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메카’ 동대문 상권의 부활

롯데·범현대·SK네트웍스·CJ 입점 가속화…대기업 발판 삼아 기사회생할까


대한민국 쇼핑의 메카였던 동대문 상권이 최근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모습이다. 두산(두타)·롯데그룹(롯데 피트인) 등 건물을 통째로 운영하는 대기업에 이어 최근에는 빌딩의 공실을 공략해 기업의 신사업 또는 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를 유치하려는 전쟁이 치열하다. 현대백화점과 SK네트웍스는 한 건물 위 아래층에 각각 아울렛·면세점으로 동대문 상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롯데그룹은 롯데 피트인 총 11개 층에 면세점 운영 계획을 밝혔다. CJ푸드빌은 한식 뷔페 레스토랑 입점에 성공했고 LF 역시 그룹의 주력 유통 채널인 편집 숍을 오픈했다. 범현대그룹에선 아예 호텔 건물 한 채를 지어 올렸다. 냉혹한 암흑기를 거쳐 동대문에 다시 전성기가 찾아오는 것일까.


한류 열풍에 동대문 활기 되찾아
지난 5월 19일 오후 2시 동대문 두산타워.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인원들이 북적인다. 한국인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다. 두타 맞은편에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드나드는 인파의 행렬도 끊길 줄 모른다. 몇 년간 앓는 소리 나던 동대문의 분위기가 활기차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중국 칭다오의 한 여대생은 “서울에 오면 꼭 동대문에 들러 옷 원단을 사고 쇼핑도 즐기고 식사까지 해결한다”며 “동대문에 올 때마다 새로운 의류 브랜드나 식당들이 생겨나 새로운 곳을 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에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한류’ 바람이 불면서다. 동대문 지역은 외래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2014년 외래 관광객 실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지역은 동대문 재래시장(55.5%)이었다. 명동 거리(55.1%)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3월 개관한 DDP는 독특한 외관과 다채로운 볼거리로 방문한 관광객 비율이 20%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방문 목적으로는 쇼핑(64.9%)과 식도락(48.2%)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이에 따라 관광 특수를 노리는 기업들의 발 빠른 입점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곳은 쇼핑몰 케레스타(옛 거평프레야)다. 두타 뒤쪽에 있는 케레스타는 최근 현대백화점그룹과 SK네트웍스가 입점 소식을 알렸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하 4층~지상 9층에 아울렛을, SK네트웍스는 지상 10층~13층에 면세점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대문에 자리한 케레스타가 관광·쇼핑·교통·숙박 등에서 유리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케레스타는 한때 동대문 상권을 대표했던 쇼핑몰이었다. 하지만 상가 임차인들의 보증금 문제 등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건물이 장기간 방치됐고 동대문의 흉물로 전락했다. 하지만 현 소유주인 파인트리자산운용(부실채권 사모 펀드)은 지난해 말 대법원 판결로 케레스타 기존 임차인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동대문 상권은 쇼핑몰이 활성화됐지만 아울렛이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며 “현재 10월 오픈을 목표로 리모델링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는 롯데의 반격이 파격적이다. 롯데면세점은 오는 6월 1일 입찰 예정인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에 참여하며 사업지로 동대문 롯데 피트인을 확정지었다고 5월 22일 밝혔다.

롯데면세점은 중원면세점과 함께 동대문 피트인 총 11개 층에 걸쳐 면세점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 앞서 동일한 공간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복합 면세타운 모델을 제시하며 새로운 형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이어 간다는 전략이다. 복합 면세타운은 총 11개 층으로, 롯데면세점은 5개 층 8387㎡, 중원면세점은 2개 층 3762㎡에서 각각 면세점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 밖에 2개 층은 전문 식당가로, 나머지 2개 층은 사무실과 교육장, 보관창고로 사용할 예정이다.


면세점·호텔, 관광산업 신격전지 부상
이곳 전문 식당가에는 CJ푸드빌의 한식뷔페 ‘계절밥상’은 5월 22일부터 롯데 피트인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곳은 외식전문 업체인 아모제푸드가 푸트코드 사업을 철수하고 나온 자리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유커 공략 상권이라 입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에서 유일하게 ‘장사 잘되는’ 빌딩으로 통하는 두타에는 올 초 LF가 문을 두드렸다. LF의 편집 숍 브랜드인 ‘라움에디션’이 정식 오픈해 성업 중이다. LF 관계자에 따르면 “두타 매장은 관광객의 비중이 20~30%에 달해 6월부터 캐리어 브랜드, 닷드랍스 제품을 추가로 입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 크게’ 빌딩 한 채를 지어 동대문 상권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도 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의 관계사인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이다. 이 회사는 부동산 펀드를 통해 비즈니스호텔을 부지 매입부터 인허가 등록, 준공까지 개발형 방식으로 신축했다. 이 자리에 ‘이비스 버젯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이 들어와 지난해 10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관계자는 “호텔이 있는 동대문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 이에 적합한 이코노미 호텔과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아코르그룹의 이비스 버젯을 운용 브랜드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다수의 대기업들이 동대문 상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대문 상권이 살아나며 주로 2000년대에 연이어 들어섰던 굿모닝시티·라모도·디오트·맥스타일 등의 빌딩이다. 이 건물들은 공급과잉으로 공실률이 높거나 쇼핑몰 신축 과정에 사기 분양 사건 등이 터지면서 문제가 됐던 곳들이다. 롯데 피트인이 들어선 구 패션TV, 케레스타 등도 마찬가지 케이스로 고전하다가 대기업 자본에 매각됐다.

하지만 쇼핑몰 빌딩 인수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쇼핑몰 빌딩의 특성상 계좌 분양을 하기 때문에 600~800여 명의 모든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쉽게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의 쇼핑몰은 부도 처리되기 십상이다.

기업의 부동산 투자 자문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한 패션·리조트 기업이 건물 한 채를 사기 위해 수백억 원을 지불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매물을 알아보고 있지만 쇼핑몰 투자의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계약을 쉽게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동대문의 많은 빌딩이 리모델링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 대기업의 진입이 동대문 상권의 부활을 이끌 수 있을까. 동대문 상권의 특성을 감안해 대기업의 입성이 ‘공생’이냐 ‘나 홀로 호황’이냐를 놓고 의견이 나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대기업이 시장 활성화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판단이다. 상권이 확장되면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상가 시세 또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인근 상인들도 대기업 진출 소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굿모닝시티에서 남성 옷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특히 대기업이 하는 아울렛이나 면세점은 쇼핑몰과 상품이 겹치지 않고 중국인이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관광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좋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상인은 “좀 더 세련되고 차별화된 매장이 많이 생긴다면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내국인 고객도 많아지지 않겠느냐”면서 “손님만 많아진다면 나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동대문 일대의 부동산 시세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종목 신영에셋 투자사업본부 과장은 “동대문 일대 임대료는 애초부터 높게 형성됐기 때문에 크게 차이는 없겠지만 국립중앙의료원 재개발, 동대문 도시 재생 프로젝트 등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시세 상승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외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외부 흐름에 민감한 관광객을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커의 호황으로 대기업이 몰려오지만 내수를 공략해야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동대문 상권이 살아남으려면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운영 체계, 동대문에만 있는 개성과 차별화 전략이 있어야 한다. 다르면 순항하고 비슷하면 침몰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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