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 '혁신 성장 기반' vs '기업 활동 위축'

[이코노폴리틱스]
-文 공약, 개정안 이견 팽팽…여권, 6월 국회서 처리 추진하지만 한국당 반대로 어려울 듯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공정거래법 개정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과 함께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을 이루는 공정 경제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마련, 국회 통과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개정안에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 일감 몰아주기(사익 편취) 규제 대상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11월 27일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올해 3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정무위는 법안소위에서 민주당 소속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발의해 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병합해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민병두 의원의 대기업 규제안은 정부안보다 훨씬 강력하다. 정부안과 병합 심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부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당은 당초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지정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에 집중하기 위해 막판에 두 개정안을 뺐다.

◆ “시장의 기 살리면서 규제 개혁 병행해야 혁신 성장 가능”

정부와 여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야당 지도부를 찾아 법안 처리에 협조를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5월 23일 법안 처리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오신환 원내대표를 예방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혁신 성장 생태계 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처럼 ‘기업 옥죄기’ 내용만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또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 기반 구축 방법과 함께 경쟁법의 글로벌 집행 기준을 정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이 개정안 내용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임시국회가 열릴지도 미지수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패스트 트랙 지정에 반발해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당의 국회 복귀가 언제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선거법·공수처법의 패스트 트랙 지정에 대한 여당의 사과와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욱이 바른미래당도 개정안 일부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의 예방을 받은 오 원내대표는 “전속고발권 폐지가 너무 광범위하게 이뤄지면 일부 중소기업이나 소기업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일감 몰아주기 등은 당연히 근절해야 하지만 규제 개혁, 공정 개혁이라는 틀 속에서 시장을 압박하고 억압하기보다 시장의 기를 살려주면서도 규제 개혁을 병행해야 혁신 성장이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에 담긴 내용은 하나같이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들이다. 핵심 내용은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이다.

전속고발권 제도는 공정위의 고발이 있을 때에만 검찰이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포착했더라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기소 자체를 할 수 없다. 고발권을 남용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1980년 도입됐다.

하지만 이번 정부 개정안에는 가격·입찰 담합, 공급 제한, 시장 분할 등 중대 사안(경성 담합)에 대해선 공정위 고발이 없어도 검찰의 독자 수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공동 연구·개발, 단순 정보 교환과 같은 약한 수준의 담합(연성 담합)은 전속고발권이 유지된다. 공정위 조사만 받아도 과징금 상한이 지금보다 2배 올라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검찰은 줄곧 “제대로 된 기업 내부 비리 조사를 위해선 전속고발권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시민단체와 소액주주 등도 고발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기업은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 부담까지 안게 된다. 경영계는 “시민단체와 소액주주 등의 고발이 남발될 수 있다”며 “기업인들이 수시로 검찰에 불려나가는 일이 잦으면서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공정위와 법무부는 일반적인 신고 사건은 공정위가 우선 조사하고 국민 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큰 신고는 검찰이 우선 수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고 공정위와 검찰이 서로 조사하겠다고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기업인은 양쪽 기관에 수시로 불려 다닐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변호사 선임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들이 가장 피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가 자진 신고자에 준 감면 혜택(리니언시 제도)을 사후에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기업들은 ‘개악(改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금은 공정위가 감면 혜택을 주면 취소할 수 없다.

◆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땐 대상 기업 두 배로 늘어

개정안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회사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에서 상장·비상장 모두 20%로 일원화했다. 이렇게 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현재 203개에서 441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개정안을 적용하면 규제 대상 기업이 삼성그룹은 삼성물산 1개에서 삼성생명 등 11개, 현대차그룹은 4개에서 이노션 등 5개, SK그룹은 2개에서 SK실트론 등 9개가 각각 추가된다. 또 규제 대상 회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새로 규제 대상에 들어간다.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214개 자회사도 규제를 받게 된다. 민주당 개정안은 이에 더해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해외 계열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들 기업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려면 기준을 넘는 총수 일가, 기업의 지분을 팔아야 한다. 경영계는 총수 지분을 낮추면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불안해한다. 짧은 시간에 계열사 내부 거래를 줄이거나 외부 거래를 늘려야 하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도 경영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도 기업엔 큰 부담이다. 현재는 공익법인 의결권에 제한이 없지만 개정안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임원 선임·해임 등 일부 조항에 한해 특수관계인 지분과 합해 15% 한도에서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개정안에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기존 40%에서 50%(상장사 기존 20%에서 30%)로 올리는 내용도 기업엔 큰 부담이다. 지주회사들의 기업 인수나 지배구조 개편 때 재무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관련한 입법 절차를 6월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 집단의 급식·물류·시스템통합(SI)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사전 지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법 개정 이전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나서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한국당의 반대로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당이 가장 문제 삼는 대목은 경성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다. 국회 정무위 한국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은 “검찰이 기업의 거래를 독자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며 “공정위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주창자로서 규칙을 제시할 뿐 규제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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