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드라이브의 ‘한계’... 불안한 아베노믹스

엔저 드라이브 ‘한계’…불안한 아베노믹스수출 기업들 엔저 이익의 근로자 환원에 미온적, 엔저 용인 분위기도 사라져
올해 10월이면 아베 정부가 집권 3기에 들어선다.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이후 무투표로 자민당 대표에 선출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로 집권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당선 직후 아베 신조 총리는 2012년 12월부터 추진해 왔던 아베노믹스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금융 위기 이후 일본 경제는 ‘안전통화 저주’에 시달렸다. 미국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안전통화 저주는 미국·유럽의 잇따른 위기로 안전통화로 부각된 엔화의 강세가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 국면에 떨어뜨린 상황을 말한다. 이 때문에 2012년 12월 아베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본 경제를 보는 시각은 냉담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경제가 ‘5대 함정’에 빠져 어떤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의문시됐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됐던 것은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 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책 함정’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됐던 아베노믹스가 아베 총리 집권 3기를 맞아 흔들리고 있다.
좀비 경제의 탈출구 됐던 아베노믹스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는 최종 목표인 수익성과 경쟁력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에 빠졌다. 특정국 경제가 이런 상황에 놓이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일본이 전형적인 예였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과정에서 20년 이상 지속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이 무력화돼 죽은 시체와 같은 좀비 경제라고 불렸다. 1990년 이후 무려 20차례가 넘는 경기 부양 정책은 국가 채무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할 정도로 재정수지만 악화시켰다.더욱이 일본 경제가 당면한 또 하나의 과제는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었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80년대 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2%로 급락한 것이 주로 내수 부진에 기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디플레이션 요인도 큰 것으로 지적됐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1970년대 이후 0.5~0.8% 포인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내수 기여도는 1970년대 3.8% 포인트, 1980년대 4.0% 포인트에서 1991~2008년 0.6% 포인트로 급락했다. 이 때문에 GDP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89.6%에서 2008년 82.5%로 크게 떨어져 경기 침체, 디플레 등 구조적인 문제를 발생시켰다.내수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경제가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경제 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를 약세로 돌리는 길밖에 없다. 이때 태동했던 정책이 바로 아베노믹스다. 발권력을 동원해 안전통화 저주에 걸린 엔화를 약세로 돌려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국면을 동반 탈출한다는 것이 목표였다.아베노믹스를 현재 한국 경제팀의 경제정책인 ‘최노믹스’와 비교해 보면 그 실체와 성공 가능성을 보다 명확하게 그려볼 수 있다. 작년 세월호 사태로 ‘소프트 패치(경기 회복 후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바탕으로 최노믹스를 태동시켰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 있는 정책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경제정책 효과가 그 나라 국민의 심리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에 이는 아주 중요하다. 추진한 지 2년 반이 넘은 아베노믹스 효과에 대해 아직까지 의심이 나오는 것은 일본 국민들의 심리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추가 엔저보다 원·엔 환율 상하 변동성 대비해야아베노믹스는 비정상 대책의 표본이다. 일본은 국민소득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250%를 넘어 더 이상 재정정책을 동원할 수 없었다. 정책 금리도 제로(0) 수준이다. 유동성 조절 정책은 함정에 빠진 지 오래됐다. 거듭된 정책 실수로 당국과 정책 수용층의 반응은 좀비 국면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모든 것이 막혀 있을 때 동원하는 정책 수단이 발권력에 의존하는 충격요법이다. 전시에 돈을 찍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강제저축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아베노믹스는 발권력으로 엔저를 유도해 인접국의 경쟁력을 빼앗는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시대에선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정책이다.경기 부양 중점 대상도 한국과는 다르다. 최노믹스는 국내 경기 대책 역사상 처음으로 기업의 투자가 아니라 가계의 소비를 늘려주는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변경했다. 단순히 소득이 아니라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데 초점을 뒀다. 아베노믹스는 소비에 중점을 뒀던 종전의 대책이 먹히지 않자 기업의 수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되돌아왔다.효과 면에서 이 점은 큰 차이가 난다.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를 보면 한국은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68%에 달한다. 일본은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불과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같은 경기 부양의 화살을 쏘면 한국은 7점까지 맞혀도 되지만 일본은 반드시 10점 만점을 맞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평가가 크게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한 반면 일본은 강등시켰다.더 주목되는 것은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엔저를 묵인해 왔던 주변국과 일본 국민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등 주변국을 중심으로 신사 참배 등 경제 외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올 들어서는 아베 정부의 지나친 국수주의에 대한 우려가 일본 내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특히 아베노믹스 출범 이후 엔저를 묵시적으로 용인해 왔던 미국의 태도가 올 들어 달러 강세에 대해 부담을 느끼면서 종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최대 현안이 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엔화 강세 압력 등을 통해 추가적인 달러 강세 요인을 완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베노믹스가 당초 의도했던 경기 회복과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역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내수가 살아나야 가능하다. 역바세나르 협약은 일본 수출 기업이 엔저에 따른 반사이익을 임금 인상, 배당 증대 등을 통해 근로자에게 환원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노사정 간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에 수출 기업이 맞서고 있어 아베노믹스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하다. 지난 2년 반 이상 동안 엔저에 시달렸던 국내 기업들은 추가 엔저보다 원·엔 환율이 상하로 크게 움직이는 변동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