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으로 생산비 밑돌아, 항의 행진 등 단체 행동
유럽 전역에서는 우유 가격 파동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우유 생산 농가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물보다 저렴한 우윳값 때문에 유럽의 낙농 업계가 연일 울상이다. 유제품 가격 폭락에 위기감을 느낀 농부들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농부들이 8월 말부터 9일간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 같은 대규모 집회는 프랑스·벨기에·덴마크에 이어 넷째다.
트랙터까지 동원한 농부들은 독일의 북부 지역인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 호엔베스텔에서부터 남부 뮌헨까지 독일 전역을 누비며 행진을 벌였고, 뮌헨에서 항의 집회를 열며 목소리를 높였다. 농부들은 우윳값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낙농 업계의 상황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이 같은 캠페인을 벌였다고 했다.
이들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나서 농가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부들은 비슷한 시기에 독일과 프랑스 국경 부근인 브라이자흐와 남부 지역인 트라운슈타인에서도 추가 행진을 벌였다.
농부들이 이처럼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우유값 하락으로 농가 수익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낙농 업계는 현재 우유 1kg당 26센트를 받고 있는데, 우유 생산에 투입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40센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료와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생산비가 증가해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가격 하락에 따른 독일 낙농가의 손실액은 매년 40억 유로(5조4600억 원)에 달한다.
낙농 업계는 우윳값 하락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공급과잉을 지적한다.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60억~70억kg의 우유가 수요보다 많이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날씨로 우유 생산은 크게 늘었지만 러시아의 해외 식료품 수입 금지 조치, 중국의 경제 위기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연합(EU)이 올해 4월부터 할당제 폐지를 선언, 농가별 우유 생산량의 제한이 사라지게 되자 공급이 무한정으로 늘면서 가격이 더욱 곤두박질치게 됐다. 독일농부협회는 정부에 적극적인 유제품 수출 방안과 보조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농부들이 우윳값 하락에 항의하며 연일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알디·리들·아스다 등 주요 슈퍼마켓의 무리한 가격 경쟁이 우윳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유통업체들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EU 할당제 폐지·중국 수요 감소 ‘악재’
지난 8월 초 70여 명의 농부들은 아스다 스태퍼드 지점에 소를 끌고 나타나 매장 통로를 점령했다. 이들은 유제품 코너에서 “우유가 물 한 병보다 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농부들은 아스다의 다른 지점을 찾아가 슈퍼마켓 내에 있던 우유를 모조리 구입해 진열대를 비웠고 주차장에서 시민들에게 우유를 공짜로 나눠 주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농부들의 항의 방문 이후 아스다 측은 우유를 리터당 28펜스(523원) 받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농부조합은 자신들이 요구한 30~32펜스보다 적지만 가격 상승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우유 가격 하락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유럽 당국은 진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 EU집행위원회는 유제품·과일·채소 공급 부문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을 2016년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유제품 안정화 대책에는 버터나 분유 등 저장성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