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는 제약 바이오주, 3대 체크 포인트

연초 이후 70% 폭등…상대 밸류에이션·R&D 분야·실적 잣대로 옥석 가려야

“오를 만큼 올랐는데 또 오른다.” 바로 한국의 제약·바이오 기업 주식들에 대한 얘기다. 아직 상장도 안 된 수많은 벤처기업에서부터 삼성물산 같은 대기업까지 ‘바이오산업’에 미래를 걸고 있다. 투자자들도 제약· 바이오산업이 한국 경제를 저성장에서 구원해 줄 거의 유일한 미래 산업으로 평가하며 장밋빛 내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환상은 금물이다. 오를 만큼 오르는 데 그쳐야 하는 데 또 올랐으니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옥석 가리기’다. 제약·바이오주의 현황과 미래를 전망해 본다.
글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g.com


올해 증시는 ‘제약·바이오주’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될 정도다. 실제로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월 1일 기준 ‘미래에셋타이거(TIGER)헬스케어 ETF’는 지난 1년간 66.54%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모든 국내 주식 펀드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는 20.78% 오르는 데 그쳤고 코스피 지수는 오히려 0.61% 하락했다. 이 상장지수펀드(ETF)의 구성 종목이 국내 제약 및 바이오 기업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을 따져본다면 웬만한 종목은 평균적으로 지난 1년간 70% 가까이 올랐다는 의미가 된다. 특히 이 펀드가 최고치를 달성한 지난 7월 3일을 기준으로 하면 작년 10월 1일 대비 무려 120% 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제약·바이오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 왔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기에 성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했다. 이런 희망이 올 초부터 제약·바이오주의 가파른 주가 상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치솟던 주가, 7월 이후 약세로
제약·바이오주가 이처럼 급등세를 연출하면서 올 하반기 관련 업체들의 상장 행렬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오 업체는 20개가 넘는다. 특히 기술 특례 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하는 회사만 15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술 특례를 통해 상장한 제노포커스와 코아스템이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기업공개(IPO)에 대한 관심을 더 끌어 올렸다. 실제로 5월 29일 상장한 제노포커스(맞춤 효소 전문 업체)는 10월 1일 기준 공모가(1만1000원)보다 2배 이상 오른 2만5300원을 기록했다. 특히 제노포커스는 상장 후 5차례 상한가 행진을 이어 가며 지난 7월 장중 한때 5만31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코아스템(줄기세포 치료제 전문 업체)도 10월 1일 기준 공모가(1만6000원)를 훌쩍 웃도는 2만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고공행진을 하던 제약·바이오주 주가는 지난 7월부터 흔들리고 있다. 많은 업체들은 실적이 수반되지 않은 채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어 대외 악재 등 ‘외풍’에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약·바이오주 주가 상승에 불을 지폈던 한미약품이 2분기 실적 쇼크를 내면서 고평가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또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중국발 경기 둔화 우려, 미국의 금리 인상 논란이 거듭되며 밸류에이션이 높은 제약·바이오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유한양행 등이 포함된 코스피 의약품지수는 상반기 102.0%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지난 7월부터 9월 말일까지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19.0%다. 대웅제약은 고점 대비 마이너스 45.2%, LG생명과학은 마이너스 34.8%, 동아에스티·종근당·녹십자도 약 30% 하락했다. 중소형 제약사와 바이오 업체가 많은 코스닥 제약지수의 같은 기간 수익률은 마이너스 13.2%다.
9월 30일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가 약가 인하 정책을 들고나오면서 나스닥 지수의 바이오주 주가가 급락했고 이 여파는 국내 제약·바이오주에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제약주는 일제히 폭락했다. 경보제약이 전 거래일보다 18.50%나 급락했고 유유제약(12.16%)·슈넬생명과학(7.88%)·대원제약(7.59%)·진원생명과학(5.69%)도 큰 폭으로 내렸다. 코스닥 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가총액 1위인 셀트리온이 전 거래일보다 2.86% 하락한 6만7900원에 거래를 마감했고 메디톡스(4.20%)·바이로메드(3.00%)·코오롱생명과학(4.71%) 등 상위 종목이 일제히 떨어졌다.

가치 평가 기준 모호…동종 업체 간 비교 필수
결국 이번 일을 계기로 제약·바이오주라는 것만으로 지나치게 고평가를 받던 주식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코스피 헬스 케어 업종은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률(PER) 29.5배로 코스피 평균 10.7배를 크게 웃돈다. 코스닥 건강관리 업종지수 역시 PER 34배로 고평가 논란을 받고 있다. 코스닥 건강관리 업종지수의 PER는 현재 주요국 증시 PER 중 최고치다. 그만큼 거품이 있다는 뜻이다. 큰 폭의 조정에도 제약·바이오주는 연초와 비교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지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옥석’을 가려야 할까. 증시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잣대를 내세우고 있다. ▷주가 밸류에이션 ▷R&D 분야 ▷실적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가치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 실적이다. 하지만 바이오 업종은 이런 잣대로 주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수년간 적자를 내도 시가총액이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수두룩하다. 제약·바이오주는 투자자들이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에 훨씬 높은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노경철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바이오 기업들은 현재 뚜렷한 매출 없이 대부분이 R&D로 비용을 소진하고 있다”며 “하지만 세계시장에서 통할 기술력이나 상품성 있는 품목이 출시되거나 기술이 이전되면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는 것을 주식시장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증시 전문가들은 동종업계 ‘밸류에이션’을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오 업종 내에서도 유독 PER가 높거나 별다른 호재 없이 단기 급등한 종목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경쟁력이다. 기술 경쟁력이 미래 가치를 가늠한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이 각 기업 기술 경쟁력을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약·바이오는 첨단 정보기술(IT)보다 더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며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인 만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깐깐한 규제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하태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각 업체의 R&D 성과와 상업화 가능성 등은 예측하기 힘들다”며 “실적보다 성장성이 주가를 결정해 PER 등 비교 준거가 마땅하지 않지만 동종 업체 간 비교를 통해서라도 지나치게 비싼 종목에 대한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 가능성 따져야
일단 주가 부담이 큰 곳을 제외하고 나면 각 기업이 어떤 분야에 집중하는지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대박’을 치는 것은 사실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과연 글로벌 대형 제약사를 상대로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약·바이오산업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규제가 있다. 이 규제를 넘어서기까지 손해를 보더라도 꾸준히 자금을 투입하며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한미약품·녹십자·유한양행 등 국내 최대 규모 제약사의 연간 매출 규모는 이제 갓 1조 원 수준이다. 하지만 노바티스·화이자·로슈·사노피·머크 등 세계 상위 5개 제약사의 연간 매출 규모는 40조 원에서 50조 원 수준이다. 즉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성공 여부는 이들에게 ‘기술 수출료’를 받고 R&D의 성과물을 팔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한 자산 운용사 관계자는 “바이오·제약주 기업의 가치는 B2B 성공 여부에 달렸다”며 “기술을 수입할 자금 여력을 가진 글로벌 제약사가 20개 안팎으로 많지 않은 만큼 이들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신약 개발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DNA 치료제, 표적 항암제 관련 기술의 수출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당장 실적이 큰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종목을 고를 때 실적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호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제약·바이오 업종 내에서 주가가 동조화하고 있지만 하반기 실적 등에 따라 주가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제약·바이오 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째 붐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닷컴 벤처 붐을 타고 바이오 벤처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둘째 붐은 2004년 무렵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열풍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논문이 가짜로 밝혀지면서 2차 바이오 투자 붐도 순식간에 꺼졌다. 둘째 몰락의 후유증은 10년이나 갔다.
이제 셋째 붐을 맞고 있는 제약·바이오 붐에 대해 업계에서는 “1·2차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우선 성과다. 그 사이 이름뿐인 바이오 기업들은 도태된 것이다. 1996년 설립돼 초창기 바이오 업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로메드는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VM202-DPN’ 임상 2상을 마치고 3상 진입을 승인받았다. 2000년 설립된 메디톡스는 2013년 보톡스로 유명한 글로벌 제약사 앨러간과 3억9000만 달러 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기존 제약사의 성과도 볼만하다. 한미약품의 7억 달러 규모 면역 질환 치료제 기술 수출, 보령제약 카나브의 고혈압 신약 수출 확대 등 굵직굵직한 성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성과가 나타나자 돈이 몰리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들의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 규모는 2013년 1463억 원에서 지난해 2928억 원으로 증가했다. 1년 만에 투자액이 1500억 원 정도 늘었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투자가 2955억 원에서 1705억 원으로 감소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특히 한국의 제약·바이오는 우수한 인재가 많아 앞으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쉽게 말해 외환 위기 이후부터 시작된 ‘의대 열풍’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에 탄탄한 인재풀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제약·바이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의사·약사 등 의료 전문인들이다.



삼성·SK, 오너가 직접 바이오산업 챙겨
결국 제약·바이오나 금융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상태로는 거품이 있긴 하지만 제약·바이오주 열풍이 과거와 같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실적만 봐도 그렇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컨센서스를 내놓은 제약·바이오 기업 5곳 가운데 올해 실적 추정치가 연초보다 높아진 곳은 4개사다. 반대로 하향 조정된 곳은 단 1곳에 그쳤다.
또 삼성·SK와 같은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눈여겨볼만한 포인트다. 특히 예전과 달리 오너들이 직접 이 사업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계열사 내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제약 계열사들이 ‘백조’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에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하나로 바이오·제약 산업을 지목하고 최근 이 분야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바이오 의약품 사업은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개발에 주력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로 이뤄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케미칼의 제약·바이오산업인 L&S 부문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는 SK케미칼이 개발한 4가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의 숨은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 스카이셀플루는 한 번의 접종으로 4가지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백신이다. 세포배양 기술로 생산된 국내 첫째, 세계에서는 둘째 백신이다. SK케미칼은 2008년부터 스카이셀플루 개발에 돌입해 7년간 1000억 원 이상의 R&D 비용을 투자했다. 4가 백신 생산을 위한 공장 설비 증설만도 그동안 3000억 원이 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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