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돼지’를 만나는 여정

잡식가족의 딜레마



감독 황윤

올 초 베를린에서 만난 황윤 감독은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소시지로 유명한 독일은 채식주의자를 얼마나 배려하나요?” “독일 돼지의 사육 시설은 어떤가요?”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간 것인데, 황 감독은 영화 홍보보다 독일 돼지의 현실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대한민국 돼지들의 처참한 실태,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힘겨움을 시시콜콜한 일상사에 실어 위트 있게 보여준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돈가스인데도 진짜 돼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가 생전 처음 돼지를 본 것은 2010년의 일이다. 구제역으로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무자비하게 살처분 당한 그 당시 황 감독은 돼지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직접 들으며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고기를 포기할 수 없는 남편 영준의 반발 속에 어린 아들 도영에게 돼지고기 대신 진짜 돼지 친구 ‘돈수’를 소개한다. 황 감독은 생명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장식 축사와 생태주의적인 돼지 농장을 철저히 비교한다. 돼지도 생명이라고 목청껏 웅변하는 대신 생태주의적인 돼지 농장의 어미 돼지 ‘십순이’와 새끼 돈수를 자신이 어린 아들 도영을 낳던 시절, 도영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에 하나하나 대입해 간다. 우리만 살자고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굴어야 할까. 유쾌한 생활형 다큐멘터리에 키득대고 공감하는 사이 잡식 인간의 딜레마가 어느새 가슴에 쑥 들어와 앉는다.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감독 정세교, 김한민
출연 김한민, 오타니 료헤이, 이해영, 장준녕, 권율

“명량해전이 정말 조선의 승리인가?” 이순신 장군의 승전기를 담은 영화 ‘명량’으로 1700만 흥행을 거둔 김한민 감독은 일본의 도발적인 질문을 몸소 입증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417년 전 명량해전까지 이순신 장군의 긴박했던 16일간 행적을 좇은 450km의 ‘로드 다큐멘터리’의 끝에는 명량해전의 무대 진도 울돌목의 회오리치는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윈터 슬립



감독 누리 빌제 세일란
출연 할룩 빌기너, 멜리사 소젠

진정한 문학이 사라졌다고 비탄했다면 ‘윈터 슬립’은 위로 이상의 수작이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단편 ‘뛰어난 사람들’과 ‘아내’를 토대로 한 이 일곱 번째 연출작으로 권태에 휩싸인 삶을 신랄하게 해부한다. 고립된 절경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부유한 배우 겸 작가 아이딘과 그의 여동생, 아내의 삶은 한 가난한 소년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모두의 천사 가디



감독 아민 도라
출연 조르주 카바르, 라라 레인, 이마누엘 카이랄라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따뜻한 거짓말 이야기다. 레바논의 작은 마을의 음악 교사 레바는 염원하던 아들이 태어나 기뻐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들 가디를 마을 사람들이 악마로 몰아 내쫓으려고 한다. 궁지에 몰린 레바는 가디가 “우리 마을 수호천사”라고 거짓말을 한다. 동화처럼 펼쳐지는 유쾌한 소동극이 소소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주연 조르주 카바르가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나원정 맥스무비 기자 wjna@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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