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출자 고리 끊고 재무 건전성 ‘쑥’

날렵하고 단단해진 사업 구조…계열사 속속 흑자 전환 성공


구조조정 터널의 끝에 다다른 현대그룹은 그 사이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했을까. 자구 계획안 발표 이후 알짜 계열사를 팔고 지분 정리를 한만큼 내·외부적인 변화가 엿보인다.

먼저 외형상으론 몸집 줄이기를 한 모습이다. 현대그룹은 2014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기준 계열사 20개사, 자산 규모 14조1000억 원의 재계 21위 그룹이다. 주력 계열사는 규모순으로 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엘리베이터·현대로지스틱스 등 4개사다. 이 중 구조조정을 통해 현대로지스틱스가 분리돼 나갔고 현대증권 및 금융 3사는 현재 매매 계약이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현대상선의 LNG운송 부문 등 일부 사업 부문 매각을 단순 계산하면 현재까지 약 1조8000억 원 정도의 자산이 줄어든 모습이다.

이를 통해 사업 내용에도 변화를 맞게 됐다. 기존 현대그룹은 물류, 남북 경협, 금융, 기타 서비스의 네 개 사업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만약 금융 부문 매각이 완료되면 사업은 크게 해운·물류, 건설·제조, 관광·레저 등으로 조정된다. 현대상선과 관련 계열사가 해운·물류를 책임지고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이 건설·제조 영역을 담당하는 그림이다. 반얀트리호텔을 포함한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와 현대종합연수원 등이 관광·레저에 속한다. 비중으로 볼 때 사실상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두 축을 중심으로 그룹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현대로지스틱스 매각과 조직 슬림화 추진 등 고통스럽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생존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만 해도 매출 9323억 원, 자산 8383억 원(2013년 12월 기준)으로, 업계 2위를 기록하며 견조한 영업 실적을 내던 계열사였다. 그룹 내 비금융 부문의 8~10%를 차지하던 곳이다. 현대상선 내 사업 부문 중 매각된 LNG운송 부문도 국내 1위를 차지하던 알짜 사업이었다. 그룹으로서는 현 회장의 표현대로 뼈아픈 매각을 한 셈인데, 이를 통해 재도약을 위한 기초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다.

현대그룹은 외형은 줄었지만 효율적인 사업 구조로 변모했다.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비효율 사업을 정리하는 등의 체질 개선도 병행됐다. 부실 사업 부문을 털어내면서 구조조정 이후 남은 계열사들은 현대아산을 제외하고 적자가 우려되는 사업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현대유엔아이·현대경제연구원 등이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시장 신뢰 회복에 사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재무 건전성이다. 그룹이 위기설에 휩싸인 2013년 상황과 비교하면 확연한 변화가 눈에 띈다. 한때 1000%를 넘어서며 그룹과 시장 전체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부채비율은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764%로 2013년 말 1397%에서 633% 포인트 개선됐다. 차입금 규모 또한 하락했다. 2013년 말 6조3000억 원에 달한 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5조8000억 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반면 자본 규모는 7683억 원으로 2013년 말 4579억 원에서 3104억 원이 증가됐다.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향후 이 수치는 더 개선될 전망이다. 현대상선 유상증자가 3월 완료되면 2380억 원이 추가로 들어온다.

애당초 선제적 자구안의 초점은 재무 건전성에 맞춰져 있었다. 위험 수준에 이른 빚을 청산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런 점에서 현대그룹은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적절한 타이밍에 매각을 단행했고 이를 통해 확보한 현금은 부채비율 등을 낮추는 데 쓰이고 있다. 물론 아직 상당 부분의 차입금이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단기 유동성 위기’에서 탈출했다는 데 힘이 실린다. 수익성 개선이 뒷받침돼야 완전한 재무구조 정상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계열사 동반 리스크 해결돼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지배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엔 현대로지스틱스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상선을 지배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하면서 ‘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의 순환 출자 구조에서 ‘현정은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주사 형태의 지배 구조를 만들었다. 지배 구조가 단순화되면서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효과 이외에도 신용 평가에 악영향을 줬던 ‘동반 리스크’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대그룹의 고난은 사실상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대상선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20%가 넘는 외형 감소를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부채가 쌓였다. 문제는 현대그룹의 순환 출자 구조를 타고 다른 계열사에 부담이 고스란히 전가되며 줄줄이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지분법 관련 손실 등으로 피해가 커졌다. 일례로 현대엘리베이터는 2013년 영업이익 986억 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손실 3426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을 잘하고도 현대상선 적자에 따른 지분법 평가 손실 1500억 원, 파생 상품 손실 3010억 원 등이 발생했다. 부채비율은 2012년 219%에서 2013년 말 652%로 치솟았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는 파생 상품 리스크가 발목을 잡아 왔다. 그룹은 지배 구조가 다소 불안정해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지분 확보를 위해 재무적 투자자(FI)와 19건의 파생 상품 계약을 해 왔다. 주주 간 파생 상품 계약을 통해 FI를 우호 지분으로 확보하는 대신 주가 변동의 손실이 생기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책임지는 계약이었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의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따른 파생 상품의 대규모 손실을 현대엘리베이터가 부담했다.

계열사들은 유상증자 등을 통해 그룹을 지원해 왔다. 투자자에겐 이 또한 리스크 요인으로, 현대로지스틱스·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의 동반 신용 등급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현대로지스틱스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갖고 있어 현대엘리베이터 실적 적자로 로지스틱스 또한 손실이 나는 구조였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런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아직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분법 영향을 받고 있지만 파생 관련 현금 인출 부담이 줄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파생 상품 계약의 만기가 순차적으로 도래하고 있는데 점차 종결하는 추세”라며 “현대엘리베이터의 파생 계약 관련 손실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계열사들은 독자 경영 구조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룹 리스크에서 벗어나 적자를 탈피하고 수익성을 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는 시장에서의 탄탄한 지위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현재 시장점유율 40%를 넘어서며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매출·영업이익·영업이익률 등 세 부문에서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제조업 분야에선 드물게 영업이익률 10%를 기록 중이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액 2조6505억 원, 영업이익 401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4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됐다. 당기순이익도 352억 원으로 흑자 전환됐다. 현대증권은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이지만 일각에서는 다시 현대그룹에 재매각될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한다. 현대그룹이 오릭스 등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을 5년 뒤 다시 사오는 콜옵션 계약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최종 계약이 체결된 상황은 아니지만 현대증권을 되살 의지는 충분해 보인다.

현대유엔아이는 정보기술(IT) 서비스를 담당하는 계열사로, 2013년 매출 1000억 원, 영업이익 75억 원의 비교적 작은 규모에도 안정적인 사업을 하는 곳이다. 현정은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한 재계 전문가는 “향후 그룹 내 신사업 관련 IT·융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자제 구조조정과 국내 건설 사업 등을 통해 수익성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 아산의 회복은 대북 관계 개선에 달려 있다.


현대상선 회복이 키포인트
결국 관건은 본업의 회복에 있다. 그룹의 위기 요인이었던 현대아산이 자체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현대상선은 그룹 매출 및 자산에서 70~8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부활의 키를 잡고 있다. 한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그룹의 주요 이슈는 위기가 그룹 전반에 퍼졌다는 것이었는데 구조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며 “현재의 가장 큰 이슈는 이제 현대상선이 정상화되느냐”라고 말했다.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안정적인 영업이익이다. 다행인 점은 2012년 마이너스 5198억 원에서 2014년 마이너스 2321억 원으로 점차 영업 적자 폭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순이익은 흑자 전환됐다.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은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그룹이 재무 개선 목적에 충실했다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재무 개선이 현대의 명성을 되찾는 그룹 부활로 이어질지, 이제 평가는 시장의 몫으로 넘어갔다.



타 기업 사례로 보는 구조조정의 ‘명과 암’
STX그룹 : 2012년 조선과 해운업 불황으로 유동성 위기가 직면.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2년 말 STX팬오션·STX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들의 매각에 나섰지만 매각이 지체되며 계열사들이 2013년 6월 법정 관리에 들어감.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추가 자금 지원보다 대출금 회수에 집중, 결국 그룹이 해체되는 결과를 낳음.

동부그룹 : 2013년 말 자구안을 발표한 이후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을 둘러싼 채권단과 동부그룹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매각 지연. 결국 2015년 1월 동부건설이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한편 채권단이 2014년 11월 동부제철의 출자 전환(감자) 및 김준기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등 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는 상황.

한진그룹 : 한진그룹은 2009년 KDB산업은행과 재무 약정 체결 후 재무 개선 추진. 그러나 구조조정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재무 여건이 악화되며 7년째 재무 약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TX조선 : 2013년 4월, 자율 협약 체결 후 KDB산업은행은 사주의 사재 출연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경영권 박탈 후 새 경영진으로 교체. 경영진 교체 후 1년이 지난 2014년 상반기 매출액 1조5000여억 원, 영업이익 마이너스 167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함.

팬택 : 기업 구조 개선 작업(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2년 만인 2014년 8월 12일 또다시 기업 회생 절차(법정 관리) 신청.

금호그룹 : 2009년 유동성 위기로 재무 약정 체결 후 구조조정 단행. 대우건설·대한통운 등 주요 계열사 매각을 통해 2조 원의 자구 노력 추진과 동시에 채권단은 출자 전환, 신규 여신 등 5조 원을 지원하며 기업 회생 협조.

하이닉스 : 2000년 D램 가격 하락 등 유동성 위기가 발생해 워크아웃행. 당시 채권단은 2001~2009년까지 약 10조 원의 유동성 지원으로 정상화 → 2011년 SK그룹으로 인수돼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우량 기업으로 탈바꿈.

대우조선해양 : 1999년 대우그룹 해체되며 워크아웃행. 정부는 2001년 대우조선해양에 약 2조9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상화함→매년 흑자를 내는 알짜 기업으로 변모.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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