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방’ 10분에 1억8000만원어치 팔아…신세계·아모레도 손짓한 스타트업

그립, 언택트 열풍 타고 라이브 커머스로 연 거래액 240억원 돌파
대기업·연예인 셀러 몰려 새로운 판매 채널 부상

[커버스토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누구나 실시간 방송(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뜨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는 쌍방향 소통을 무기로 온택트(온라인 소통) 시대의 쇼핑 대세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라이브 커머스 시장 규모는 현재 약 3조원대로 추정되며 2023년에는 8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페이스북의 ‘페이스북 샵스’와 유튜브의 ‘쇼핑 익스텐션’ 등 글로벌 업체들도 동영상 콘텐츠와 쇼핑 기능을 연결하며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고성장하고 있다. 서비스 출시 2년 만에 연간 거래액 240억원을 돌파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립(Grip)’이 대표적이다.

그립은 ‘누구나 팔 수 있다(Everyone can sell)’는 비전 아래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가 2019년 2월 론칭한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이다. 김 대표는 네이버에서 1020세대를 겨냥한 ‘스노우’와 ‘잼라이브’ 등 사진·영상 서비스 마케팅을 총괄하다가 2018년 8월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정보기술(IT) 기업 출신 동료들과 함께 그립컴퍼니를 설립했다.

김 대표가 잘나가는 마케터에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이유는 글로벌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타깃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마케팅을 수년간 업으로 삼으면서 동영상 시청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날로 팽창하는 라이브 커머스 시장의 성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회사 설립 당시 한국에는 라이브 커머스 전문 서비스 플랫폼도 전무했다. 김 대표는 누구나 편하게 영상 통화하듯 라이브 커머스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리얼리티가 있는 라이브 콘텐츠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고 한국 1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인 그립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 /그립컴퍼니 제공

신세계·아모레도 뛰어든 라이브 커머스 대표 주자
코로나19의 여파로 언택트(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그립의 성장 지표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비스 출시 2년 만인 2020년 12월 누적 거래액 240억원을 돌파했다. 2020년 3월부터 거래액이 늘어나기 시작해 월별 거래액도 2019년보다 26배 급증했다. 그립은 올해 1월 기준 월간 거래액이 50억원을 넘어섰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판로가 막힌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라이브 방송을 위해 그립에 앞다퉈 들어오며 거래액이 급증한 것이다. 그립컴퍼니는 2020년 8월 8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마무리해 총 120억원의 누적 투자 금액을 기록했다.

투자를 주도한 정화목 한국투자파트너스 수석은 “모바일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되는 가운데 유례없는 환경 변화와 맞물려 그립의 성장세가 가파르다”며 “매우 낮은 수준의 교환·반품률과 일반적인 커머스 플랫폼 평균 대비 높은 구매 전환율 등의 특별한 지표를 통해 그립 구성원이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유의미한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판매가 어려워지면서 라이브 커머스는 새로운 판매 창구로 부상했다. 백화점·아울렛·대형마트 등 유통업계 대형 플레이어들도 그립에 대거 입점하면서 누적 입점 업체가 1만 개가 넘는다. 롯데하이마트·쓱닷컴(신세계)·랄라블라·AK·아모레퍼시픽 등도 그립의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인 ‘그립 클라우드’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립이 개발한 오픈 API를 기업 자체 앱에 연결만 하면 자사 앱으로 실시간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할 수 있다.

올해 1월 처음 진행한 ‘타임딜’에서는 단 10분간만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수많은 고객이 몰리면서 10분 만에 약 1억8000만원어치가 팔리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나 방송할 수 있어 그립에서는 일평균 400개 이상의 라이브 방송이 이뤄지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 시청 시간도 1년 전보다 8.5배 늘고 시청 횟수도 약 29배 상승했다.




생생한 온택트 쇼핑, MZ세대 사로잡다
그립은 스마트폰을 통해 판매자(셀러)의 얼굴을 직접 보고 상품과 배송 등에 대한 즉각적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 판매자에 대한 높은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 오프라인 매장에서 쇼핑할 때처럼 가격 흥정과 즉석 쿠폰을 통해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립이 짧은 기간 내 고성장한 비결은 무엇보다 판매를 위한 허들이나 진행상의 어려움이 없고 사용법이 손쉽다는 점이다.

그립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문 장비나 영상 편집 기술을 알 필요도 없다. 그립 관계자는 “그립은 좋은 카메라와 방송용 대본 등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전문 장비 없이 스마트폰으로 쉽고 편하게 진행하는 판매 방송을 지향한다”며 “‘쉬운 플랫폼’이 라이브 커머스의 본질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립의 라이브 커머스는 상품에 대한 질문과 답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아기자기함과 재미를 추구한다. 신흥 소비 계층인 MZ세대를 위해 차별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그립의 성장 비결로 꼽힌다. 라이브 방송 중에 할 수 있는 다양한 게임, 경매·주사위 기능과 선착순·랜덤 판매 기능도 라이브 커머스에 접목했다. 초성·OX 퀴즈를 통해 판매자와 고객의 소통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동네의 작은 가게가 사랑방이 되는 것처럼 자신과 공감대와 환경이 유사한 사용자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친구도 맺고 상품 정보도 나누는 일종의 커뮤니티 기능을 하는 셈이다. 판매자와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매하길 원하는 상품도 직접 신청할 수 있다. 판매자는 구매자가 원하는 상품을 구성하는 등의 고객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이 재구매와 구매 전환율을 높여 그립의 구매 전환율은 일반 이커머스보다 높은 편이다. 라이브 커머스의 구매 전환율이 높은 이유는 실시간 소통이 원활하고 이를 통해 상품 구매를 위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립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구매 전환율 28%를 달성했고 반품률도 1%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 그립에서는 샘 해밍턴, 개그우먼 박미선, 개그맨 유상무, 미스터트롯의 태권보이 나태주 등 유명 셀럽들이 라이브 방송을 직접 진행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그립은 가파른 성장세를 발판 삼아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 1위 라이브 커머스 전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포부다. 김 대표는 “그립은 출시 이후 판매자·구매자·그리퍼(라이브 방송 진행자)가 시너지를 내는 서비스를 견고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며 “올해도 라이브 커머스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볼거리·놀거리·살거리가 많은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