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하버드 로스쿨 동기…협상 매듭 자문해 임기 중 최대 업적 ‘선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10월 5일 전격 타결되면서 ‘산파역’을 맡은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미 언론과 정계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꺼져 가던 TPP의 불씨를 5박 6일간의 마라톤 회의를 통해 되살리고 결국 타결로 연결한 뚝심과 추진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특히 그를 전폭 지원해 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인연도 세삼 화제다.
하루 1~2시간 쪽잠 자며 마라톤협상
1990년 당시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학술지 ‘하버드로리뷰’ 마감 때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이때 그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밤샘 작업을 같이한 친구가 같은 과 동기생 마이클 프로먼이었다. 프로먼은 그때도 밤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공부)벌레’로 통했다.
그로부터 25년 후 프로먼 대표는 친구인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다시 밤샘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엔 학술지가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 짓는 임무였다.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9월 30일부터 지난 5일 새벽까지 5박 6일간 숨 가쁘게 진행된 TPP 각료회의 기간 중 프로먼 대표의 수면 시간은 총 8시간이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하루 1~2시간 쪽잠을 자고 회의를 계속했다는 얘기다.
프로먼 대표는 협상 상대들에게 패를 내놓으라고 밀어붙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걸어 타결을 종용했다. 타결을 위해 미국이 제약 분야 특허 기간을 대거 양보하는 카드를 내놓기도 했다. 협상은 발표 직전까지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10월 5일 오전 9시 협상 12개국 통상 장관들은 기자회견장에 공동 성명서를 들고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을 마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귀국한 프로먼 대표를 끌어안고 “잘했어(well done)”라고 치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언론들은 대학 친구 프로먼 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임기 중 가장 의미 있는 업적을 선물했다고 보도했다.
프로먼 대표는 협상 타결 후에도 밤샘을 이어 가고 있다. TPP에 부정적인 워싱턴 정가 여론을 바꾸기 위해 상·하원 의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있다.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TPP에 반대한다고 밝힌 상태다. 의회에서는 프로먼 대표가 너무 귀찮게 쫓아다닌다고 해서 ‘프로먼 피로증’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대선 임박…의회 비준 만만치 않아
1962년 미 캘리포니아 주 샌 라파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로먼 대표는 미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공공정책학으로 학사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각각 취득한 영재다. 그 후 하버드로스쿨에 진학해 법학을 다시 공부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인연도 그때 시작됐다.
로스쿨 졸업 후 둘은 서로 연락이 끊겼다. 프로먼 대표는 1993년 클린턴 행정부 출범 후 백악관 경제보좌역으로 들어가 경제 관료로서의 경력을 시작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지역 시민운동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프로먼은 1997년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부 장관에게 스카우트돼 재무부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 루빈 장관 임기 후 씨티그룹 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씨티그룹 보험부문 대표로 따라갔다. 그는 연봉이 740만 달러(2008년 기준)에 달하는 ‘비싼 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다시 만난 것은 2004년 오마바가 상원에 출마하면서다. 프로먼이 선거운동 지원을 자청했다. 프로먼 은 2008년 대선 승리 후 백악관으로 들어갔고 2012년 재선 때도 캠프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주요 8개국(G8)·주요 20개국 정상회담(G20) 등 굵직한 이슈를 챙겼다. 그러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에게 “TPP를 매듭지을 때이고 내가 그 일을 해 주겠다”고 자청했다. 집권 후반기 핵심 국정 과제를 찾던 오바마 대통령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고 백악관은 그에 대한 전적인 지원에 돌입했다. 그렇게 25년 지기 하버드 동기생들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로 이끌었다.
프로먼 대표는 의회에서는 비호감으로 통한다. 뭔가를 숨기는 의심스러운 인물로 찍혀 있다. 의원들은 USTR의 과도한 비밀주의 때문에 협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알 수 없다고 불만이다.
미 대외 협정 권한은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에 있다. 의회는 협상권을 미 행정부에 위임한다. USTR의 수장이 장관이 아니라 대표인 것은 협상 권한을 대행하는 조직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당연히 USTR 대표로부터 진행 중인 협상 내용을 상세히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먼 대표의 태도는 이 같은 전제에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의회의 대체적인 평가다.
세로드 브라운 상원의원(민주·오하이오)은 “프로먼 대표에게 무언가 정보를 얻기를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미 중앙정보국(CIA)에 가서 자료를 몰래 빼내오거나 미 국무부에 가서 이란 핵협상 자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게 낫다”고 비꼬았다. 이에 USTR 측은 “브라운 상원의원실에만 51차례 보고했고 수백 건의 자료를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TPP 협상 타결안은 11월 중 일반에 공개된다. 예정대로라면 의회가 90일간 타결안 검토를 마치면 USTR 대표가 협정안에 서명한 후 TPP 이행 법안을 만들어 다시 의회로 보내게 된다. 의회는 내용을 수정하지 않은 채 찬반 투표만 하게 된다.
하지만 찬반 투표에 들어가는 시점이 민주·공화 양당 대선 예비선거가 시작되는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물리적으로 의회에서 찬반을 앞두고 토론할 시간이 부족한 데다 TPP는 국민들이 좋아하는 이슈도 아니다. 의회가 TPP 처리를 꺼릴 게 분명하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TPP를 임기 내 처리하느냐 마느냐는 의회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꼭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라고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 =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