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외환 위기의 교훈

기존의 명망가 중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청렴하고 비전을 가진 새로운 그룹으로 지도층을 일신해야 한다. 이런 사태를 두고도 유야무야 몇 사람 교체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13년 한국경제연구원 초빙 연구위원(현).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현).



최근 성완종 파문은 정치·사회적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곪아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폐해는 이미 1997년 여실히 드러났다. 170조 원이 넘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100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양산했으며 한국의 주요 자산들을 헐값에 외국에 팔아넘기지 않을 수 없는 전대미문의 금융 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이었다.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금융을 좌지우지하면 돈이 필요한 기업은 당국과 정치권에 밀착하게 된다. 정치자금과 접대를 제공하는 정·경·금의 삼각 커넥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검은 커넥션 하에서는 대출 자금이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분석하는 금융권의 사전 심사와 사후 모니터링 제도가 유명무실해진다. 힘센 당국과 정치권에 줄을 잘 대는 기업은 수익성과 관계없이 덩치를 키우게 되고 마침내 금융 부실로 연결돼 금융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한국도 이미 1997년 이후 이런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공공·금융·기업·노동의 구조 개혁이 강도 높게 추진됐다. 그리고 18년이 흘렀다.

이번 성완종 파문은 한국에 이런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정·경·금 삼각 커넥션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은 정치자금을 받지 말라고 선거비용 일부를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 주는 선거공용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금융 감독 제도도 개편하는 등 구조 개혁을 했지만 모두 무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성 전 회장의 경남기업은 수많은 부실 투자로 금융 부실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은행 자금과 정책자금을 제 돈처럼 써 왔다. 그 이면에 성 전 회장과 검은 커넥션 관계인 정·관계 인사들이 있었다는 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금융 위기를 겪고도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면 선진국 도약은커녕 다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관련 당국의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엄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 개조 차원에서 비위 관련자들을 영원히 한국 사회 지도층 그룹에서 추방해야 한다. 기존의 명망가 중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청렴하고 비전을 가진 새로운 그룹으로 지도층을 일신해야 한다. 이런 사태를 두고도 유야무야 몇 사람 교체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정당법을 개정해 청렴하고 비전 있는 새로운 정치인들로 세대교체를 이룰 정도의 정치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는 완전하게 세대교체를 이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영란법’ 등을 더 강화해 정치인과 관료가 검은돈과 일절 거래할 수 없도록 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여기에는 규제 개혁이 중요하다. 규제가 존재하는 한 정경유착의 고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금융 감독 체계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합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정부 당국이 금융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개혁해 관치금융의 고리를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한국의 금융 산업 국제 경쟁력은 세계 80위 수준이다. 이렇듯 아프리카 후진국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감감무소식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금융은 주인이 없고 낙하산은 다반사고 금융위원회가 감독 당국을 좌지우지하는 체제를 그냥 두면 관치금융 해소는 요원하다. 이번 파동은 정·경·금 삼각 커넥션의 개혁 없이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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