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주도 성장 정책,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머니 인사이트]
-성장성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친 임금 인상은 한국 경제의 덫



[한경비즈니스 칼럼=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지금까지는 ‘성장하면 분배는 개선된다’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주류 시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는 ‘분배하면 성장이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놓아 두면 분배는 왜곡되고 성장이 멈추게 돼 경제는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해 재정정책을 쓰든 돈을 풀든 거시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는 출발점이 다르다. 소득을 올림으로써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경제를 구출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임금 인상으로 총수요가 늘어나야 단기적인 경기 회복도 가능하고 경제의 장기 성장도 가능하다는 견해다. 한마디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수요 주도 성장 모델이다.

◆최저임금 인상, 청년 실업의 원인일 수도

하지만 임금이 올라간 만큼 수요가 늘어나고 있을까. 더 기다리면 긍정적 변화가 뒤따를까. 우리는 이미 답을 확인했다. 임금은 올랐지만 수요는 늘지 않고 일자리도 제자리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사회에서는 5월 13일 2019년 한국과의 연례 협의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을 노동생산성과 연동하고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전성을 강화하고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2018년 2월 IMF가 연례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최저임금 추가 인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얘기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주장이다. 일상 언어로 바꿔 말하면 “성장하지도 못하면서 임금을 그리 인상하면 큰일 나는 만큼 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라”는 말이다.

사회 여기저기에서 삐걱대는 현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버스 파업 투쟁도 결국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임시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 성장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나친 임금 인상은 한국 경제의 덫이 되고 있다.

5월 15일 발표된 실업률도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표현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었다. 2019년 4월 실업률은 4.4%, 계절 조정을 고려한 수치는 4.1%였다. 계절 조정 수치로 본다면 4.1%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9년 1월 4.4% 이후 가장 높다.



연령별로도 40세 이상의 실업률은 횡보했지만 15세에서 39세까지의 실업률이 급등하는 추세다. 특히 15세에서 29세의 청년 실업률은 11.5%까지 치솟았다. 흥미로운 것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숫자가 2018년 11월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청년 실업률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구간과 일치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 청년 실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단순한 수식으로 현 상황을 정리해 보자. 경제성장률은 민간 소비와 정부 지출, 민간투자, 순수출의 함수로 표현된다. 사회 교과서에도 나오는 ‘Y=C(민간 소비)+I(민간투자)+G(정부 지출)+NX{순수출=X(수출)-M(수입)}’라는 공식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C의 증가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겉으로만 판단하면 민간 소비의 증가는 곧 Y의 증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모든 정책을 여기에 집중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공공 부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나아가 부동산 가격 하락 정책을 통해 거주비용을 하락시키는 작업이 모두 민간 소비를 늘리기 위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민간 소비의 증가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정책 과정에서 민간투자나 수출의 감소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민간의 소비가 확대돼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에서 주장하는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메커니즘은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증가해 기업 매출이 증가하고 기업이 투자를 높이면서 고용을 늘린다는 과정을 품고 있다.

하지만 임금을 정부 주도로 인상하는 과정에서 투자를 늘려야 하는 기업이 타격을 받고 주52시간 근무제 역시 민간 기업에 타격을 주는 정책이다. 소득 주도 성장에 숨어 있는 오류는 민간 기업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민간의 소득을 올리려는 오만함이다.

민간 기업의 경기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 정상적 과정이다. 민간 기업의 경기는 상관없이 무조건 임금을 인상하는 정책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IMF가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생산성에 맞는 임금 인상’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부분에서 설명할 수 있다.

◆부동산·주식 등 서민 자산 증대 방안도 ‘깜깜’

소비 확대 요인으로 자산 가격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았으면 이에 비례해 서민의 자산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부동산과 주식을 제외하면 서민이 접근할 수 있는 자산 증대 방안은 별로 없다.

크게 양보해 비트코인 정도인데, 결과적으로 부동산과 블록체인 가격 상승을 정부가 제한한 가운데 주가 부양 정책도 실패했다.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최저임금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의 생산성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경제는 하락한다.

기업의 수익이 없다면 민간투자는 감소하고 추가적인 고용이 없다면 민간의 수요 확대도 제한적이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소득 구간이라고 가정할 때 결국 소비 여력으로서의 소득은 실업률과 임금의 함수가 된다. 임금(P)과 고용인구(Q)의 곱이 가장 간단한 소비 여력이 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실업률의 상승이 문제가 된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 가장 크게 부각된 단어는 고용 상황판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청와대의 고용 상황판이 어떻게 돼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한계기업이 꽤나 많고 이러한 한계기업의 대부분은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중소기업이다. 추가적으로 중견·대기업의 부담마저 늘어나면 투자를 제한하는 쪽으로 비용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대비 감소한 노동시간은 생산성의 하락으로 연결된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가 더욱 크게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성장에 대한 희망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나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통한 대출·투자 확대 혹은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순환의 속도 확대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대담이나 중소기업인과의 대화 등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1980년 이후 2003년 한 차례를 제외한(두 차례 금융 위기 제외, 이 당시는 2002년 7.8% 성장에 의한 기고효과) 처음으로 보는 수치인 1.8%라는 성장률을 어떻게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급등하는 환율이 단순히 미·중 무역 분쟁을 반영한 결과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물론 정부에서 하고자 하는 정책적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념이 옳고 필요한 정책이라고 해서 그 정책의 실천 과정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빈부 격차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이 꼭 소득 주도 성장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1994년에 발간된 ‘노동의 종말’ 1판 서문에서 제레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신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여가를 증대시키는 생활을 가져올 것인지 또는 대량 실업과 전 세계적 불황을 가져올 것인지의 여부는 결국 각국의 생산성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여전히 재정으로 실업자를 구제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여 실업자의 취업 기회를 늘리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공공 부문이다. 생산성 향상이 더딘 공공 부문의 임금이 민간 부문과 같은 속도로 높아진다면 이는 재정지출의 급속한 증대를 의미할 뿐이다.

공공이 아닌 민간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 아니라 규제 완화와 자본 조달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을 확대하면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 부문 고용 확대로 이뤄진 소득 주도 성장론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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