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로는 희망이 없다

무한한 재결합 가능한 디지털 시대…각자의 성(城) 허물고 개방형 플랫폼 갖춰야


정부의 전방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활력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부동산 시장에 활기가 보이고 있지만 이는 자체적으로 한국 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난 덕분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양적 완화 기조와 연관된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짙어 회복세가 지속적으로 탄력을 받기 어렵다. 향후 고령화와 늘어나는 복지 부담, 심각한 청년 실업 등을 극복하려면 무언가 든든하게 한국 경제를 떠받쳐 줄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뚜렷하게 잡히는 게 없다.

현실과 목표 간의 괴리가 커지면서 보다 근본적으로 성장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나 개혁 드라이브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대통령) 단임제의 사회구조 하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짜 한국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추구하는 대신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피상적 대책’만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갈라파고스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
현재 우리가 당면한 경제의 애로 현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장의 동인이 과도하게 5대 수출산업 위주의 특정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이러한 양상은 성장 패러다임과 직결된 이슈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도전이다. 특히 수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비중은 7 대 3으로 대기업이 여전히 높다. 특히 상위 50대 대기업의 수출 비중은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2013년 60.4%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은 여전히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둘째, 경제활동 참여가 광범위하지 못하고 노동 참여율도 지극히 저조하다. 청년 실업은 계속 늘어나고 여성 참여도 제한적이다. 이 와중에 빠른 속도로 퇴직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조직 슬림화의 영향으로 정규직보다 임시직 비중이 늘어나면서 고용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하반기 한국의 비정규직은 607만7000명(임금 근로자 중 정규직 비중은 32.4%)에 달한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3년 후 정규직 전환 비율은 22.4%로, OECD 회원국 평균인 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셋째, 세계적인 추세와 점차 격리되면서 ‘갈라파고스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기존 산업 정책적 생태계 보호 노력이 오히려 빠르게 변하는 개방 환경에서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균형 감각을 찾기에는 경제 생태계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그만큼 글로벌 시장의 목소리와 멀어져 있다. 소비 주체의 고객들도 가두리 양식장같이 갇힌 폐쇄 공간에서의 안온함에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싫든 좋든 현재의 상황은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기존의 정책 도구함(toolbox)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선진 경제로 탈바꿈하려면 현 시스템의 주도 세력에서부터 솔선수범하고 환골탈태하는 질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어렵지만 바로 그것이 현실이다.

첫째, 한국 경제의 추세적인 활력 저하는 폐쇄적 생태계에서 소수의 승자만이 참여하는 경제활동 방식으로 고착화됐다. 그런데 나름대로의 타당한 기준으로 걸러진 승자들의 참여는 의외로 활력을 저하시키게 된다. 활력은 이질적 다양성(diversity)이 조화되는 과정에서 찾아진다.

거대 공룡들이 활개 치는 생태계는 점차 조그만 동물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해외 거대 시장과의 연결이 지나치게 협소한 통로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수출이 그 대표적인 통로다. 세상은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가치 창조가 중요해졌는데 우리 주변의 생태계는 이러한 변화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나 고객 중심의 변화가 우선시되지 못하고 정부나 관료 위주의 결정이 전달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진단을 되풀이하는 현실은 과거의 인정인 동시에 미래의 부정인 것이다.


플랫폼으로 ‘제3세계’ 진출해야
셋째, 거대한 해외시장에서 종과 횡으로 제대로 연결되려면 플랫폼의 규모나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선진 해외시장의 플랫폼과 대등한 구도 하에서 연결될 처지가 못 된다. 우리 내부의 플랫폼은 플랫폼 운영자가 요구하는 유니폼을 입은 입장객만 허용하는 운동장과 유사하다. 자기만의 성을 쌓는 방식으로는 공도동망(共倒共亡:함께 넘어지고 같이 망함)의 길을 피할 수 없다. 미래를 지향한다면 선진 문물의 습득에 열의를 보이는 이상으로 우리의 자체적 횡적 자본 토대도 강화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의 활력 저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인해 개방형 플랫폼 구축이 지연된 결과다. 이미 과거 특정 경로와 기구에 기초한 서비스의 생산과 배달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화는 모든 요소가 최소 단위로 분해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무한한 형태의 재결합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바로 플랫폼(platform)이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모두에게 다양한 시장 접근을 허용하고 우리 것이 존중될 수 있는 다방면의 자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구체적인 과제를 살펴보면 첫째, 서비스산업 전반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데이터 기반 구축과 활용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데이터의 생성과 관리, 활용에 이르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재래시장의 소규모 상점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세계시장에 선을 보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고객들의 개인 소비 패턴에 관한 데이터 분석과 같은 기초 작업이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개방형 플랫폼간의 연결을 통해 세계적 수요에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기존의 갑을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쟁력이 결합될 수 있도록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운영체제와 응용 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 개방과 연결 작업이 비즈니스의 기본 관행으로 정착돼야 한다. 벤처나 중소기업들이 기존 대기업과 진정한 의미의 협업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난 벤처에만 지원이 집중되는 현 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돼야 한다. 직접 개입이 아닌 생태계 관리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중시되는 분야다.

셋째,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협업’이 가능하도록 법적·제도적 생태계 재정비 작업이 강화돼야 한다. 이쪽에서 저쪽의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를 자체 기반의 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해외 직구를 통해 고급 수요를 충족한다면 자체 기반 조성이 늦어지고 이쪽은 영원히 저쪽의 시장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뒤늦은 대응도 여전히 각자의 성 쌓기 식의 플랫폼 전략에 불과하다. 합종연횡이 가능한 폭넓은 생태계가 조성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태계 관리자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현실 제약 요인을 따져봐야 한다. 후발 주자로서 새로운 플랫폼 구축에 앞서 전략이 필요하다. 해답은 해외시장 진출이고 방식은 개방형 플랫폼 구축이다. 기존의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개방형 플랫폼은 아직 플랫폼 구축이 미비한 제3세계의 경제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불가피한 제약들을 적극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플랫폼 시장의 주도 세력으로 부각될 수 있고 미래 세대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체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방형 플랫폼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진출 전략을 적극 구사해야 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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