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보수 무효’… 변호사 시장 ‘빅뱅’ 오나

시간제 보수로 개편 채비, 대형 로펌·개업 변호사 간 ‘희비’

변호사 시장이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접어든 데 이어 최근엔 대법원의 변호사 성공 보수 무효 판결이라는 폭풍이 몰아쳤다. 법조계는 속내가 복잡해졌다. ‘배고픈 변호사’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 가운데 한쪽에선 새로운 보수 산정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꼴찌 수준인 사법 신뢰를 회복하려는 ‘전관예우’ 근절 바람은 ‘밥그릇 싸움’과도 맞닿아 있다. 변호사 시장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이것은 대법원발 핵폭탄이다.”
지난 7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법관 13명 전원 만장일치로 ‘형사사건에서 의뢰인과 변호인이 맺은 성공 보수 약정은 무효다’는 판결을 내놓자 현장에 있던 판사들을 비롯해 법조계는 ‘충격과 경악’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성공 보수 논의는 이미 20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대한변협이 1995년 형사사건의 성공 보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변호사 보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 마련한 이후 17~18대 국회에서 변호사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를 전격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하고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호사 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67년간 유지돼 온 관행을 민법 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를 들어 ‘사회질서 위반 행위’로 판단한 데 대해 격양된 목소리를 내놓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당장 헌법재판소에 대법원 판결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헌법 소원을 냈다.
변호사 업계의 동요가 큰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성공 보수 약정은 당장 변호사의 생계와 밀접하다. 지금까지 사건 수임에 대해 변호사들의 보수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됐다. 일을 시작하면서 받는 착수금과 결과가 나온 후 받는 성공 보수가 그것이다. 통상 형사사건은 무죄 혹은 집행유예, 보석, 영장 청구 기각 등에 대해 성공 보수를 받아 왔다. 5 대 5에서 2 대 8 등으로 성공 보수가 더 많았다. 그런데 앞으로 형사사건에 대해 이 성공 보수를 받을 수 없게 되면서 단순 계산하면 수입이 ‘반 토막’나게 됐다.

67년 관행 깨져…변호사 업계 대혼란
또 하나의 이유는 자존심과 관계돼 있다. 형사 변호인 제도의 취지를 몰각시켰다는 것이다. 강신업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변호사는 판사·검사와 함께 형사재판의 한 축으로서 100년 넘게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이번 판결에 따르면 형사재판에서 실형이 나오면 원래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이고 무죄나 집행유예가 나오면 변호사가 로비를 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며 “판결문 내용을 요약하면 변호사가 브로커라는 얘기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같은 변호사 업계에서도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한 원로 변호사는 “판결 이유가 판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방론’이라는 점(성공 보수 1억 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에 대해 판결하면서 이 사건과 무관한 7월 24일부터 성공 보수를 금지한 점), 입법 절차가 각계 의견을 모은 공개 변론 없이 아무도 모르게 진행됐다는 점에서 떳떳하지 못했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면서도 “변협이 발끈한 것은 이해하지만 헌법 소원은 국민이 공권력의 행사나 불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하는 것으로, 변호사가 무슨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되느냐. 법률가 단체로서 ABC도 갖추지 못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과 변호사 단체의 갈등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초 변협이 한 대법관의 개업 신고를 반려한 것에 대한 ‘괘씸죄’가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상고 법원 설치를 놓고 현재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는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판결이 내려지면서 양측의 골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미국, 일한 시간만큼 보수 청구
판결 이후 한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혼란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당장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보수 체계에 변화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일단 로펌들은 형사사건 위임 계약서에서 성공 보수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자체적으로 새로운 계약서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며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7월 27일 태스크포스 설립 이후 형사사건 표준 계약서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기존 형사사건 수임료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8월 14일 새로운 형사사건 표준 계약서를 마련해 배포했다. 발표에 따르면 향후 수임료 유형은 ▷순수 시간제 보수 약정 유형 ▷항목 합산제 보수 약정 유형 ▷항목별 가산제 보수 약정 유형 ▷분할 보수 약정 유형 등 네 가지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외국 사례를 참고해 만들었는데 크게 보면 시간제 보수 체계와 항목별 보수 체계 두 개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제 보수 체계(time charge)는 이미 미국에서는 일반화된 방식으로, 일한 시간만큼 보수를 청구하는 방안이다. 항목별 보수는 ‘사건 당사자 및 관계인 면담’, ‘당사자 접견’, ‘변호인 의견서 작성’, ‘공판 참여’ 등의 항목에 대해 변호사와 의뢰인 간 선택에 따라 양적 보수액을 정하는 것이다.
현장 반응은 다양하다. 최창무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의 형사사건의 수임은 착수금만 정한 상태에서 나머지 금액은 임시 계약 형식으로 체결하고 있다”며 “특히 순수 시간제 보수 약정 유형은 형사사건의 각 진행 과정에서 일한 시간을 계산한다는 게 객관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방희선 법무법인 케이파트너스 변호사는 “변호사 보수는 업계의 해묵은 문제로, 타임 차지는 미국에서 도입된 보수 산정 방식인데 미국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조건적으로 시간을 계산해 청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있다”며 “미국에는 변호사의 보수를 산정하는 직업까지 따로 있다. 경력별 시간당 보수 산정 기준안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향후 변호사 시장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의 주시하면서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같은 문제에도 입장 차이는 있다. 대형 로펌은 일부 타격이 예상되지만 조만간 타개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사라진 성공 보수 대신 타임 차지가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용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형사사건 비율이 10%를 넘지 않는데다 성공 보수를 받지 않아도 예전에 비해 크게 수입이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문의 영역에서는 이미 타임 차지로 일해 왔다”고 말했다. 로펌들은 판결에 좌우되는 리스크가 큰 계약보다 일한 만큼 돌려받는 시간제 보수 체계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매출은 느는데, 수익성은 떨어져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로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연수원 연차에 따라 30만~60만 원 선에서 시간당 보수 요율이 정해져 있다”며 “개인적으로 전관이지만 1억 원 이상의 성공 보수를 받은 적은 없는데다 실제 투입하는 인원과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당 보수로 바꿔도 전체 총액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당 보수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고 모든 것이 문서화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아직 국내 기업 및 개인은 이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대형 로펌은 타임 차지 확대와 함께 착수금을 올려 받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대응 방안의 가닥을 잡고 있다.
반면 서초동을 중심으로 하는 개업 변호사는 사정이 다르다. 로펌이 비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쪽은 이쪽이다. 로펌에 담당하는 형사사건과 달리 개인 의뢰인이 많고 그마저도 사정이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강신업 공보이사는 “현재도 착수금과 성공 보수가 과거에 비해 많이 내려간 상태로, 불구속 사건은 500만 원 선에서 지금은 300만 원, 200만 원 이하로 무너졌다”며 “생존권을 위협받는 변호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성공 보수가 없어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대형 로펌과 달리 개인 변호사들은 시간당 보수를 챙겨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의도와 달리 전관예우가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강 공보이사는 “법과 시스템으로 전관예우가 명백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전관예우가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전관들의 착수금만 더 올라가고 결과가 나빠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수억, 수십억에 해당하는 전관예우 관행을 끊지 못한 채 형사사건 수임료만 대거 올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법복을 벗은 새로운 전관들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형사사건 대부분이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부담을 전체 변호사에게 떠넘겨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변호사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실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회원 1236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성공 보수 무효 판결이 ‘전관예우 타파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5%(62명)에 그친 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56.2%(695명)로 절반이 넘었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전관예우는 다름 아닌 국민들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형사 재판에 얽힐 경우 ‘500만 원만 주세요’라고 말해도 ‘대법관 출신인데 어떻게 조금만 받으세요. 더 드릴 게요’라고 한다”며 “전관예우에 대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 보수와 전관예우 금지를 비롯한 최근 법조계에 불고 있는 여러 바람은 결국 ‘밥그릇 싸움’과 맞닿아 있다. 진짜 문제는 변호사 시장이 험악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미 한국은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김한규 회장은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의 변호사 수가 2007년까지 1만 명이었다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불과 7~8년 만에 1만 명이 배출됐다”며 “공급이 천천히 늘어나지 않고 갑작스럽게 증가했기 때문에 사건 수요에 비해 평균적으로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그대로인데 변호사 수가 늘어나다 보니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 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집계에 따르면 1990년 변호사 1인당 연간 본안 사건 수임 수는 55.7건이었다. 2001년 41.7건, 2012년 28건으로 감소했고 2013년 24건으로 떨어졌다. 국내 변호사가 한 달 평균 2건 이하의 사건을 맡고 있는 셈이다.
또한 변호사 1인당 연간 순수익은 2007년 7842만7000원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2년 3830만 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5년 남짓한 사이에 순수익이 반으로 줄었다. 김 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서초동에서 월평균 500만 원 받던 변호사들이 지금은 3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도입 후 수임 건수 지속 감소
그마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계를 걱정하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강 공보이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택에서 홀로 전화를 받는 ‘가택 변호사’가 현실화됐다”며 “기획 소송 등 과거에 하지 않던 영역에 진출하거나 교도소를 매일 드나드는 ‘집사 변호사’가 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도 이와 같은 밥그릇 싸움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요 의뢰인인 기업들의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로펌의 수익성도 동반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연봉 동결 상태에 들어간 곳도 적지 않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초임(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같은 연차라도 로스쿨 출신이냐, 사법 고시 출신이냐에 따라 연봉이 다른 로펌도 있고 성과급을 강화해 같은 연차라도 차등을 두는 곳들이 늘고 있다”며 “파트너 변호사들도 연봉이 동결 내지 삭감되거나 배당률이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잘 맡지 않던 지방 사건 원정 수임에 나서며 시장 키우기에 나서는 중이다. 또 집단소송이나 이혼 사건 등 종래 대형 로펌이 부담스러워했던 사건도 맡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 관점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진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변호사 시장을 산업 관점으로 본다면 연매출 4조 원 미만 규모로 삼성그룹 매출의 몇 십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며 “서비스산업 관점에서 향후 시장을 더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과 변호사 단체, 대형 로펌과 개업 변호사 간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산업 규모를 키워 새 시장으로 진출할 때 결과적으로 한국 법치주의나 사법 신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공 보수 논란을 수요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수요자인 의뢰인 관점들의 사법 서비스 접근성이 용이해진다는 장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다양한 영역에 진출해 저렴한 비용에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국가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그동안 불투명했던 보수 체계를 투명하게 정비하고 통계나 세원 추적을 쉽게 하는 것도 개선점으로 지적된다. 세계 42개 조사 대상국 중 밑에서 넷째를 차지한 한국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법조계가 새겨들어야 할 점이다.
2012년 로스쿨 첫 졸업생 배출 이후 변호사 수가 급격히 늘어 2만 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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