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에 울고 웃는 ‘외화표시채권’

가격 올라도 통화가치 하락하면 손실…달러 채권이 유망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해외 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 채권 투자에서는 채권 가격의 변화뿐만 아니라 환율의 움직임도 투자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채권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해당 통화가치가 하락한다면 수익률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흥국의 채권 금리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투자자가 오히려 손실을 볼 때가 많다. 만약 국내 투자자가 지난 1년간 신흥국 국채지수에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금리 하락으로 채권지수에서는 4.1%의 플러스 수익률을 얻었겠지만 환율까지 함께 고려한 최종 수익률은 13.5%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은 해외 채권 투자의 최종 수익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결국 원화보다 통화가치가 절상될 가능성이 높은 통화나 국가에 투자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펀더멘털 측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선진 통화 표시 채권에 투자를 고려해 볼만한 시점이다.

원·달러 환율 1200원 대 상승 전망
환율 측면에서 해외 채권 투자 방법은 두 가지다. 위의 사례처럼 환율 변동을 투자수익률에 그대로 반영하는 방법(언헤지)과 별도 계약을 통해 미래에 받을 환율을 미리 확정함으로써 환율 변동 위험을 제거하는 방법(환헤지)이다.
신흥국에 투자할 때는 일반적으로 환헤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신흥국 통화는 선진국 대비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환헤지가 어렵고 비용이 크게 발생한다. 따라서 환헤지 투자는 주로 선진국, 특히 달러를 투자했을 때에 해당된다. 거래가 활발할 뿐만 아니라 환헤지 시에는 양국의 금리 차에 의해 발생하는 환헤지 프리미엄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헤지를 통해 얻어지는 프리미엄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만간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준 금리 인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환헤지 투자의 관점에서 양국의 금리 차가 축소된다는 것은 환헤지를 통해 수취할 수 있는 프리미엄은 더 낮아지고 금리가 더 낮은 채권에 투자하므로 총수익률은 더 낮아진다는 의미다. 이때는 굳이 해외 채권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같은 신용 등급의 원화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채권 투자를 고려한다면 현시점에서는 선진 통화 표시 해외 채권에 대한 언헤지(환오픈) 투자가 유리하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컨센서스 전망에 따르면 내년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 초반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1130원대까지 하락한 원·달러 환율과 환율의 방향성을 고려한다면 향후 달러 채권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엔과 유로화 표시 채권 역시 일본과 유럽중앙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 기대로 약세가 진행될 때마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흥국, 펀더멘털 개선 지켜봐야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은 신흥국은 최근 긍정적인 시각이 증가하고 있지만 펀더멘털 개선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보수적 관점이 필요하다. 신흥국 통화의 추세적인 강세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채권의 거래비용이 높은 브라질 등 신흥국 채권 투자는 경상수지 등 펀더멘털의 턴어라운드가 확인돼 환위험을 제거한 후 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편 해외 채권 투자에서 개인 투자자의 과세 대상은 지급받은 이자에 한정된다. 다른 유가증권과 같이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 차익은 대상이 아니고 환차익 역시 제외된다. 법인은 법인세 처리 기준에 따라 이자소득·자본차익·환차익이 모두 과세된다.
다만 해당 채권의 발행 국가와 한국 간에 조세협약이 체결돼 있다면 해당 내용에 따라 세율 혹은 과세 기준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투자 대상으로는 국내 기업이 발행한 KP물, 신흥국 우량 기업이 발행한 선진 통화 표시 채권,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발행한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 해외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선진국 국채 등이 있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표시채권인 KP물과 신흥국 기업들이 발행한 선진 통화 표시 채권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환차익을 기대하는 중·단기 투자자들에게 적합하다. 다만 발행량에 비해 유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접근이 다소 제한적이다.
KP물은 국내 기업이 발행한 만큼 비교적 기업의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P물은 약 80% 이상이 달러 표시 채권으로, 대부분이 은행과 공기업에서 발행하고 있다. 국내 은행은 일부 지방은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국가 신용 등급과 유사한 신용 등급을 보유하고 있어 선순위 채권은 신용 위험이 거의 없고 발행 조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은행의 후순위 채권이나 조건부자본증권은 높은 이표이자를 지급하는 반면 선순위 채권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 등급이 부여된다. 조건부자본증권은 위기 발생 시 은행의 보통주 자본을 확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순위 대비 투자 위험이 높은 편이다.
KP물 투자에 비해 해외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투자는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넓어 투자성향에 따른 선택이 가능하다. 다만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우량 기업들의 금리 수준은 1~2% 초반(5년물, 달러 표시 기준)으로 대부분이 국내 채권보다 낮다. 금리 매력을 고려한다면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조건부자본증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발행하는 조건부자본증권은 만기가 보통 30년 이상이지만 대부분이 발행 후 5~10년 시점부터 행사될 수 있는 콜옵션이 포함돼 있다. 콜옵션은 채권 발행자의 권리로서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해진 기준 가격으로 해당 채권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다. 일반적으로 발행 당시보다 시장 금리가 크게 낮아질 때에 행사된다. 대부분이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관례이긴 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발행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동일한 발행자의 선순위 채권보다 금리가 높아 수익률 측면에서 매력적이지만 종목마다 개별 조건들이 다르므로 이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 현지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금리와 기업의 현재 상황 외에 정보 접근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신업 등 이자수익은 적지만 신용 위험이 제한적이고 안정적인 산업의 회사채에도 투자해 볼만하다. 업황이 악화된 철강이나 화학·에너지·원자재와 같은 산업군의 회사채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의 유로화 채권 발행도 증가했다. 선진국 국채는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한 투자 대상이다.

신동준 하나금융투자 자산분석실장·숭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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