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막자"…포스트 교토 12월 출범

당사국 총회 앞두고 각국서 감축 목표 제출, 정부 및 산업계 선제대응 노력


최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기후 난민’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월 27일 유엔 개발정상회의 연설에서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 난민을 보게 될 것”이라며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해면 상승과 가뭄의 심화 등으로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에서 강력한 기후변화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지금 세계에선 전쟁과 가난을 피하려는 중동·북아프리카·아시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쟁과 가난이 아닌 기후변화로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미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미국 세계인구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략 세계 인구의 3%(약 2억3000만 명)가 자신의 조국인 개발도상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 난민의 수는 2040년이 되면 4억 명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기후변화 대처를 최우선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일부 학자들은 “기후변화에서 파생된 갈등이 대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리처드 시거 컬럼비아대 교수는 올 3월 발표한 논문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기후변화와 최근 시리아 가뭄의 시사점’에서 “난민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라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시리아가 속한 초승달 지대는 농경과 인류 문명의 주요 발상지였을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풍요로웠지만 지금은 불모지가 됐다. 특히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농민들이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몰렸다. 또 지구온난화에 따라 지중해 동부 지역의 강수량이 줄고 토양의 습도가 낮아져 농경이 점점 어려워졌다. 최소 시리아 국민의 40%(약 760만 명)가 고향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거 교수 등 연구진은 “시리아 가뭄은 정치 불안의 촉매제가 됐다”며 “인간이 기후체계를 교란했고 이는 내전 가능성을 2~3배 정도 높였다”고 결론지었다.
시거 교수는 특히 시리아뿐만 아니라 레바논·요르단·이스라엘·이란 등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남수단·민주콩고·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국가나 멕시코 등 중미 국가도 ‘기후변화로 정치가 위협받는 곳’으로 지적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시리아 난민 발생
물론 기후변화 가설을 부인하는 주장도 있다. “지구온난화 속도가 최근 정체됐다”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여전히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거나 미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예전보다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영국 기상청(Met Office)은 올해 지구 평균기온이 1880년 관측 이후 최고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최고 기온도 2010년과 2014년에 잇따라 경신되는 등 무서운 온난화 진전 속도를 보이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는 현재 온실가스가 꼽힌다. 온실가스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물질로 이산화탄소(CO₂)·메탄·아산화질소·염화불탄소·수증기 등이 포함된다. 이 중에서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여도는 CO₂가 가장 높아 55% 정도를 차지한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석유·석탄 등의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대기 중 CO₂의 농도가 급격히 늘었다. 산업혁명 이전 대기 중의 CO₂ 농도는 약 280ppm였지만 산업혁명 이후 현재의 CO₂ 농도는 360~370ppm 수준에 이르렀다.
만약 지구온난화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에 따른 기상재해의 증가 등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지구 파멸의 가능성까지도 지적되고 있다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분석에 따르면 CO₂의 농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배로 높아지면 선진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1~3%, 신흥국들은 GDP의 2~9%에 달하는 피해가 예상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는 이미 1990년대부터 이뤄졌다. 기본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992년 채택된 UNFCCC다. 생물다양성협약과 함께 브라질 리우 회의에서 채택돼 1994년 3월 21일 발효됐다. 가입국이 되면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과 이에 관련된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주어진다.
또 다른 원칙은 UNFCCC를 구체화한 교토의정서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UNFCCC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UNFCCC의 대표적인 협약이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의 선진국들이 2008~2012년 사이 1990년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의무화한 게 골자다.
올해 말 이런 기존 원칙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른바 ‘신기후체제’가 그것이다. 신기후체제는 2020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 후속으로 논의되는 협약이다. 신기후체제의 핵심은 기존 선진국 중심의 기후변화 방지 노력에서 벗어나 2020년부터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하자는 것이다.
이의 일환으로 모든 당사국들은 2015년까지 신기후체제에 기여할 목표, 즉 INDC(자발적 국가 감축 목표 : 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유엔에 제출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토대로 올해 말 개최되는 파리 당사국총회에서 2020년부터 모든 당사국에 적용될 신기후체제 합의문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등 신흥국도 감축 의무 져야
세계경제 규모 15위인 한국도 이런 국제적 움직임에 동참해 왔다. 이미 한국은 1992년 UNFCCC 체결 당시부터 참석해 왔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는 한국으로서는 강도 높은 수준의 INDC를 제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장기 감축 목표를 배출 전망치(BAU) 대비 37% 감축하는 것을 확정했다. 2030년 BAU는 8억5060만 톤인데 이를 5억3588만 톤까지 줄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만 INDC를 제출한 것은 아니다. 올해 9월 1일 현재 29개의 INDC가 제출된 상태다. 개별 EU 회원국을 고려하면 57개로 집계된다. 저개발 국가를 제외하고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만 따지면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IPCC는 인류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세계 각국이 문제는 목표치를 맞추려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계는 한국의 INDC 수준이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경련 등 30개 경제 단체와 발전·에너지 관련 기업 38개 사는 최근 “정부가 국민 부담이나 산업 현장의 현실보다 국제 여론만 의식해 결정을 내렸다”며 강한 유감을 밝혔다. 이미 최고의 에너지 효율과 최신 감축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이번 감축 목표는 ‘마른 수건 짜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 역시 이 목표를 현실화하면 경제성장률이 0.5 ~0.8%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CO2 배출량 7위 국가로 국제사회가 한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래야 신기후체제 안에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한국의 에너지 이용 효율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들의 원자력발전 수용성은 20% 이상 낮아졌고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탄소 포집 저장 기술(CCS)은 언제 현장에 사용될 수 있을지 막연하다.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인 신·재생에너지의 증가율도 미미한 수준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묘수’보다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첫 출발점은 ‘기후변화’가 남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모든 국민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기후변화 전문가는 “‘기후변화위원회’와 같은 거버넌스 기구를 만들고 공론화다운 공론화를 해야 한다”며 “범정부적으로 산업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홍보가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정부는 배출량 기준으로 상위 그룹과 하위 그룹을 나눠 맞춤형 지원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배출량 상위 그룹은 정부가 에너지 효율화를 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그 기술을 보급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을 함께 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CCS의 조기 상용화다. 현재 CCS는 10MW급의 소형만 보급돼 있다. 이를 300~500MW급으로 대형화하고 이에 대한 기술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또 배출량 하위 그룹은 에너지 절약 시설의 확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일례로 에너지 절약 시설에 대한 세액공제 기간을 연장하고 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2016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투자 금액의 법인세 2~10%를 공제해 주고 있다. 또 정부는 에너지 절약 시설에 대한 투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 기준 5000억 원 수준이다.

배출권 구입보다 절감 투자가 효율적
최광림 산업에너지환경연구소 소장은 “특히 기업들이 국내외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민간이 서로 배출권을 쉽게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일본의 J-크레디트 제도처럼 해외에서도 배출권을 사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형 ‘그린 크레디트’와 ‘시민 배출권’의 활성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린 크레디트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에너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자금 기술 등을 지원하고 감축 실적의 일부를 크레디트로 이전받는 것을 말한다. ‘시민 배출권’은 온실가스를 감축한 개인이나 가정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감축한 배출권을 기업이 구입해 상쇄 배출권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기업 역시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배출권 구입보다 직접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런 노력은 기업에도 이익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절감 목표치의 100%를 배출권으로 구입하면 11조4500억 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에너지 절감 시설에 투자하면 5조3800억 원 수준이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
물론 기업들이 대규모의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탄소배출권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이 자사에 맞는 정확한 온실가스 한계 감축 비용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평가 체계 확립 후 시기별로 배출권 구입과 시설 투자 비용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도움을 넘어 자발적으로 시민 배출권이나 그린 크레디트를 발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 소장은 “국내의 감축 설비투자 및 배출권 구매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해외 투자처와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업 단위로 사업 관리 및 수행을 전담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