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르네상스, 인공지능 ‘디지털 장인’이 이끈다

[테크놀로지]
첨단 기술의 전쟁터 된 제조 현장…강화학습으로 공장 물류 효율화하고 불량 검수도

[한경비즈니스=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직후 정권을 넘겨받은 미국 민주당과 오바마 행정부는 모든 산업정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짜기 시작했다. 당시 새로운 정책 기획의 핵심은 비대해진 금융 경제의 개편과 제조업의 부활로 요약할 수 있다. 제조 전략의 새판 짜기 기획은 2012년 ‘제조 르네상스’란 전략 로드맵으로 탄생했다.

제조 르네상스 전략 이전 미국 기업과 산업의 전략은 연구·개발(R&D)은 미국 본토에서, 생산은 해외에서로 표현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인 R&D의 영역과 해외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제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제조 르네상스 전략 기획에 참여한 리 피사노 하버드대 교수는 이러한 전략의 허상을 역설했다. 제조 현장과 R&D를 칼로 무 썰듯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제조 현장이나 개발을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제조 현장은 다양한 기술의 테스트 베드
특히 제조 현장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R&D의 욕구가 강해지고 결국 제조를 담당한 국가들이 R&D의 영역으로 자연히 진입되는 현상은 이미 과거 일본·한국·중국이 경험했고 경험하는 현실이다.

제조 르네상스는 제조를 미국 내 본토로 되돌려 일자리 창출의 핵심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조 테크놀로지다.

제품이 생산되는 공장에는 다양한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새롭게 개발되는 기술은 일반 B2C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 B2B 영역인 제조 현장에 먼저 활용된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과 디지털 혁신 기술들이 속속 제조 현장에 적용돼 공장은 첨단 기술의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

제조 현장에는 다양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자동화는 이제 선진 제조의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빅데이터·디지털·로보틱스·친환경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 검증할 수 있는 일종의 테스트 베드다.

제조 르네상스에서는 미국의 첨단 ICT를 활용해 제조 솔루션을 개발, 제조를 위한 제조 산업 혹은 ICT 제조 산업을 창조 견인하는 전략이 포함돼 있다. 최근 경영전략에서 이슈가 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점에서 제조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알아보자.

증강현실(AR) 시스템이나 3차원의 홀로그래픽 이미지를 보여주는 혼합현실(MR) 기술은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뿐만 아니라 제조 현장에 핵심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글로벌 조선사는 선박 건조 작업을 할 때 작업자가 MR 장비를 통해 3차원 설계 정보를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과제를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2차원 도면 정보를 현장에서 하나하나 뒤져가며 실제 작업이 설계대로 진행됐는지 파악했지만 3차원 구조물을 수많은 2차원 도면으로 일일이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또한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스마트폰으로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본사나 연구소 엔지니어들과 일일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5G 통신 기술과 MR 기술을 활용한 시스템을 활용해 작업자가 현장에서 진행하는 작업의 실시간 영상을 외부 엔지니어와 공유하며 현장의 이슈를 명확히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엔지니어가 현장 작업자에게 작업을 지시하거나 설명할 때 3차원 홀로그래픽 이미지를 현장 작업자에게 전송해 조립이나 가공 순서 등 구두로 표현하기 힘든 정보도 공유할 수 있어 효과적인 공동 작업이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은 가상현실(VR)·MR·5G 등의 ICT가 제조에 응용돼 제조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AI) 기술도 산업 현장에 속속 활용되고 있다. 카이스트는 국내 글로벌 반도체 자동화 업체와 공동으로 AI 기반의 물류 시스템 자동화 장비 개발을 진행 중이다. 반도체 공장 내 물류 이동은 자동으로 주행하는 작은 로봇이 한 장비에서 다른 장비로 물류를 반송한다. 일종의 택시와 같은 개념으로, 작업을 마친 가공품은 자동 반송 로봇을 호출하고 호출된 자동 반송 로봇은 이 가공품을 싣고 다음 가공을 위한 장비로 이동한다.

최근 반도체 공장의 대형화로 이러한 최신 반도체 공장은 1000대 이상의 자동 반송 로봇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수천 대 이상의 자동 반송 로봇들이 물류를 반송하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일종의 교통 정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로봇이 고장 나면 사람이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크다. 카이스트는 구글의 딥마인드가 알파고 개발에 사용한 AI 기법 중 하나인 강화 학습이란 방식을 사용해 지능형 반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강화 학습은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모사한 AI 방식으로 사전 지식이 없거나 논리적으로 구성하기 힘든 지식을 습득해야 할 때 행동하면서 지식을 익혀야 하는 상황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 이리저리 핸들을 돌려보고 페달을 밟는 등 실제 행동을 하며 그 방식을 익히는 것과 유사하다. 즉 사전에 정해진 룰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행동을 통해 룰 자체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자동 반송 로봇도 어떤 경로로 가야 혼잡을 피해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학습을 통해 습득하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이러한 학습을 실제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진행하지만 가상의 시뮬레이션 상황에서도 학습을 진행해 학습 속도를 높이는 디지털 트윈 기술도 활용하고 있다. 즉 실제 상황에서 학습을 하면 수십 시간이 걸릴 것을 가상의 환경에서 수초 내로 학습해 지능을 높이는 기술이다. 카이스트는 AI 기술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기존 자동 반송 로봇보다 반송 효율을 2배 이상 높인 시스템을 개발했고 사업화를 진행 중이다.

‘산업 인공지능’으로 제조 산업 혁신
AI 기술을 산업 현장에 활용해 기존 산업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산업 AI’라고 한다. 특히 제조 산업에서 산업 AI를 활용하는 것은 제조 산업을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진행하던 불량 검수는 이제 AI의 이미지 인식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화되고 있다.

장비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유지·보수를 판단하는 영역도 산업 AI 기술로 혁신되고 있다. 또한 앞에 카이스트 사례와 같이 공장 내 운영 스케줄링이나 운영을 기존 정해진 룰이 아닌 스스로 학습하고 파악해 더 나은 룰이나 방침을 만드는 자율 운영 분야도 활발히 개척되는 영역이다.

국내 글로벌 타이어 제조 기업은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한 불량 검수를 AI 기술을 활용해 자동화 시스템과 알고리즘 개발을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사람이 감각으로 장비의 상태를 파악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수많은 센서에서 장비의 상태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비 유지·보수를 결정하는 시스템 개발도 진행 중이다. 기존 경험 많은 장인의 감각으로 장비의 노후나 이상 여부를 판단 한 것을 고도화된 센서 기술, 데이터 처리 기술, AI 기술을 통해 불량을 예지보전하는 기술들이 융합돼 ‘디지털 장인’을 개발하는 것이다.

공화당 트럼프 정부가 집권하며 과거 오바마 정부 당시 추진되던 대부분의 전력이 폐기 수정됐지만 제조 르네상스 전략만은 계승했다. 독일 정부도 인더스트리 4.0 전략으로 지멘스·SAP와 같은 IT 기업의 제조 솔루션을 적극 세일즈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5호(2019.05.20 ~ 2019.05.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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