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여성, 화장품에 빠지다

장수 사회 맞아 소비층 지각변동…아줌마·할머니가 ‘알짜 고객’


나이를 먹으면 늙는다. 자연의 거대 순리다. 반면 이를 거스르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 결국엔 지겠지만 어떻든 노화는 저지하고 싶다. 미(美)에 본능적인 여성이면 더 그렇다. 예뻐 보이고 싶은 심정의 발로다.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시장이 잘 버텨 내는 이유다. 단 출산 감소로 청년 인구가 감소하는 고령사회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길게 봐 시장 축소가 불가피하다. 타깃 고객의 감소 우려다.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이다. 장수 사회가 꼭 화장 수요를 줄이지는 않는다. 거대한 인구 비중인 고령 시장이 불황 탈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 전용 화장품 전성시대
일본의 화장품 수요 변화를 이끄는 소비 계층은 아줌마·할머니 부대다. 이들은 특히 황혼 노인보다 숙년(熟年) 여성을 자처·지향한다. 황혼 연애와 재혼 등 새롭게 신부의 꽃길을 걸으려는 실현 욕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들은 유력한 알짜 고객이다. 추계를 보면 4년 후인 2019년 전체 여성의 50.2%가 50대 이상의 아줌마·할머니 인구다(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기업·시장이 시니어 시장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인구 변화다. 해당 세대의 구입 규모는 2조~3조 엔대 화장품 시장의 절반 정도다.

시니어 전용 신규 브랜드·상품은 경쟁적으로 발매된다. ‘시니어 메이커 화장품’의 전성시대다. 최대 메이커인 시세이도는 2015년 1월 ‘프리올’을 내세워 모두 33개의 전용 상품을 출시했다. 카오가 내놓은 50대 고객 대상 아이섀도는 자사 제품 중 시장점유율을 3배나 끌어올렸다. 쥐기 편하고 단번에 색조를 넣는 획기적인 기획이 먹혀들었다. 2011년 발매된 전용 파운데이션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다.

마케팅은 뜨겁다. 왕년의 여배우(70세)를 광고 모델로 발탁한 시세이도는 광고 효과 덕분에 애초 계획보다 1.7배 더 팔았다. 시니어 광고는 자사의 고객 조사 결과 “몇 살이든 여자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응에 고무된 결과다. 특이한 분석도 있다. 남녀고용기회균등법(1986년)의 수혜를 보지 못한 50대 이상 여성의 높은 성별 자각성이 화장 수요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차별 문화 없이 자라 온 청년보다 상대적으로 억눌린 감정이 많은데 이게 황혼기 화장 수요로 표출된 셈이다.

시니어 화장품의 최대 특징은 가령(加齡: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생리 현상이나 기능이 변화해 가는 것) 배려다. 큰 글자의 설명서는 물론 한 번의 터치로 짙은 색조가 연출되고 악력이 약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용기 모양을 바꾼다. 포인트는 ‘즐겁고 손쉽게’다. 뚜껑과 개폐 부분을 몸통과 달리 보색으로 배치해 노안·백내장 노인들도 사용하기 편하게 배려했다. 일부 제품은 케이스 내부에 실물보다 2배나 더 잘 보이는 확대경까지 붙인다. 외부는 잘 미끄러지지 않도록 요철 처리도 한다.

사실상 범용성(universal design)의 강화다. 연령·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도록 설계한 셈이다. 여성 고령자에 맞췄지만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실현이다. 공간 구조, 가구·시설 배치 등에만 차용되던 노인 배려가 화장품에도 차용된 형태다. 업계는 피부 트러블과 화장 지식, 기술 부족의 해소 욕구가 많다는 점에 주목, 관련 수요에 맞춘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