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줄 아는 전문 경영인 돼라

고용 권한 가진 이는 오너…멋있게 떠나는 게 커리어에도 도움

전문 경영인으로 회사의 경영 책임을 맡은 지 만 3년이 됐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회사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이제는 안정이 됐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잘 극복해 이전과 다른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창업자와 틈이 벌어졌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간극이 커졌습니다. 이 때문에 대주주는 다음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교체할 것 같습니다. 회사의 정상화 과정에서 저와 어려움을 같이했던 임직원들은 제게 회사를 떠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창업 대주주에게 연임을 요구하라면서 자신들도 지원하겠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대로 떠나기 아쉽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전문 경영인들이 귀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자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원이나 직원들도 다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회사에 기여한 것들이 이만큼 있으니 자기에게 일정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죠. 자신이 재직 중에 성과를 냈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사를 키웠으니 무형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다른 좋은 곳으로 옮기기 위해 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회사를 스스로 떠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회사를 그만두는 임직원들 모두가 섭섭해 합니다. 대부분이 자신이 고생하고 기여한 만큼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섭섭한 마음은 직급이나 직책과 무관합니다. 과장이나 부장으로 그만둬도 섭섭하고 전무로 물러나고 사장과 부회장까지 지내다 떠나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재직 기간 중 자신이 고생한 것이나 성과를 만들어 낸 것만 생각합니다.


오너와 전문 경영인의 관점은 달라
그런데 창업자·대주주·경영자들의 시각은 다릅니다. 이들은 임직원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부장으로, 임원으로, 경영자로 발탁해 기회를 줬으니 오히려 고마워했으면 고마워했지 섭섭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자신이 동의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맡긴 것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보상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고 봉사 활동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마도 귀하 회사의 창업 대주주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귀하가 재직 기간 중 회사를 안정시켰고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런 역할은 전문 경영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죠. 귀하가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책임진 만큼 권한도 행사했을 것이고 보상도 받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일부 창업 오너들은 귀하가 재직하는 동안 성공한 경영자라는 브랜드를 갖게 됐으니 얼마나 큰 것을 얻었느냐고 되묻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사원과 간부, 직원과 임원, 전문 경영인과 오너의 시각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물론 둘 다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죠. 따라서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하 역시 창업 대주주의 판단을 너무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떠나야 하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 경영인을 결정하는 권한이 대주주인 창업 오너에게 있는 게 분명한 이상 그가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면 그 판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귀하를 영입할 때 어떤 약속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3년이라는 상법상 대표이사의 임기가 끝났다면 창업 대주주는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귀하는 지금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물러난다면 아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할 겁니다. 혼란을 겪고 있는 회사를 안정시켜 한 단계 도약하게 했으니 귀하가 거둔 성과는 분명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겠지요. 임직원들이 귀하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아마도 귀하가 회사를 떠난다면 다들 안타까워 하고 아쉬워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귀하가 창업 대주주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연임에 관심을 쏟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창업 대주주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귀하가 창업 대주주와 갈등을 빚게 되면 직원들이 지금처럼 귀하를 존중하고 따를지도 의문입니다.


‘자기 고용’에 스스로 엄격해야
특히 직원 가운데 일부는 창업 오너처럼 귀하가 재직 기간 중 만들어 낸 성과에 대한 판단이 귀하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귀하가 많이 노력했고 능력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지만 성과는 모든 사람이 함께 노력해 만든 것이지 한두 명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직원들은 귀하나 귀하의 측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귀하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의 업무 능력이나 성과에 대한 판단은 창업 대주주에게 맡기십시오. 그리고 그의 판단 결과를 존중하십시오. 만약 귀하에게 연임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창업 대주주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섭섭함이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차라리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동안 기회를 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게 현명합니다.

임직원들에게 “함께 일해서 행복했다”고 이야기하고 물러나야 합니다. 귀하가 연임을 요구하고 일부 임직원들이 창업 오너를 설득한다고 해도 창업 오너의 생각을 돌리기 어려울 겁니다. 자칫하면 갈등 과정에서 귀하가 욕심을 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오히려 마음을 비우는 게 창업 대주주와 임직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인상은 대부분이 마지막 떠날 때의 모습이 가장 강하고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따라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는 귀하에 대한 창업 대주주와 임직원들의 인상은 귀하의 차후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귀하와 함께한 임직원들은 귀하를 평생 존중할 것이고 관계가 소원해진 창업 대주주 역시 귀하를 다시 보게 될 테니까요.

물론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웬만큼 자기 수양을 쌓지 않은 경영자들은 이런 길을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자의가 아니라 밀려나는 느낌을 갖고 회사를 떠나는 임직원들은 섭섭함과 아쉬움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런 감정은 때로 분노로 비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의 창업 오너나 경영자, 임직원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귀하가 창업 오너이고 대주주이고 경영자이고 임원이라면, 그래서 어떤 임직원을 영입하거나 정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면 현재의 귀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자문자답해 보라고 말입니다. 귀하가 대주주라면 현재의 귀하를 전문 경영인으로 영입하거나 임기를 연장할 것인지, 귀하가 사장이라면 현재의 귀하를 임원으로 임명하고 현재 수준으로 보상해 줄 것인지, 귀하가 임원이라면 현재의 귀하를 중간 간부와 직원으로 채용하고 승진시킬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냉정한 질문과 답변이 어렵겠지만 전문 경영인은 이렇게 ‘자기 고용’에 관한 엄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아니 전문 경영인뿐만 아니라 임원·간부·직원들도 모두 자기 고용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합니다. ‘내가 의사 결정권자라면 현재의 나를 고용하고 승진시킬까, 내가 받고 있고 받고 싶은 수준의 보상을 할까. 현재 내 모습을 존중하고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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