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맞붙은 남중국해…한국은 ‘진퇴양난’

‘누구 편이냐’선택의 기로, 미국은 TPP 중국은 EEZ 카드로 압박


남중국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남사군도에 인공 섬을 건설하고 최근엔 산호초 두 곳에 50m 높이의 등대를 세워 가동에 들어갔다. 센카쿠열도 분쟁으로 동중국해가 막히자 남중국해 진출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자 베트남·필리핀 등 주변국이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은 지난 10월 27일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사군도 수비환초의 12해리(약 22km) 안으로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을 진입시켰다.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할 수 없고 태평양에서 중국의 확장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남사군도가 지구상 가장 뜨거운 분쟁 지역으로 떠올랐다.
남중국해는 이미 중국·베트남 등 6개국이 영토 분쟁을 벌여 온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갈등 지역이다. 이제는 중국의 ‘대국굴기’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이 첨예하게 맞부딪치고 있다. 남사군도의 가치는 자원의 보고로서만이 아니다. 세계 교역의 3분의 1, 원유 수송량의 60%가 이 해역을 지날 만큼 경제적·전략적 중요성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G2(미·중)가 남중국해에 대해 한국에 묻고 있다. “너는 누구 편이냐?”

포기할 수 없는 경제적·전략적 요충지
남중국해는 중국 남쪽, 베트남과 필리핀 사이에 펼쳐진 바다다. 해역은 총 350만㎢로 동해의 두 배다. 이곳에는 남사·서사·중사·동사 등 네 개의 군도가 있다. 동사군도와 중사군도는 중국 영토다. 반면 남사군도와 서사군도는 국가 간 영토 분쟁이 첨예한 곳이다.
남사군도는 100여 개의 작은 섬과 산호초·암초들이 73만㎢(한국의 7배 면적) 해역에 펼쳐져 있다. 가장 큰 섬이 0.4㎢이고 수면 위에 올라온 면적을 다 합쳐도 2.1㎢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점령기를 빼곤 한 나라가 독점한 적이 없다. 일본 패전 후 1950년대에 중국·대만·베트남·필리핀 등이 제각기 영유권을 주장했다.
남사군도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1969년 유엔 산하 기구의 탐사 결과 ‘세계 넷째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다. 매장된 원유는 2130억 배럴, 천연가스는 900조 입방피트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1982년 국제해양법이 채택돼 작은 섬도 12해리(약 22km) 영해,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말레이시아·브루나이까지 가세해 분쟁 당사자는 총 6개국으로 늘어났다. 급기야 중국과 베트남은 1974년 서사군도 해전에 이어 1988년 남사군도에서 충돌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전략은 1985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방글라데시·미얀마·파키스탄·스리랑카·태국 등 인도양 주변국에 대규모 항만 시설을 차례로 구축했다. 이에 대해 2004년 미국 펜타곤 보고서는 항구들이 목걸이처럼 죽 늘어서 있다고 해서 ‘진주목걸이 전략’이라고 명명했다. 중국이 안정적 해로 확보를 내걸고 실제론 해군의 거점 확보가 속셈이란 것이다. 이 해로를 활용하려면 남중국해 확보가 필수다. 이때부터 미국도 중국의 해양 패권의 야심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중국 해군의 부상이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미국의 대응은 2010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1세기를 “미국에는 태평양의 세기”라고 규정하면서 가시화됐다. 이듬해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출범시켜 올해 타결했다. TPP는 단순한 무역·투자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 환율·지식재산권·환경·사회문제 등 중국의 아킬레스건까지 포괄하고 있다. 총포 없는 미국의 최첨단 무기이자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할 다목적 카드가 TTP인 셈이다.

남중국해는 한국에도 치명적 급소
중국으로선 동중국해 진출이 미일 동맹에 제동이 걸리면서 남중국해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다. 대국굴기 전략을 해양으로 확장하는 데 필수 거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이 수입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이 이 항로를 거쳐야 한다. 중국은 남사군도의 산호초를 연결해 인공 섬을 건설하고 활주로·건물·등대를 세웠다.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해양 식별 구역으로 삼고 남사·중사·서사군도를 묶은 ‘싼사시’를 출범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 등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군사적 열세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전략’을 내걸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일본·호주와 삼각동맹을 맺고 미얀마를 중국에서 떼어놓았고 필리핀에는 다시 미군을 주둔시켰다. 합동 군사훈련도 벌인다. 중국이 설정한 EEZ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공기와 함정도 투입하고 있다.
서태평양 한쪽의 국지적 영토 분쟁이 이제는 G2 간 해양 패권 다툼으로 판이 커졌다. 러시아도 베트남 캄란항의 우선 사용권을 확보하면서 남중국해 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냉전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남중국해 분쟁은 역사와 민족 감정, 경제와 정치, 군사적 역학 관계 등이 얽힌 복합 방정식이다. 그렇기에 21세기 국제 질서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이런 남중국해를 한국 정부는 먼 바다 일로 여겨 무관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일본이 주도한 TPP의 숨은 의도를 간과한 채 단순히 다자 간 FTA 수준으로 여겨 참여에 시큰둥했다.
남중국해에서 말라카해협·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항로는 한국에도 치명적인 급소다. 일본은 TPP로 12개국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만능 교통카드를 얻은 반면 한국은 나라를 옮길 때마다 교통카드를 새로 사야 할 처지다. 경제적으로도 기회 손실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국제 규범이나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사군도 분쟁에서 한국은 어떤 생각인지 추궁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의 ‘남’자도 꺼내지 않았다(윤병세 외교부 장관)”고 발뺌하는 게 지금 한국 외교의 수준이다.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한국이 ‘평화적 해결’이란 원론적 방침을 견지하는 수준으론 TPP 가입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중국은 이어도 문제를 내포한 남해의 EEZ 획정 카드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Vitamin’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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