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발 뺄 때가 기회”…한 발 앞선 승부수

이라크 비스마야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 해외 건설 사상 최대 규모


“하늘이 한국에 준 절호의 기회다. 이라크 신도시 건설을 통해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자.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현장에 내 야전 숙소도 만들어라. 어려운 여건일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한국 건설의 힘을 보여주자.”

2012년 7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현장을 방문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한화건설은 실제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다. 이라크 내전 사태 속에서도 80억 달러(8조6584억 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4월 21억2000만 달러(약 2조2945억 원)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 소셜 인프라(사회 기반 시설) 공사를 추가 수주했다. 이에 따라 한화건설은 향후 제2, 제3의 비스마야 추가 수주 가능성을 높인 것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 지역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2조 원대 인프라 공사 추가 수주
2012년 5월 30일 이라크 현지 시각 오전 11시 30분. 바그다드에 자리한 이라크 총리 공관에서 한국 해외 건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 수주가 성사됐다. 김승연 회장과 누리 카밀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공사 본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해외건설협회는 이날 본계약 체결로 한국 해외 건설 누적 수주액이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한화건설이 47년 한국 해외 건설 역사에 방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공사는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약 1830만㎡, 10만 가구 규모의 분당급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국내 건설사가 수주한 단일 프로젝트로는 사상 최대 규모이자 단일 건설사가 10만 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를 디자인 빌드(Design Build:설계·조달·시공 일괄 수주 방식)로 총괄 개발하는 세계 건설 역사상 첫 사례다. 도로와 상하수 관로를 포함한 신도시 조성 공사와 10만 호의 국민주택 건설 공사로 구성된다. 총공사 대금은 77억5000만 달러이고 선수금은 25%다. 물가 상승을 반영한 공사 금액 증액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실제 공사 대금은 총 80억 달러 규모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공사 수주는 김 회장의 선견지명에서 시작됐다. 김 회장은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2년 전인 2009년 당시 “미국이 승리해 종전되면 대규모 전후 복구 사업이 잇따를 것”이라며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에게 해외 부문을 전담하게 하고 이와 관련해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이는 중동 건설 붐을 직접 경험한 김 회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단이었다. 그 역시 1970년대 태평양 건설에서 해외담당 임원과 사장을 지낸 ‘건설맨’이었던 것이다. 이후 정부 민관경협사절단이 구성된 2010년 2월, 김 회장은 김 부회장에게 사절단의 일원으로 이라크를 둘러보고 전후 복구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오랜 전쟁으로 주택과 전기 등 기본 인프라가 부족한 이라크의 상황을 확인하고 대규모 신도시 건설 사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 3월,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는 전후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100만 가구 국민주택 건설 사업(National Housing Program)’을 발표했다. 그 첫째 사업이 바로 바그다드 인근 비스마야 지역에 국민주택 10만 호를 건설하는 비스마야 뉴시티 프로젝트였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이라크 사업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존재했다. ‘이라크’라는 지역적 위험 요인과 두바이·카자흐스탄 등 무수한 실패 전력이 있는 해외 주택 사업에 따른 리스크였다. 실제로 130여 개 세계 각국의 건설 업체들이 사업을 포기했다. 하지만 한화건설은 “모두가 망설일 때 나서지 않으면 기회의 땅을 선점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특히 수의계약으로 사업의 주도권만 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한화건설의 판단이었다. 이후 한화건설은 다각적인 채널을 통해 발주처인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와 접촉하며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수주 전략 및 사업 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투자협약(MOA)부터 본계약 체결까지 수주 과정도 험난했다. 다수의 업체들이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제한된 예산을 맞추지 못해 흐지부지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화건설은 단순히 주택을 지어 인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도로·상하수도·발전소·조경 등 도시 인프라 구축을 포함하는 안을 제시해 발주처의 마음을 움직였다.

MOA 체결 후에는 제삼국 건설 업체들의 본계약 방해도 이어졌다. MOA 체결 이후 본계약까지 1년여 동안 구속력이 없는 MOA의 특성을 간파한 악의적인 훼방이었다. 김 회장은 비스마야 프로젝트의 규모, 국가적 이익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 이례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고 관련 회의를 주관하는 등 프로젝트가 최종 수주될 수 있도록 진두지휘했다. 본계약이 지연되면서 “사업이 좌초됐다”는 루머가 퍼지자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한 것도 김 회장이었다.


헬기로 에코메트로 보여주며 설득
특히 김 회장은 한국을 방문한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을 헬기에 태워 ‘인천 에코메트로’를 보여줬다. 238만㎡ 부지에 1만2000가구 규모로 조성 중인 인천 에코메트로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민간 도시 개발 사업이다. 신도시 개발 분야에서 한화건설의 역량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줘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조감도가 아닌 실제 완성 단계에 있는 대규모 신도시 개발 공사의 실물이 발아래 펼쳐지자 이라크 정부 관계자 대부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화건설의 신도시 건설 역량을 신뢰하게 됐다”면서 “본계약 체결과 관련한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만든 신의 한 수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은 순항 중이다. 총 8개 타운 중 첫 번째인 A타운에 10층 규모의 아파트가 속속 모습을 보이고 있고 2015년 6월 A1블록 1440가구가 완공돼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 다른 블록에서도 각각 부지 조성, 기초공사, 아파트 건립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8개 타운, 59개 블록 834개 동으로 구성된 초대형 신도시가 조성된다.

공사 대금도 원활하게 수금되고 있다. 한화건설은 2014년 10월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공사에 대한 4차 선수금 4120억 원 수령을 포함해 총공사비의 27.7%에 달하는 2조3300억 원 정도의 누적 선수금을 확보한 상태다.

한화건설은 이라크 재건 사업 1호이자 한국 신도시 노하우 수출 1호인 비스마야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 국내 건설사의 뛰어난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고 ‘글로벌 톱 플레이어(global top player)’를 향한 비전 달성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제2의 중동 붐을 이끄는 한화건설의 거침없는 도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