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가 아닌 ‘관계’를 팔아요"

독서 모임 등 열어 매일 오는 단골만 200명…로스팅 직접해 원가 절감

대전시 삼성동에 자리한 한 아파트 단지 후문 쪽으로 들어서면 ‘카페허밍’이란 이름의 파스텔 톤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단지 앞 대로변도, 이름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도 아니다. 그렇다고 행인들로 북적이는 목 좋은 상권도 아니지만 이곳의 월 매출은 2000만 원을 거뜬히 넘긴다. 43㎡(13평)의 작은 동네 카페가 벌어들이는 연 매출이 2억4000만 원이다.
점주 조성민(33) 대표는 5년 전만 해도 커피에는 문외한인 만화가 지망생이었다.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조 대표는 결혼 직후 ‘내 일’을 꿈꾸며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던졌다. 당장의 호구지책으로 시작했던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는 오늘날 그를 동네서 유명한 카페 사장님으로 만들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공간이 필요했던 조 대표에게 카페 창업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누구나 알 만한 프랜차이즈 대신 독립 카페를 꿈꾼 것도 이런저런 제약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프랜차이즈는 표준화돼 있잖아요. 작은 잔에 음료를 낼 수도 없고 바리스타로서 ‘라테 아트’를 제대로 할 수도 없죠. 작은 카페는 친밀함이 생명이고 큰 카페는 개인적으로 방해받지 않는 사적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해요. 동네 카페 주인이 과묵하면 망하기 십상이죠.”



초등학교 옆 골라…‘엄마’ 수요 든든
조 대표는 “커피가 아닌 관계를 판다”고 말한다. 카페허밍을 찾는 손님들 중 상당수는 ‘명예의 전당’이나 ‘로열패밀리’에 속한다. 10번 찍으면 버리는 쿠폰이 아니라 아예 ‘쿠폰 북’을 만들어 카페와 손님의 관계를 가족으로 바꿨다. 쿠폰 북에 250잔 이상 도장을 찍은 손님은 명예의 전당에, 1000잔 이상은 로열패밀리로 격상해 상패까지 수여한다. 현재 쿠폰 북에 등록된 사람만 2000명이고 매일 오는 단골손님들은 200명 정도다. 단골 20%만 확실히 지키자는 전략이다.
매주 토·일요일 아침 7시에 여는 ‘독서 모임’은 관계 마케팅의 하이라이트다. 한 달에 한 번은 재능 기부를 통해 저자 초청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은 카페가 아니라 ‘동네의 명소’가 됐다.
조 대표는 망한 빵집 터를 잡아 운 좋게 권리금을 피했다. 망해 가던 터가 황금 알로 변신한 것에 대해 조 대표는 특유의 입지론을 강조했다. 노점상과 노란 버스, 빵집이 핵심이다. 동네 상권에 노점이 조성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풍부하다는 방증이다. 노란 버스는 학교·어린이집·유치원 버스를 말한다. 카페허밍 앞엔 매일 5대의 노란 버스가 선다. 초등학교 바로 옆이라 ‘엄마’ 수요가 든든하다. 마지막은 빵집. 어떤 동네든 돈 내고 빵 사 먹을 돈이 있으면 커피도 사 마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귀띔한 노하우는 ‘직접 로스팅’하기다. 볶은 원두 1kg이 2만5000원 수준인데 비해 로스팅하지 않은 원두는 1만~1만5000원 정도다. 여기에 가게 특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 20곳 일일이 방문
‘라떼킹 북한산점’ 점주인 고영준 대표는 올해 32세의 총각 사장님이다. 카페 문을 열고 사장님이 된 지난 1월 19일 전만 하더라도 그 역시 ‘더럽고 치사한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카페나 차려볼까’를 늘 고민하던 샐러리맨이었다. 브랜드 컨설팅 분야에서 일했던 고 대표는 남의 브랜드만 다루는 ‘을’을 떠나 자신이 주인이 되는 일을 찾다가 커피 전문점을 택했다.
고 대표가 프랜차이즈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원두를 고르고 커피를 내리는 방법부터 시작해 인테리어·입지·손님 응대 등 어느 것 하나 아는 것이 없는 ‘생초보’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창업 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열흘간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직영점에서 사흘간 현장 영업에 대해 배운 게 교육의 전부였다.
“바리스타 교육이 1주일인 곳이 대부분이었어요. 반면 라떼킹은 창업 전이라면 원하는 만큼 교육을 받게 해 줬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사흘 동안의 직영점 교육이었어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하루에도 몇 건씩 터지기 마련이어서 교육 없이 바로 가게 문을 열면 당황할 때가 많아요.”
프랜차이즈를 택했지만 사전 준비는 독립 카페 못지않게 꼼꼼하고 철저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 사이트에서 조회해 본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만 200여 개다. 그중 대형 매장 위주나 반대로 영세한 사업장을 제외하니 20여 개가 남았다. 일일이 본사를 방문했지만 대부분이 실망감만 안겨줬다.
“다 똑같은 말뿐이었어요. 인테리어 비용 최소화, 로열티도 없고 커피 맛도 제일 좋고…. 이름 좀 알려진 곳들은 오히려 본사가 갑처럼 느껴지더군요. 몇 달 전 A사에 있던 직원이 금방 B사를 홍보하는 모습도 봤어요. 작은 회사라도 자기 브랜드에 대해 애정이 있어야 점주도 믿음을 갖지 않을까요.”
고 대표는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려는 예비 창업인들에게 ‘본사와의 궁합’을 강조했다. 본사를 이용해 돈을 번다기보다 업주와 본사가 함께 고민하며 커 나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라떼킹 북한산점이라기보다 북한산팀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고 대표의 말. 무로열티, 가맹비·교육비 면제 같은 솔깃한 제안에 흔들리기보다 장기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라떼킹 북한산점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4·19민주묘지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고 대표는 “단골손님 위주의 오피스·주택 상권과 전혀 다른 케이스로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는’ 상권”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한 잔에 3600원. 요즘 유행하는 가격 파괴 전략과는 반대다. 관광객, 특히 등산객이 많은 상권의 특성상 샌드위치 같은 사이드 메뉴에도 신경을 썼다.
119㎡(36평) 규모의 카페를 차리는 데는 1억5000만 원이 들었다. 원래는 돈가스집이었는데, 임대료를 못 낼 정도로 허덕였던 터라 권리금을 피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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