 세력을 주축으로 한 신당을 공개 언급하면서다.

홍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교안 대표가 보수 우익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할지 의심된다”며 “태극기 세력을 중심으로 큰 텐트를 쳐야 한다. 태극기 신당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월 8일 광화문 집회에서 “한국당의 기천 명 평당원들이 여러분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탈당 선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6월 17일엔 핵심 친박계인 조원진 의원이 이끄는 대한애국당의 공동대표로 추인됐다. 그는 “모든 태극기를 아우르는 신공화당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며 “중앙당을 만들고 9월부터 본격적으로 지역에서 (창당 작업이)시작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박 신당설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정치권을 달군 바 있다. 당시 홍 의원은 “지금 당 밖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뭘 잘못했느냐, 돈을 먹었느냐, 뭘 했느냐. 최순실 등 문제로 억울한 면이 많고 실질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대통령 탄핵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하는 분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복당파(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가 다시 한국당에 온 의원들) 등 탄핵에 관해 여러 가지 행태를 보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친박 신당은 여당에 좋은 일 시켜…지금은 힘 합칠 때”

2월 초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유영하 변호사가 황교안 대표를 향해 비판적 발언을 쏟아낸 것도 ‘친박 신당설’에 무게를 실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허리 통증 때문에 교도소에 의자와 책상을 넣어줄 것을 요청했는데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조치를 안 해줬다”고 말해 논란을 낳은 바 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황 전 총리(당시는 한국당 대표 경선 전)의 면회 요청을 거절한 이유를 말씀했고 그 내용을 밝히지 않겠지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박 신당설’은 2월 말 황교안 대표가 취임한 뒤 장외 강경 투쟁 속에 묻혀 쑥 들어갔다. 그러다가 최근 내년 총선 공천 룰 논의 과정에서 친박을 겨냥한 ‘탄핵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공천 룰을 논의하는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신상진 의원이 논란을 촉발했다. 그는 6월 6일 “현역 의원들이 (탄핵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물갈이 폭이 크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박계 일부는 친박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공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홍 의원은 “신 의원(의 발언)은 아마 황 대표의 심중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는데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집주인 보고 나가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정치적으로 친박 신당의 출범 신호”라며 "20석 이상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심은 친박 신당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현실화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 여부가 주목된다. 사면이 돼 박 전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한다면 파급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올해 초 ‘연말 사면설’이 흘러나왔다. “여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을 분열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을 사면시키는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은 “정치공학적인 설에 불과하다”고 부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KBS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에 대해 “재판이 확정되기 이전에 사면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거듭 “어쨌든 재판 확정 이전에 사면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선거 전략가로 통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한다는 것은 촛불 민심에 역행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우리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대법원 판결 이후 ‘통합’을 명분으로 한 사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친박계 내에선 실제 신당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강성 친박으로 꼽히는 김진태 의원조차 “홍문종 선배가 탈당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신중히 생각해 주길 바란다”며 “태극기 세력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과 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탈당설이 나돌던 정태옥 한국당 의원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 “한국당 분열 위해 박 전 대통령 사면할 것”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신당이 성공하려면 구심력·결집력을 이끌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은 홍 의원 ‘단독 플레이’에 가까운 상황이다.

경북에 지역구를 둔 한 중진 의원은 “신당이 성과를 거두려면 대구·경북(TK) 지역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이거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수십 명의 의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주도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또 홍 의원을 겨냥, “신당 얘기를 하는 의원은 공천을 확실히 보장받기 위한 자신의 정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친박 중진 의원은 “지금은 문재인 정권에 맞서 분열이 아닌 보수 통합을 이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게 우선적인 과제”라며 “박 전 대통령이 설령 사면받는다고 하더라도 보수 분열 쪽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구속 중인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도 면회를 온 의원들에게 신당 창당설에 대해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친박 신당이 만들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친박·비박을 떠나 문재인 정부에 맞서 힘을 합쳐야 할 때라는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신당 창당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다.

유영하 변호사는 “일부 친박 의원들이 신당 창당 의사를 전해 온 것을 전달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친박 신당은 미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게 한국당 의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다만 총선 공천이 어떻게 진행되느냐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홍 의원 이외에 탈당 움직임이 없지만 친박계를 겨냥해 대거 물갈이가 이뤄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역대 총선 때마다 공천 물갈이는 선거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계파별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한국당만 하더라도 2008년 18대 총선 때 ‘친박계 학살’, 2016년 20대 총선 때 ‘친이계 학살’로 당이 두 동강 나다시피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도 여야에선 벌써부터 ‘대폭 물갈이’ 얘기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신인에게 전례 없는 큰 폭의 가산점을 약속하면서 물갈이 공천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공천 물갈이 수준은 곧 개혁 수준으로 여겨지고 득표로 연결된다. 한국당도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신상진 위원장이 ‘대폭 물갈이’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친박 중진 의원들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황교안 대표로선 고민이다. 그러면 공천에서 배제된 친박 의원들이 친박 신당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2008년 총선에서 친박계가 친이계에 의해 공천 학살을 당하자 집단 탈당해 ‘친박연대’를 만들어 회생한 바 있다.

문제는 보수 분열은 선거 필패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경남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서 입증됐다. 친박 성향의 대한애국당이 838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한국당은 504표 차이로 민주당에 패배했다.

황 대표는 공천 물갈이라는 필연적 과제를 외면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보수 분열도 막아야 한다. 황 대표가 대선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에 해결해야 할 난제다. 그의 리더십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9호(2019.06.17 ~ 2019.06.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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